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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타령

by 김옥진


딸이 한 달 전부터 자꾸 어지럽다고 한다. 젊으니 좀 지켜보자고 했으나 차도가 없다. 갑자기 일어나면 블랙아웃되듯 앞이 깜깜해진단다. 빈혈인지 귀속 세반고리관이 이상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우선 내과 진찰을 하기로 한다. 혈압을 재보니 100/60으로 약간 낮다. 날씬한 아가씨로서 이 정도는 심하지 않다. 그러나 혈압이 낮아 어지러울 수도 있단다. 짭쪼름한 음식은 혈압을 높여 주니 소금 섭취를 늘려보라고 의사가 말한다.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약도 처방받았고 전반적인 검사를 위해 피도 뽑았다

사나흘 후에 나올 검사가 정상이라면 다음엔 이비인후과를 가보려 한다. 귀에 문제가 생겨도 어지럽다는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자식이 아프니 기분이 좋지 않다. 별일이 아니길, 지나가는 소나기이길 바래본다..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한편에 영광 굴비 꾸러미가 눈에 띄었다. 오비이락처럼 나타난 짭쪼름한 굴비는 딸의 증상에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덥석 한 두름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덩달아 굴비에 담긴 나의 추억도 되살아 난다. 어릴 적 연탄 위에서 구워지던 구수한 굴비 냄새에 연탄가스 맡는 줄 모르고 넋을 놓았다. 어젯밤, 요에 실례를 한 손녀를 꾸짖은 할머니가 내민 화해의 반찬이기도 했다.. 짭조름한 굴비는 할머니 손에서 발라져 내 입으로 들어왔다. 삼촌과 이모들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굴비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제 엄마와 떨어져 있는 여덟 살 조카가 가여워서였을까. 귀하디 귀한 굴비는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하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57년 전 먹었던 굴비의 냄새와 맛은 지금껏 내 몸에 살아있다.


집으로 오자마자 굴비 손질을 한다. 가족들을 위해 저녁 반찬으로 푸짐하게 먹일 요량이다. 넉넉한 프라이팬 두 개에 열 마리를 굽는다. 종로의 뒷골목에 퍼져 나갔던 굴비 냄새가 세월을 뛰어넘어 아파트 안에 진동한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굴비의 맛과 향은 변함없이 두 세대를 넘어서 밥상 위에 올려졌다. 맛있는 건 세대를 불문한다. 홍홍 거리며 먹는 큰 자식들을 보는 내 마음도 할머니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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