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설 e
여러분들 반야심경 많이 들어보셨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아마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일 겁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반야심경은 재미있는 힙합 리믹스(?)도 있고 말이죠. 하지만 불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제외하면 반야심경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계신 분들은 적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저는 철학 관련 브런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은 종교적인 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불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풀어서 쓸 계획이니 차분히 연재를 읽어나가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가 사상의 느낌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0. 목적과 이유
1. 사전 지식과 기타 알아두면 재밌는 것들
2. 개론
3. 해설(이 부분은 본문의 해설이므로, 어느 정도의 분량이 나올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4. 마무리
원문
般若波羅蜜多心經
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붉은 글씨는 이번 편에서 함께 해석할 부분입니다.
무고집멸도 無苦集滅道
해석은 간단하다. 고집멸도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고집멸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불가에는 4 제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고, 집, 멸, 도이다. 여기서 '제'라는 것은 '진리'정도로 이해하면 크게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4가지의 진리라는 것인데, 자세히 알아보자. 중요한 부분이므로 설명이 약간 길 것 같다.
* 고 苦
여기서 고는 고통이라고 할 때의 그 고통이다. 앞에서 말했듯, 인생은 고통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인생이란, 그러니까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 좋지 않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우리는 끝없이 무언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인생은 고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고제가 말하는 것은,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고통임을 인식해야 하는가? 우리가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려고 한다. 그것과 같다 인생이 고통임을 인식하게 되면, 인생이 고통이 아니게끔 해결하려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통의 사슬을 끊는 시작은 우선 문제를 발견하는 것, 즉 인생은 고통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 집 集
집제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인식해보는 것이다. 아! 인생은 왜 고통일까? 끝없이 무언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을 하면 할수록 업(業)이 쌓이게 된다. 고통의 원인은 바로 집착인 것이다.
* 멸 滅
이제 고통의 원인을 알았으니, 그 원인을 제거할(滅) 차례다. 모든 집착을 없애게 되면, 우리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 즉 열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도 道
고통의 근원을 인식하고(집제), 해탈하려면(멸제), 끝없는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이 멀고도 험한 수행의 길(道)이 바로 도제이다.
그래서 쭉 이어서 보면,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찾고, 고통의 원인을 없애기 위한 수행을 해서,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고집멸도이다.
그런데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문장은 고집멸도가 아니고, 무(無) 고집멸도이다. 고집멸도가 없다? 기껏 고집멸도가 진리라고 말해놨는데, 이제는 없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무고집멸도' 이것이야 말로 성인의 경지, 즉 부처의 경지라는 의미다.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자각하고, 해탈에 이르게 되면, 고집멸도 역시 없다. 물론 여기서 없다는 의미는 고집멸도 역시 공(空)하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라는 의미다.
하지만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잠시 하는 것이 좋겠다. 소크라테스는 항상 무지(無知)의 지(知)를 강조했다. 즉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무지의 지다. 여기서의 무지가, 단순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가 아님은 누구나 직감할 것이다. 하나하나 배울 때에는 부분 부분을 중요시해서 꼬치꼬치 물어가면서 배워나가겠지만,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즉 전체를 알게 되면, 부분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미 득도한 나머지 몸에 배어 버린 것이다. 적당한 예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무협지에서 보면, 처음 무(武)를 수행할 때는 하나하나의 초식들을 중요시 여기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초식을 버리게 되는데, 그와 비슷하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물론 바람직하겠지만, 몸에 체화된 나머지 자신이 착한 일을 하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더 높은 경지인 것과 비슷하다.
이로써 무고집멸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으면 좋겠다. 연재 초반에 말한 내용이긴 한데, 우리가 지혜의 배를 타고 피안에 도착하게 되면, 그 배가 더 이상 필요할까? 안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바로 그것이다. 피안에 도착하게 되면, 더 이상 배는 필요 없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참고로 알면 좋은 내용인데, 불가에서 말하는 경지는 4단계가 있다. 그 단계는, 연각-성문-보살-부처이다. 연각이 가장 낮은 단계이고, 부처가 가장 높은 단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각이 단순한 일반 중생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연각도, 12 인연과 4제 등을 알고, 그것을 타파하려고 수행하는 정도의 경지이다. 그러니 보살이나 부처는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 알 수 있다. 정말 단순히 말해서, 착한 일인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행하려 하는 것이 연각의 경지라면, 착한 일인지도 모르고 몸에 배어버린 깊은 경지가 보살이나 부처인 것이다. 물론 참고로 알면 좋은 내용이니 가볍게 읽어도 된다.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해석은 어렵지 않다. 지(智)도 없고, 득(得)도 없다. 즉, 아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여기서의 무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초월의 경지다. 무지는 궁극의 지혜이다. 무득도 비슷하다. 득도하려고 불심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몸에 베인 것이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초월의 경지이다. 진정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지와 득 역시 버려야 한다. 아니 버려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지역무득이다.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 이무소득 以無所得
이(以)는 그렇기 때문에 정도로 해석하면 되고, 무소득은 얻을 바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어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얻을 바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잠시 유명한 '무소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종종 이런 말을 들어봤거나,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 나는 가진 것이 정말 하나도 없네, 무소유의 삶이다 정말!" 혹은, "야 집착하지 마! 다 버려 무소유처럼 살아야지!" 하지만 무소유는 사실 이렇게 단순한 의미는 아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무소유인가? 아니면 가진 것들을 다 버려야 무소유인가? 그렇지 않다. 무소유는, 마음가짐의 문제다. 욕심내지 않는 것, 무언가에 집착하며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의 마음이다. 거친 예를 하나 들어서, 가진 것 하나 없는 거지가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거지는 항상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부자가 있는데, 열심히 살다 보니 생긴 것들이어서 별 감흥도 없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 여기서 누가 무소유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일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지금 내가 현재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이다. 거지는 가진 것이 없지만, 무언가를 가지려는 집착이 있으므로, 무소유적인 삶과 거리가 먼 것이다. 정말 쉽게 말해서 더 이상 무언가를 가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무소유적인 삶일 것이다. 반야심경식으로 말해보면, 더 가지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없는 상태는, 무무소유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궁극의 무소유는, 무무소유일 것이다. 마치 공(空) 역시 공(空)하다는 말처럼 말이다.
* 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
고(故)는 그렇기 때문에 라는 의미이다. 보리살타는 예전에 설명했던 보살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의반야바라밀다에서의 의(依)는 무언가를 의지하다라는 의미이고, 반야바라밀다도 예전에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궁극의 지혜인 반야를 통해 피안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쭉 이어서 풀어보면, 그런 고로, 보살은 그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할 뿐이다는 의미이다.
* 심무가애心無罣礙
마음에는 없다. 무엇이? 가애가 없다. 그렇다면 가애란 무엇인가? 가애는 근심, 걱정, 방해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그래서 모든 내용을 쭉 이어서 해석해보면, 달리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은 그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는 그 어떤 걱정과 근심이 없다는 말이다.
이번 편도 수고하셨습니다. 다소 따분할 수도 있고, 자칫 종교적으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한 분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재 중입니다. 이제 70%정도 진도가 나간 것 같네요! 처음에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차근히 따라오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그럼 오늘도 함께 읽은 부분을 정리하면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心無罣礙
심무가애
고집멸도도 없고, 앎과 얻는 것 역시 없다.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은 그저 반야의 지혜에 의지할 뿐이니,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다.
그럼 다음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