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성취의 기록으로 삼다

by 유경옥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휴나 방학 기간을 활용해 여행을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다녀온 국가의 수는 진작에 열 손가락을 넘어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여행이 즐겁나요?”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요?”

“선생님은 프로 여행러인가요?”


그들은 “Yes”라는 답을 예상하며 던지는 질문이지만 나의 대답은 조금 독특하다.


“20XX년 여름의 나는 이탈리아에 다녀왔다는 그 기록과 성취감이 좋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해서 20살을 꽉 채워 근무했다. 퇴사하던 날,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퇴사자를 위한 송별회를 열어주셨다. 대학 입학을 위해 퇴사를 결심한 것이다보니 격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인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젊은 주임님들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듯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셨다.

“대학생 때는 여행을 꼭 많이 다녀요.”


근무하느라 정신없는 스무 살을 보내느라 여행이 뭔지도 몰랐다. 1년 중 휴가를 쓴 날은 딱 2일뿐이었는데, 그 이틀도 대학 원서를 작성하는 데에 몰두했다. 사실 바쁜 건 둘째치고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 퇴사 날이 되어서야 ‘여행’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힌 것이다. 인생에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퇴사자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이 ‘여행을 다녀라’ 라니, 여행은 뭔가 특별한 걸까.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 건진 모르겠지만 한 번 다녀보자 결심했다.


퇴사 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꽤 열심히 공부를 했고, 학비는 대부분 국가 장학금 혹은 성적 장학금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 등록금 금액 전액까진 아니어도 엄마는 기특하다며 어느 정도의 용돈을 주셨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방학 때마다 여행을 했다. 그렇게 스물 한 살인 대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첫 여행은 ‘내일로’라는 국내 기차여행으로,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한 친구와 다녀왔다. 어린 시절 학교 캠프 장소에 다시 가서 사진을 서로 찍어주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어른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던 그 감정도 얼마 전 일 같다. 여행을 마친 후에는 여행 사진을 모두 모아 포토북을 만들어서 한 권씩 소장했다. 포토북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만든 직후에는 막상 많이 쳐다보지 않았지만 1년 뒤, 5년 뒤에 어쩌다 발견해서 구경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풋풋함과 그 시절의 아련함에 흠뻑 취하게 된다.


선생님이 된 후에도 여행은 계속됐다. 직업의 특성상 방학 시즌에만 여행이 가능해서 매번 사람 많고 비용이 많이 드는 극성수기라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다녀온 후의 보람은 그 비용을 훨씬 넘어서기에 쿨한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게 된다.




처음은 성취, 그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현재에 있는데 지난 과거엔 무엇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기록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스무 살의 나, 서른 살의 나를 여행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다. 포토북을 제작해서 책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SNS에 기록하여 다시금 찾아보며 그날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어떤 장소에 다녀왔다는 기록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성취감을 주는 것이다.


여행 기간은 짧게는 1박 2일, 최장기간은 2주 정도이다. 비행기 티켓에 비용을 많이 들였을 경우 여행 기간이 길어진다. 사전 계획 없이 급작스럽게 멀리 나가는 여행은 거의 없기에 비행기 티켓을 무작정 구매하여 마음을 다잡는다. 여행지는 동행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결정한다. 미치도록 가고 싶은 국가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라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바람을 맞으며 공항에 도착하면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5일 정도면 현지 음식이 질려버리는 탓에 금방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버린다.


십여 년 간 여행에 대한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행 스타일, 여행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최대한 가보지 않은 곳을 선택하려 했다.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곳에 가는 새로움도 좋지만 이전에 다녀왔을 때 만족도가 높았던 장소에 다시 찾아가 그 나라의 느낌에 깊게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이와는 꼭 여행을 함께 하고 싶고, 다녀와서 즐거웠던 곳에 다시 한번 같이 가 그곳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다. 한 국가에 방문하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장소를 다 챙겨 다녀와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진득하게 한 곳 한 곳 즐기고 싶다.


무엇보다도, 성취의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여행이 이젠 즐거워졌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다녀야만 했던 여행이었는데 이젠 나의 소신을 가득 담아 즐길 수 있는 며칠의 의미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 과거의 여행도 즐거움의 기억으로 남았다.


대학 입학 전 송별회에서 주임님들이 왜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셨는지 이젠 알 것도 같다.



이렇게 의무적으로 행해서 성취의 기록이 되는 일이 즐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와닿는 경험도 있지만 기록이 쌓여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의무시간을 부여한 봉사활동, 스펙을 위해 시작했던 대외활동 등 당시엔 그저 기록만 될 뿐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활동 후에 무심히 적은 일기장, 블로그, 영상으로 촬영해 기록해 둔 유튜브 등 SNS까지 기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성취를 위한 기록의 범위는 월 단위, 학기 단위, 심지어 연 단위여도 좋다. 어떤 기록이냐에 따라서 추후에 즐거움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니 무작정 겪어나가 보는 것이 어떨까.


지금의 나는 생각을 글로 기록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글을 작성하는 게 이미 즐겁기도 하다.


20xx년 x월,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성취하여 기록에 남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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