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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트릭 Sep 10. 2022

[나는 자유롭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

<그리스인 조르바>(민음사) 리뷰

<그리스인 조르바>(민음사)


    최근 회사 내에서 신규 사업 TF 팀으로 인사 발령이 나고, 두어 달 동안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전에 누군가가 하던 일을 이어받는 게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에 진입을 해야 되니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윗분들의 기대치는 높으니 부담감과 중압감에 하루하루가 우울했고,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도 못하는 고통의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채용 공고를 뒤적이면서 몇 군데에는 지원서도 넣었습니다. 무조건 탈출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틈틈이 연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고 마침내 최종합격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막상 선택의 순간이 되니 망설여지더군요. 적지 않은 연봉과 나름 안정적인 회사를 버리고 떠나자니, 머릿속 저울이 며칠 동안 온 힘을 다해 작동했습니다.


    결국 머릿속 저울은 '도전'과 '변화'가 아닌, '돈'과 '안정성'으로 기울었고 저는 남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힘들어도 적응하고, 견뎌내어 익숙해져야겠지요. 이러한 제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이보시오! 당신은 뭐든 그렇게 정확하게 저울질합니까? 그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과감하게 결정하시오! 그따위 저울 같은 건 던져 버리고!"




1.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이 되는 크레타 섬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의 화자인 '나'는 소위 말하는 책벌레, 또는 샌님입니다. 항상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동에 앞서서 고뇌를 하는 사람이죠. 이러한 내가 책벌레라는 오명을 벗어나서 노동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삶을 살아보겠다며, 석탄 사업을 위한 크레타 섬의 탄광을 빌립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조르바'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갑자기 불편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 정수리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는 것만 같았다. 키가 아주 크고 몸이 마른 예순댓 살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여행 중이오?" 그가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겠소?" "크레타 섬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건 왜 물으시죠?" "날 데려가겠소?" 나는 그를 유심히 살폈다. "왜 그렇게 물으시죠? 노인장과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데요?"

    그러자 그가 어깨를 들썩했다. "왜냐고! 왜냐고!" 그가 경멸하듯 소리쳤다. "거참, 왜냐고 따져 묻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거요? 그냥 물어본거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럼 나를 요리사로 데려가시오. 난 수프를 기똥차게 잘 만듭니다!" (중략) "지금 무슨 생각을 하쇼?" 그가 큼직한 머리를 흔들며 내게 물었다. "선생은 저울을 갖고 다니나 보군요. 뭐든 그렇게 정확히 저울질해봅니까? 자, 그러지 말고, 어서 결정하시오! 그따위 저울 같은 건 던져 버리고!" (p.23)


    다소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조르바의 매력에 넘어간 나는,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갑니다. 낮에는 조르바가 탄광에서 작업반장으로서 노동자들과 일하는 동안 나는 글을 쓰고, 밤에는 조르바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조르바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안 해본 일이 없고, 이처럼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쌓은 지혜에 나는 매번 감명을 받죠.


    옛날에 나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소. '저 사람은 터키 사람, 이 사람은 그리스 사람.' 보스, 나는 사람들을 살해하기도 하고, 마을을 강탈해 불태우기도 했소. 왜 그랬을까? 그들이 불가리아인이고 터키인이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오. '이 돼지 같은 자식아,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래, 난 정말 뭔가 배운 바가 있소. 이제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하거든.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제 내가 던지는 질문은 말이오, 그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는 것뿐이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질문도 던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아,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누가 상관한답니까? 난 그들 모두가 안쓰러울 뿐이오. '이 가련한 악마 녀석도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공포에 떨고 그 나름의 하느님과 악마가 있을 테지. 그 또한 때가 되면 땅에 묻혀 구더기에 파먹히겠지. 가련한 악마 녀석!' 그러니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인 거요. 기껏 벌레를 먹여 살리는 존재! (p.403)




2.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조르바 -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 (출처 : Turner Classic Movies)


    조르바는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지만, 누구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고 사느라, 정작 눈앞에 있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꽃 피는 나무, 신선한 물 한잔을 보고도 감탄하며 툭 튀어나온 눈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며,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죠.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날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 어제 조르바는 포도주 한잔을 깨끗이 비우고서 고개를 돌려 나에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말이오, 보스 양반, 이 빨간 물은 도대체 뭐요? 말해줄 수 있겠소? 늙은 그루터기에서도 싹이 나오고 거기에 시큼한 물체가 열려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햇빛에 잘 구워지면 꿀처럼 단내가 나는 거요. 그걸 우리가 포도라고 부르잖아요. 그걸 따다가 발로 밟아 즙을 내서 나무통에 담아요. 그 즙이 통 안에서 저절로 끓어오르다가 11월 축제일에 통을 열어 따르면 펑펑 포도주가 나오지 뭡니까! 이 무슨 기적이란 말이오? 이걸 마시면, 이 빨간 음료를 마시면 말이오, 우리의 영혼은 더 이상 구역질 나는 이 가죽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부풀어 올라요. 그러면 우린 하느님께 결투를 신청하는 간 큰 짓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도대체 이게 뭐냔 말이오, 보스 양반? 어디 말해볼 수 있겠소?" (p.102)


    또한 조르바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가식을 떨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합니다. 너무 기뻐서 열기를 뿜어내고 싶으면,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춤을 춥니다. 어린 아들이 죽었을 때는 아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춤을 췄다고 말하죠. 달밤에 갑자기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어, 개 짖는 소리를 내며 수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조르바를 보며, 샌님인 '나'도 변해갑니다.


    나는 일어섰다. "조르바! 이리 와서 춤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얼굴을 황홀하게 빛내면서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춤이라고요, 보스?" 그가 물었다. "정말 춤이라고 했소? 자, 이리 오쇼!" "조르바, 시작합시다.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어서요!" 조르바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자, 해봐요! 우리 같이!"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두 발이 가벼워지면서 나도 점차 용기를 얻었다.

    "브라보! 아주 잘하고 있어요!" 조르바는 나를 위해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브라보, 나의 용감한 젊은이! 종이와 먹물은 사라져라! 석탄이나 이익도 꺼져라! 아, 보스가 춤을 배우다니, 내 언어를 배우다니 말이오!" 공중에 높이 뛰어오르는 동안 조르바의 두 손과 팔엔 마치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그의 춤은 도전, 백절불굴, 저항 그 자체였다. (p.510)




3. 나는 자유롭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출처 : 위키피디아)


    동업가이자 친구로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내던 '나'와 조르바는, 석탄 운반을 위한 케이블카 설치 작업이 실패로 끝나며 크레타 섬을 떠나게 됩니다. 둘 다 아쉬워하지만 각자 갈 길이 다름을 알기에, 짧은 이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죠. 조르바는 처음 만났을 때도 갑자기 다가와서 함께 가자고 하더니, 마지막에 헤어질 때도 판에 박힌 말을 나누거나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 쿨하게(?) 떠납니다.


"자지 않을래요. 우리가 함께 지내는 마지막 밤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바로 그래서 후딱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술잔을 뒤집으며 소리쳤다.

"담배나 술, 노름을 끊을 때처럼 끝낼 땐 재빨리 끝내야 해요. 혹시 알고 싶어할지도 모르니 하는 말인데, 우리 아버지는 진짜 사나이였소. 이 양반은 담배를 굴뚝같이 피워댔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밭을 갈러 들로 나갔어. 워낙 골초니까 도착해서 일 시작하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쌈지를 찾았죠. 그런데 아뿔싸, 쌈지를 꺼내고 보니 텅 비어 있는 겁니다. 이 양반은 입에 거품을 물고 총알처럼 날쌔게 마을로 내달았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부끄러움을 느낀거요. 쌈지를 꺼내어 이빨로 갈가리 물어 찢고 화를 내면서 땅바닥에 내팽개쳤다나. 바로 그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소. 보스, 진짜 사내란 이런 게 아닐지. 그럼 잘 자쇼!" 조르바는 일어서서 성큼성큼 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조르바를 두 번 다시 보지 못 했다.(p.531)


    놀랍게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 인물에 기반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라는 사람과 함께 석탄 채굴 사업을 했었는데,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훗날 소설을 쓴 것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생 동안 국가 간 전쟁과 종교적 탄압을 경험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탐구했죠.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수많은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했고, 인간의 자유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져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물론 우리 인생에는 나 자신 말고도 신경써야할 게 너무 많아서, 조르바처럼 산다는 게 쉽진 않습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 머릿속에는 배우자, 아들딸,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 회사, 일, 돈, 집 등등이 스쳐지나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면 좋겠습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 나른한 주말의 여유, 배우자와의 알콩달콩한 일상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이, 하루하루를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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