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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받는 일, 되갚는 일, 모두 무게는 같다.

산파 일기

by 김옥진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나 역시 그렇다. 친정어머니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 그러면서 공무원 박봉에 살림을 꾸려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몇 번쯤은 자식들 대학 학비를 친구에게 빌려온 것을 빼고는 아쉬운 소리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자존심을 버리며 우리들을 가르치신 거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마 떨어지지 않았을 어머니의 입으로 나는 지금까지 사람 노릇을 하며 산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신조가 심어졌다. 목까지 차올라 어쩔 수가 없는 경우엔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머니의 시대보다 더욱 복잡해진 사회와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을 들춰내 사서 맘고생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서로'에 방점을 찍다 보면 껄끄럽다. 동시에 내 마음의 크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주는 만큼 되받을 수 없고 받는 만큼 돌려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사는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생각해 보면 이토록 공정할 수가 없다. 되갚는 이와 되받는 이가 다를 뿐이다.

혼이 빠질 만큼 힘든 출산을 한 산모나 순조롭게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받는 값은 똑같다. 전자에겐 내가 전생의 빚을 진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후자는 전생에 내게 빚을 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로 재듯 똑바른 것은 세상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누군가에게 어떤 것으로든 신세를 져야만 한다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것이다. 또 나의 친절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 주기로 한다. 둥글둥글 화내지 말고 모두 받아들이며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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