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시겠어요? 엄마아빠랑 둘이만 여행 가신다니 걱정이 돼요." 우리 부부만 떠나는 중국 시안여행을 앞두고 딸이 걱정이 많다. 삼 개월 전에 다녀온 필리핀 보홀 여행은 온 가족이 함께했다. 딸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은 솔직히 편안했다. 척척 일정을 소화해 내는 젊은 딸들은 나름 우리를 보살펴 주었다. 보호자로 지금껏 데리고 다녔던 딸들이 어른으로 변해버린 것이 실감 나는 여행이었다. 모든 일을 해내던 부모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던 걸까.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스며왔다.
" 아무 데나 나가지 마시고 매일 톡 주셔야 해요. 재미있게 지내다 오세요." 떠나는 우리에게 예전 내가 자기들에게 당부했던 말들을 한다.
아침 아홉 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세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한 시간 걸릴 것을 예상한다면 새벽 네시에 일어나야 한다. 늦잠 잘까 봐 남편은 전전긍긍이다. 일찌감치 취침모드에 든 남편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젊었던 삼십 대에 해외근무를 7년이나 한 젊은 시절의 용감한 남편은 김 빠진 사이다처럼 변했다. 요새는 했던 예기를 계속하거나 여행 전에는 여권 등의 서류가 잘못될까 안 해도 될 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나도 그와 함께 세월을 보냈으니 서로 별반 다르진 않지만 해외를 나갈 때는 여전히 예전의 멋진 남편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느긋하고 당당한 모습이 그립지만 서서히 그 마음도 내려놓아야 하려나. 그래도 아직은 '검색의 대마왕' 자리는 유지하고 있는 것이 어디냐 싶다.
그의 태블릿엔 이번 여행지인 시안의 지도와 명소가 빼곡히 보물처럼 들어있다. 덕분에 편안하게 지나게 될 테니 그때마다 폭풍칭찬을 해 주리라.
우리는 로밍 대신 인터넷 공유기를 빌렸다. 길을 찾거나 검색 용이다.
무선 라우터 하루 3000원, 1기가의 용량이며 고속이다. 1기가가 넘어가면 인터넷이 느려진다고 했다. 패키지여행이라서 많이 검색할 일은 없겠지만 든든한 마음이다. 상품명은 SK '바로 박스'이다. 딱 여학생 도시락 크기다.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다 싶다.
딸이 신청하고 공항 가서 찾으면 된다고 했다.
로밍 가격보다 싸지만 요 물건을 찾는데 남편은 꽤나 많은 시간을 썼다. 결국 척척 일 잘하는 큰 딸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제2공항 E~D 사이로 가면 된다고 사진까지 캡처해 보내왔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중에는 베이비 부머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이 반 이상인 듯 보인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에 흥에 겨운지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높다. 자주 여행을 다녀왔는지 사람들의 여행 가방에는 많은 스티커가 훈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젊었던 시절에 나도 여행가방에 붙어있는 많은 스티커로 슬쩍 뽐을 내기도 했다.여기저기 다녔다는 표식이었으니까.
지금은 지저분하다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두 떼버린다는.
시끌벅적 하긴 했어도 모두 다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모드로 바꾼 핸드폰도 깊숙이 넣어두었다. 비행 중에는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자동으로 핸드폰 디톡스를 한다.
옆자리엔 나보다 약 십 년 정도 더 사셨을 듯 보이는 아주머니가 앉았다. 친절도 병이라! 비행기모드로 바꾸셨냐고 여쭈니 그런 건 안 해도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너무 완곡해서 더 이상 참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셨는지 아주머니는 채 이륙도 하기 전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에는 불안이 남아있다. 아주머니의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꾸지 않아서 생길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다. 타인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 상관없다는 아집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정확지 않은 정보로, 무지로, 고집을 부리는 늙은이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스갯소리처럼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할까. 60세가 넘어가는 요즘은 더욱더 만사가 조심스럽다.
펜데믹으로 발이 묶였던 나조차 버킷리스트랍시고 여행을 손꼽으니 공항은 붐빌 수밖에 없다.
이륙시간 대에 내리고 뜨는 비행기가 몰려서 예상 보다삼십 분이나 지연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덜컹거리던 비행기가 공기 중으로 뜨니 어질어질하다.
오래전, 그날도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었다. 대각선의 스페니쉬계통의 여성이 묵주를 꺼내 들고 기도를 하고 있다. 비행기가 달려 나가자 눈을 감은 채 성호를 그었다.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자주 비행기를 타지는 않았지만 이륙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그녀처럼 기도를 하게 되었다. 작은 성호를 그으며 나의 심장에 닿은 무형의 십자가를 떠올린다. '나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찰나의 기도로 몰려왔던 두려움은 사라져 갔다.
바다 위 섬들마저 점점 까마득해졌다. 도시를 덮고 있던 뿌연 스모그 위로 오르니 어릴 적 늘 보아 왔던 청명한 하늘색이 반긴다. 날이 좋으니 이번 여행도 즐겁고 순조로울 것이다. 세 시간 반 동안 신부님께서 주신 "인간의 흙역사(톰 필립스가 쓰고 홍한결이 옮김, 윌북 출판사)"를 읽으려 한다. 백색소음으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비행기 내 독서는 지난번 여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앞쪽부터 통쾌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