어둠속에서의 탄생

출산 ! 그 찬란한 순간들

by 김옥진

1988년. 온 나라는 올림픽 열기로 가득하다. 스물여덟의 조산사 5년 차의 나는 수원 모자보건센터에 야간 당직 근무 중이다. 이제 막 한 발짝씩 발을 떼는 딸의 재롱을 뒤로하고 저녁에 출근을 한다. 엄마가 사라지는 것이 싫어 할머니 품에서 칭얼대지만 어쩔 수 없다.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다.


옷이 비에 다 젖은 채로 근무지에 도착했다. 퇴근을 하는 직원들을 배웅하며 오늘같이 궂은날에는 출산하는 산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아기를 낳을 산모는 없다. 인계를 받은 후 분만실의 물품 및 기계들을 점검한다. 언제든지 아기를 받아낼 준비를 해 놓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 있다.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된다.


여전히 비바람은 거세게 유리창을 두드렸다. 밤이 늦었으니 함께 당직을 하는 간호조무사에게도 들어가 잠을 청하라고 했다. 나도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막 침대에 오르자마자 비상벨이 울렸다. 근무지는 2층, 천천히 층계를 내려가 보니 우산을 쓴 산모가 진통을 견디고 서 있다. 곁에 서있는 사람은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 뿐, 분만대기실로 가면서 물어 보았더니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이라고 했다. 대신 어쩔 수 없이 노모를 보호자로 모시고 왔다고 했다.


두 번째 아기라서 출산은 쉬이 될 것 같다. 얼른 출산방과 분만실의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난로도 켰다. 산모는 제법 강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함께 오신 할머니는 병실에서 대기하시라 하고 산모의 진행상태를 진찰했다. 한 시간 안에 아기를 만날 정도로 순조로울 것 같았다. 이것저것 출산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타닥! 쿵! 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순간 출산센터 건물은 암흑이 되었다. 밖을 내다보니 근처 모두가 암흑이다. 큰 변압기가 망가진 모양이다.

갑자기 불이 나가니 앞이 더 깜깜했다. 잠깐 나의 생각도, 몸도, 정지되었다.

“ 그렇다면 아기를 어떻게 받지?” 정신을 차리고 일단 더듬더듬 초를 둔 곳을 찾아 불을 밝혔다. 진통실과 분만실에도 두 개씩 촛불을 켰다. 임시 발전기를 돌리려면 전기 기사가 와야 되지만 경산의 진행은 빠를 터, 기사가 오는 동안 아기가 태어날 것 같았다. 우리의 허둥댐을 아는지 모르는지 뱃속의 아기는 참 잘도 내려오고 있었다. 기가 찼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전기가 없던 옛날엔 호롱불 아래서 아기를 낳았을 거다. 비상사태인 지금은 촛불이 무영등을 대신해야 한다. 차근히 출산준비를 했다.


벌써 어두컴컴한 진통실의 산모에게서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는 아기를 받아야 할 차례이다. 희미한 불빛을 따라 산모를 분만대까지 부축해 옮겼다. 이럴 때 일수록 더 세심히 살피고 정확해야만 한다. 두 개의 초가 더 밝혀졌다. 강한 진통이 휘몰아친 산모는 분만대로 옮겨진 후 서너 번 힘을 준 후 아기를 낳았다.

분만실 문 밖에는 딸의 힘주는 소리에 더듬더듬 밖으로 나오신 할머니가 아들이냐고 물어보신다. 아들이예요! 할머니의 안도하는 모습은 안 봐도 다 안다. 촛불에 의지해서 태반도 나오고 회음 봉합도 했다. 태어난 아기와 산모는 건강했다.


여기저기 촛불을 켜느라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산모 곁을 지킬 새조차 없었다. 깜깜한 출산 대기실은 산모입장에서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산모의 몸과 마음은 흐드러지게 뿜어져 나오는 출산호르몬에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두운 뱃속에서 밖으로 나온 아기 또한 눈이 부시지 않아 편안했을 것이다. 그 시절 누구도 몰랐던 *르봐이에 분만을 한 셈이다.


촛불을 들고 산모와 아기를 방으로 옮겼다. 아들을 낳은 산모는 의기양양하다. 다시 자궁수축을 살피고 아기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했다.


모자보건센터는 밤 당직을 하며 미역국을 끓여줄 주방 아주머니를 고용할 여력이 없었다. 나는 아기도 받지만 미역국도 끓이고 밥도 지어야만 했다. 지금까지도 아기를 받은 후 노련하게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는 나의 빠른 손놀림은 시작은 그 시절 덕분이다.


천둥과 벼락은 더 이상 치지 않았다. 미역국이 끓고 흰쌀밥이 지어질 때까지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불빛이 없어도 아기는 태어났을 테고 후산도 되었을 거다.


돌이켜 생각하니 10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출산이 오늘 같았을 것이다. 오늘날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출산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의 둘째 아기는 정전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탄생을 맞이한 셈이다. 어디선가 선한 남자로 성장했을 그를 상상해 본다.


* 르봐이에 분만 ; 아기에게 탄생의 첫 순간을 부드럽게 배려합니다. 엄마의 뱃속처럼 어둡게 만들고 엄마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합니다.. 엄마의 품에 아기를 안겨주고 호흡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탯줄을 늦게 자릅니다. 또한 중력에 대한 배려로 양수와 같은 따듯한 물에서 잠시 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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