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 그 찬란한 순간들
십 년 전 둘째를 낳은 산모가 늦둥이 소식을 전해왔다. 전화를 끊고서 오래전 차트를 꺼내 보았다. 거리낌 없이 잘 낳은 흔적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의 방문한 그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깜빡거리는 나이임에도 오래전 아기를 낳고 간 산모를 기억하는 것은 갈수록 신기하다. “너희들을 받아주신 선생님이셔 인사해라!”두 여학생이 꾸벅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다시 뵈니 너무 감격스러워요. 어쩜 그대로세요. 저 선생님께 칭찬받으며 둘째아기를 낳았어요." 자랑하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 내가 칭찬을 할 정도였다면 어떻게 낳았는지 상상이 간다.
건강한 몸, 넉넉한 골반, 출산을 받아들이는 마음, 건강한 아기, 새 생명을 맞는 가족들의 환영, 완벽하다. 나머지 일어날 일들은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더하여 비타민처럼 효과를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다. 그들도 나도 만날 생명을 위한 기도는 저절로 나온다. 어마어마한 기적같은 일을 만나는 일만 남았다.
진통이 시작되어 온 식구가 한밤중에 왔다. 아담힌 조산원이 북적인다. 산모를 제외한 모두는 꿈나라로 갔다. 애석하게도 내가 예상한 출산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넘어갔다. 이런 상황도 예상은 했다. 산모의 나이가 나이니 만큼 지금의 속도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임신 중에 열심히 걷고, 먹는 것을 조절한 모범생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
기대 했던 출산시간은 지나갔지만 서서히 진통이 강해졌다. 감통을 위해 출산 풀에 들어갔다. 따듯한 물 덕분에 진통이 훨씬 줄어든다고 했다. 근력이 없거나 너무 날씬한 산모들은 따뜻한 물로 인해 진이 빠진다. 아니나 다를까 물에 들어간 지 삼십분 정도 지나자 기운이 빠져버렸다. 수중출산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산모에게는 수중 출산은 맞지 않는다. 따듯한 물이 모든 진통하는 산모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다.
밖으로 나온 산모는 남편에 기대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부산을 떠는 사이 아기는 말없이 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개입이 없는 진통은 산모와 아기의 상황에 맞게 강하기도 했다가 슬그머니 약해지기도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진통 리듬에 맞춘다.
생각보다 늦게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만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산모는 결국 구원의 절규들을 쏟아냈다.
"살려주세요.
이젠 더 이상 못하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얼마나 더 해야 해요.
그냥 잡아서 빼 주세요.
아~~악"
호흡으로 산모를 진정시켜야 했다.
"심호흡 두 번!
다시 한 번 깊게 들이쉬고 숨 참고!
힘주세요!
하나, 둘, 셋, 넷……. 내쉬고,
얼른 다시 들이쉬고 숨 참고, 하나 둘 셋 넷,, 열
그만!.
이완! 이완!"
남편을 잡았던 손을 놓게 하고 온몸의 근육을 풀라고 했다. 진통이 사라지면서 정적이 흐른다. 그 시간조차 눈 감고 있는 산모에게 이완할 수 있는 작은 구령이 필요하다.
" 이완, 이완, 편안하다. 참 편안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의 작은 주문을 듣고 어떤 산모는 잠깐 코를 골기도 한다.
반대로 나의 아드레날린 수치도 산모 못지않게 최고로 분출된다. 온갖 털이 곤두서고 눈빛은 예리하게 빛난다.
내 뱉는 작은 구령으로 내 몸도 마음도 잠시 이완된다.
또다시 몰려오는 진통은 잠시 쉬고 있는 모두를 다시 깨운다.
“아직 아니에요! 미리 힘 빼지 마세요.
호흡 두 번 먼저, 들이쉬고 내쉬고, 또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자, 이번엔 숨 참고, 길게 똥을 누듯이 힘주세요! 하나, 둘, 셋, 넷……열!
옳지! 맞았어요! 아주 잘 했어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
출산의 막바지는 나를 기괴한 목소리를 내게 하고 힘을 발휘하는 여자로 변신시킨다. 단 한 명의 산모도 나의 구령에 딴죽을 건 사람은 없었다. 외려 구령 덕분에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알게 되어 힘이 났다며 고마워했다. 출산을 돕는 나를 볼 수 있는 것은 동영상이다. 한가할 때어 가끔 보는 출산동영상의 나는 딴 나라의 사람 같아 보인다.
있는 기운을 모두 모아 아기가 태어났다. 예상 시간은 넘겼지만 이만하면 만점에 가깝다. 나머지는 산모의 나이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후산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고된 일을 마친 사람에게 미역국을 내어준다. 둘째를 낳고 먹었던 미역국은 못 잊을 만큼 맛있었다고 했다. 십 년 전 미역국 맛이 제대로 날까? "맛있어요! 역시 이 맛이에요." 쌀 밥 한 그릇이 미역국과 만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늦둥이를 품고 출산 상담을 하러 온 날, 둘째 아기를 낳았던 10년 전에 먹었던 미역국 이야기가 나왔다. 옆자리의 남편도 덩달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셋째 아가 낳으면 미역국 조금 더 끓여 드릴까요? 네, 네? 그래도 될까요? 저야 그러면 감사하죠.“ 아기 낳으며 바짝 말라버린 입술에 닿는 미역국, 어찌 달지 않았으랴. 맛있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가져갈 미역국을 끓여 주기로 했다. 출산준비물에 미역국을 담아갈 통 하나가 더 추가 되었다.
아기를 받은 후 큰 냄비에 15인분의 미역국을 끓였다. 퇴원 준비로 분주해진 저녁 무렵, 남편이 미역국 이야기를 꺼낸다. "어머나, 깜박할 뻔 했네요" 미리 끓여 놓은 10인분의 미역국을 통에 담아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산모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구령은 백만 불짜리예요!!!" 엄지 척을 하는 그녀가 내게 찡끗 눈인사를 한다. “이건 남편도 열렬히 동의하는 거예요. 역시 고수는 구령조차 다르다고 늘 이야기를 했어요. 이번에도 구령 덕분에 아기를 더 쉽게 낳았어요. 고맙습니다! "
남편의 차에는 건강한 늦둥이와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아내, 딸 둘이 탔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 점점 멀어져 갔다.
*후산; 아기가 태어난 후 태반이 만출 되는 일. 자궁 안에 있는 부속물로서 엄마의 혈액을 아기에게 보내고 받는 일을 한다. 출산 후 약 5분에서 20분 후에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다. 이 때 자궁수축이 약하면 출혈을 한다. 자연스럽게 아기를 갖고 낳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출혈을 하지 않는다.
*의료개입 ; 출산을 하는 산모에게 꼭 필요치 않은 의료 행위를 하는 것 , 에를 들자면 관장이나 외음부 제모, 잦은 태동검사와 내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