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형성을 하게 된다.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로 맺어지게 된다. 내 맘에 들던 들지 않던 그 관계는 평생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형제들이 생기면서 형제관계가 형성이 되고,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 남편으로서 부모나 형제와는 또 다른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혈연관계보다 더 가까운 부부로서의 관계를 맺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친구도 생기고, 동기도 생기고, 선배, 후배, 상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는 말 그대로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강조했듯이 피로 맺어진 관계다. 즉, 어떤 경우에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일 것이다. 물론 부모와 또는 형제와 왕래가 없이 남처럼 지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삶은 대부분 서로 원수 같다고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있고, 서류상으로는 죽을 때까지 한 호적 안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있게 되는 관계가 성립된다.
반면에 사회생활에서 맺어진 관계는 어느 일정기간이 끝나면 자연적으로 소원해지고, 환경이 바뀌면 또 다른 동료와 선배, 후배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는 대부분 한정된 시간 안에서의 관계가 보편적이다.
결혼을 해서 맺는 부부관계는 이 모든 관계와는 또 다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대부분 평생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그런 이유들이 없다면 부부라는 관계는 같이 살 수 없는 혈연관계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로 엮여 있는 관계도 아닌 그래서 그런 조건들이 깨어지면 가장 가까운 촌수조차도 없는 무촌의 사이였지만 가장 안 좋은 남보다도 못한 관계 형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남편으로 인해 맺어지는 남편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는 비록 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피로 맺어진 관계처럼 동일한 관계와 이름을 갖게 된다. 물론 앞에 '시'자가 붙는 '시부모'라는 부모로서의 관계를 맺고, '시동생'이나 '시누이'라는 형제로서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데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는 피로 맺은 관계가 아니어서일까? 피로 맺어진 관계와는 다른 보이지 않는 거리와 어색함이 알게 모르게 생기게 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조금은 인색한 부분이 생기고, 고맙다거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라기보다는 서운한 맘이 먼저 들고, 고운 털보다는 미운털이 먼저 박히는 것이 또한 보편적인 것 같다.
가끔 며느리와 시가와의 사이가 너무 좋은 경우가 있으면 이슈가 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고 보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보통과는 특별한 케이스로 보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런 관계, 즉 며느리와 시가식구와의 관계가 피로 맺은 관계처럼 인색함도 없고, 서운함도 없고, 미운털보다는 고운 털이 먼저 박히는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고 말하면 드라마에서? 혹은 영화에서?라고 대부분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잣대나 이제까지의 보고 들은 통념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조금은 힘들 것이다. 양쪽 어느 누군가에게 인간의 힘이 아닌 신앙의 힘이라던가, 천성적이거나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다른 이해심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의 무엇인가가 들어가 있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양쪽 모두가 동시에 성숙하고, 인내심도 대단하고, 굉장히 좋은 사람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든 먼저 깨닫고, 시부모든, 며느리든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감싸 안으려 한다면 언젠가 그 마음은 전달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관계 형성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철없는 20대에 결혼하여 천방지축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며느리를 책 잡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요즘 드라마의 못된 시어머니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리고 아마 한 달 안에 내쫓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능력 있는 젊은이들처럼 지혜롭지도 않고, 직장이 있거나 배운 기술도 없이 꼬박꼬박 아들 월급봉투를 챙기는 며느리를 누가 예쁘게 보겠는가? 그러나 갈등 없이 시가식구들과 피로 맺은 관계처럼 지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누구나 말로는 다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가 좋을 때는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매일 좋을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더구나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생활습관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입맛도, 취향도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갈등과 위기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먼저 손을 내미느냐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피로 맺은 관계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시어머니의 입장과 며느리들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프로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전에는 어디 감히 시가의 흉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텔레비전 앞에서 떠들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요즘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사위가 장모 눈치를 살펴야 하고, 아들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며느리 눈치를 살피며 아들도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많이 변해도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의 방법은 늘 동일하다.
여전히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갈등을 빚고, 다시 해결하며 하나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하며 산다.
특별히 결혼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평생 풀 수 없는 관계가 아니라 '시가'라는 이름이 붙어서 더 아름다운 가족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어려운 숙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과거를 통해 되돌아보며 정리해 보고 싶은 맘에서 펜을 들었지만 마지막에 어떤 결정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졌던 결과물에 감동하고, 감탄하며 도전받고, 또 대리만족을 하는 것일 것이다.
아마도 이 글에서는 끊임없이 받았던 시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된 어리석은 며느리의 모습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순간순간 서로를 몰랐기에 당연하게 만들어졌던 오해들의 아픔도, 여전히 풀지 못하고 가슴 한편에 숨겨둔 서운함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들도 고스란히 그려질 것 같다.
부끄럽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토해 내며 너무 일찍 이 세상을 떠난 시부모에게 예쁜 딸로, 며느리로 늘 사랑해 주어서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기에 이 리포트를 바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의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게 될 딸들에게 작은 지혜가 되고 싶다.
2020년에 다시 쓰는 '며느리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