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은 버스 기사가 되었다.

쓸모를 다한 우리의 정착지_ 01

by 길건너목련


"나 있잖아, 처음 세척실에서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손목에 난 이 뚜렷한 목장갑 자국이 너무 부끄러웠어."



친한 언니가 몇 년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우리는 한 대학 식당 세척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저 '그런가?'하고 웃어넘겼었다.


그래도 손목에 남은 목장갑 자국은 조금 지나면 어김없이 없어지니까.



하루에 수천 명이 오가는 대학교 식당이든, 직장인을 상대로 회사 식당이든, 아니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 급실실이든 모두 똑같이 고무장갑 안에 목장갑을 끼고 일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주방에서 일어나는 위험 속에서 내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베이고, 데고, 때로는 열기 속에 쓰러지기도 하는 곳이 바로 단체 급식 주방 속 현실일 텐데 오죽할까.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험한 일을 해왔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자고 일어났더니 난데없이 이런 일이 하고 싶어진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 마흔이 훌쩍 넘어버렸고, 그 어떤 일터에서도 더는 날 원하지 않았게 되었을 뿐.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전에 일을 시작한 날 보며 사람들은 툭하면 일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따지면 20년 넘게 사무직에서 일한 내 남편도 다를 게 없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우리가 가난하게 살아도 일복이 많아 굶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였다.


오라는 곳도 많았고, 잠깐 일을 쉬려고 치면 일할 곳을 소개해준다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가진 능력 탓에 양질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없을지언정 적어도 언제나 일할 곳은 언제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달라졌다.


내가 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년 윗사람과의 트러블 문제로 어쩔 수 없이 50대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50군데, 100군데, 아무리 이력서를 써도 어디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한 통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버스운전기사라는 직업에 뛰어들었다.


20년 넘게 사무직에서 일했던 50대 초반 남성이었던 남편은 그렇게 버스운전기사가 되었다. 내가 몇 년 전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급식실 여사님이 되었던 것처럼.



그랬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일복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시대를 그것도 젊은 나이에 살아갔던 것뿐이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이 시대에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자리에서 조리실무사나 버스운전기사라는 직업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이 아니라고 비하할 의도 역시 없다.


하지만 세상에,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는 직업의 귀천이 분명 존재한다.



(물론 해맑은 어린아이가 지나가다가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난 입술에 침을 촉촉하게 바르고 이 세상에 직업의 귀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관한 질문과 맥락이 비슷한 내용이니까)



고로 내가 지금 몇 년째 일하고 있는 급식실이나, 밤낮을 주단위로 바꿔가며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는 버스 운전사라는 직업은 절대 쉬운 직업군이 아니다. 몇 달 전 나와 같이 일하던 동기는 팔을 데었고, 나 역시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오늘 출근하던 남편 역시 다른 동료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만약 남편이 여전히 사무실 근무를 하고 있었더라면 (버스 운전기사 초봉과 비교할 수 없는 연봉도 아쉽지만) 난 오늘 이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이 와? 많이? 어떡해? 운전 조심해, 사고 나면 큰일 나는 거 알지."



분명 남편이 사무실 근무였다면 다칠 일이라고는 A4용지에 손가락을 베이는 일이 전부였을 테니까 말이다. 잦은 부상과 사고,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직종이 좋은 직업일리 없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하지만 쓸모를 잃은 우리를 받아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뭐 어쩌겠는가? 남들처럼 돈 많은 부모도 없고, 가진 능력도 없다. 덕분에 모아둔 돈도 없고, 부동산 같은 건 구경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감지덕하고 이 불안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지.



남편은 출근하는 나를 보며 매번 이렇게 말한다. 어김없이.



"다치지 마."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매번 이렇게 말한다. 어김없이.



"차 조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