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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과 양심 Apr 05. 2016

우리는 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가?

눈과 뇌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진실일까?'


장님도 아니고 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럼 내가 지금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것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것인가?


인간의 눈은 유구한 세월 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사실 인간의 눈은 사진기와 비교했을 때 그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 사진기는 찍으려는 대상에 따라 초점을 매번 새롭게 맞추어야 할 뿐더러 한 곳에 초점을 맞추면 그 밖의 물체들은 흐리게 보이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탁월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눈은 공학적으로 매우 잘못 설계된 기계다. 눈이 하는 역할은 간단하다. 물체에 비친 광자(photon)들을 수정체에 모아서 망막의 광수용기(photo receptor)에 전달한다. 그러면 광수용기는 이것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패턴화시킨 후 축삭돌기를 통해 뇌에 전달해준다. 즉, 빛을 감지하는 센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광수용기인데 역할이 빛을 감지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빛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눈에서는 망막의 정반대편에 자리잡고 있어(역망막 현상, inverted retina) 아주 단순한 광학적 문제를 야기한다. 빛이 있고, 무언가가 있고, 센서가 있으면 그림자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눈이 세상을 그대로 인식한다면 우리 눈에는 빛과 센서 사이에 있는 혈관들의 그림자가 항상 보여야 한다.


오징어의 망막(좌)과 인간의 망막(우)


뇌가 해석을 하지 않고 눈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아마 이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눈에는 그러한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은 뇌가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뇌는 이 혈관들이 외부 세상의 데이터가 아니라 내 눈 안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눈이라는 사진기로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을 순서대로 정보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들 간의 차이값을 계산한다. 다시 말해, 움직이는 것은 존재한다고 인식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시 문제가 생기는데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다. 차이값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어떻게 바위를 인식하여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수 있을까? 답은 눈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눈을 감싸고 있는 힘줄 여섯 개가 눈을 움직이게 하여 우리의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돌고 있다. 그리고 혈관들은 눈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혈관의 차이값은 0, 즉 뇌에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눈이 움직이기 때문에 물체가 눈에 흔들려서 꽂히는 이 현상(패닝,panning)을 해결하기 위해 영장류의 뇌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뇌 영역의 20~25%를 동작 보정(motion correction)에 쓰는 것이다.


왜 인간의 눈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설계된 것인가? 답은 진화의 역사에 있다. 사실 뒤집힌 망막의 설계는 인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척추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다. 척추동물의 눈은 조상인 작은 동물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빛에 민감한 세포들로부터 발달되었다. 이 세포들에는 혈관과 신경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다분히 합리적인 설계였다. 그러나 수억 년 후인 오늘 날에도 빛이 혈관과 신경세포들을 지나쳐야만 시각세포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잘못 설계된 우리의 눈 탓에 뇌는 항상 해석을 하여 세상을 인식한다. 만약 감각 기관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착시는 이러한 뇌의 해석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눈이 가져다주는 정보를 우리의 뇌는 온전히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내가 보는 세상과 네가 보는 세상은 동일한 세상이라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절대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의 빨간색과 너의 빨간색은 다르다. 우리는 그저 언어라는 기호를 통해 이것을 하나의 빨간색으로 이름 붙여 부르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평생 동안 9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저작을 남긴 톨스토이는, 그 자신이 정작 언어라는 도구로 그의 수많은 사상을 세상에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한계를 얘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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