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토막 난 나의 쥐꼬리 월급

쓸모를 다한 우리의 정착지_02.

by 길건너목련
급식실 조리사 월급은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한다.


방학 기간 동안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노동 무임금,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일을 하지 않았으니 돈을 줄 수 없다는데 거기다 대고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노동자들 중에 방학을 즐길 수 있는 직종은 또 몇 개나 되겠는가. 우리에게는 모든 직장인의 꿈일지도 모를 방학이라는 보상이 있다.


하지만 그 방학 기간 무노동 무임금 문제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팍팍한 우리네 현실이 방학이라고 봐줄 리 없지 않은가, 사실 우린 돈이 없으면 1분 1초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똑같이 주어지는 방학 기간이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보상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니.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방학을 보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삭신이 쑤시고 아픈데 방학이라는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니 얼마나 달콤한가?


그러나 남편의 실직 후 모든 게 급변했다. 무임금 무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무서워졌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 200 따리.(정확한 따리의 뜻은 알 수 없지만 뉘앙스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아무리 급실실에서 열심히 일을 해도 겨우 200을 버는 내가 난데없이 가장이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남편의 퇴사는 사실 내게 공포였다. 솔직히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부동산은커녕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내 잘못이 가장 크긴 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남편은 다행히 취직했다. 두둥, 무척 다행스럽게도 버스 기사님이 된 것이다.


실직 1년 만의 일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월급 차이가 확연히 나긴 했지만 둘이 벌면 그래도 살아는 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겨울이 왔다. 내가 실직자와 다름이 없어지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내 월급은 반 토막이 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 더!


그랬다. 난 100 따리도 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겨울 방학은 길기까지 하다. 2월도 방학이다.


무노동 무임금!

봄 방학이라 불리지만 내 인생의 봄은 되어주지 않는 가혹한 방학 2차전.



"남편은 말했다. 이제 내가 벌잖아, 괜찮을 거야. 우린 버틸 수 있어."


입만 열면 헛소리인 남편이었지만 믿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우린 부부가 간혹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직종에 몸 담게 된 상황이니 더욱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급식 노동자, 혹은 출근하는 시민을 볼모로 잡은 버스 노동자, 사실 듣기만 해도 얼마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인가.


며칠 전 버스 파업 때문에 나 역시 제대로 볼 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며칠 동안 일과가 엉망이 되었다. (차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고, 우리 집 근처에는 지하철 역도 없다.) 몇 해 전 버스 파업 때는 1시간 넘게 걸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덕분에 지각까지 했었다.


급식 종사자들은 또 어떤가, 어떤 학교에서는 의견이 타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선한 음식재료들을 그대로 폐기하고, 본격적으로 파업이 시작되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밥마저 주지 않는다는 뉴스까지 났었다.


사실 누가 들어도 불편한 이야기다.


맞다, 시민과 아이들은 우리의 볼모다.


이런 상황에서 볼모를 잡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라는 변명이 쉽게 통할 리 없다.


결국 버스 운전기사인 내 남편은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어줄 버스 운행을 막았고, 내 소중한 아이가 먹고 자라야 할 음식을 내가 짬통에 쏟아부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는 이야기니까.


물론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 학교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 (솔직히 난 파업을 하는 것도 몰랐다. 뉴스 보고 알았다.) 우리 남편 역시 서울에서 일하지 않는 탓에 며칠 전 파업을 했을 때도 열심히 버스를 운행했다.


남편 역시 파업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 오늘 엄마한테 못 가."


"왜? 오늘 장모님한테 간다며?"


"버스가 안 다니잖아?"


"버스가 왜 안 다녀?"


"파업했잖아? 아니, 버스 운전하는 사람이 파업한 것도 몰라?"


"아, 그래서 서울 버스가 안 다녔구나."



[버스 파업 때문에 내가 발을 동동 구르던 날 나와 남편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두 직업군의 파업을 옹호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방끈도 짧고 무식한 내가 여기서 전태일 열사의 업적을 거론하며 우리 노동자의 역사는 시위와 파업으로 시작되었다는 강론을 펼칠리는 없지 않은가.


사실 나는 이런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는 쪽에 속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것보다 훨씬 나쁘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욕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득은 이득대로 챙기는 쪽에 가깝다.


까놓고 말해서 급식 종사자들이 애들을 볼모 삼아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싸잡아하는 욕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줄만하지 않은가. 정작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지난봄에 다친 무릎이 여태 아픈데 우리가 받는 위험수당은 꼴랑 5만 원이다. 다달이 나가는 병원비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한의원에 가서 잠깐 자빠져서 침을 맞아도 18.100원인데!)


내 월급은 방학 때문에 반 토막이 났는데, 남편은 감차 이슈로 한 달에 채 20일도 일하지 못한다. (보통 여름, 겨울 학생 수가 줄어들 때 운수 회사에서는 운행을 줄인다. 그걸 감차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월급은 200 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 고생을 하면서 한 달을 제대로 운행해도 세금을 떼고 나면 300을 넘기지 못하는 데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 집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물론 지금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너무 후져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버스 기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카더라'하는 소문 따윈 믿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도 실감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버스 운전기사 월급 많다고 그랬는데 나한테는 진짜 개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욕을 먹어야 한다면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난 파업 찬성파가 되는 것인가?




"이런 제길, 나 같은 뚜벅이는 어떻게 살라는 거야? 왜 엄마 병원 한 번 가는데 아주 봇짐 싸들고, 2박 3일 재 넘어가라고 하지! 아니, 이게 나라냐! 버스가 안 다니는 게 말이 돼!"


그건 좀 많이 부끄러운데, 버스 파업했을 때 나 진짜 엄청 많이 욕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