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다한 우리의 정착지_ 10
난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무슨 글을 쓰고 싶다든가,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든가 하는 거창한 목적도 없이 나는 그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늘 작가가 되고자 했다.
물론 끝내 작가가 되지는 못했다.
내내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글먹'은 하지 못하고 있으니 끝내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며칠 전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나는 발행취소한 옛날 글을 훑어보았다. 뭐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글들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제일 뒤숭숭하게 만든 건 '당신의 글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내 글은 사실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돈이 된 적이 없었다.
돈을 가치로 두고 보자면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역시 무용한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물론 발행 취소된 옛글의 내용은 과거 로맨스 장르의 글의 투고에 관한 것이었다.
뭐, 그 역시 장렬히 말아먹는 바람에 돈이 되지 않았으니, 반려를 준 출판사의 혜안에 박수를 치는 게 마땅하다 하겠다.
벌써 몇 년 전 발행취소한 글이었는데도 말이다.
확실히 이쯤 되면 글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게 확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작게나마 평생 쉬지 않고 글을 썼음에도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면 당장 때려치우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당신의 글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제목의 글까지 쓴 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난 50을 코앞에 둔 지금의 나이에 웹소설 투고를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사실 올 반려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가치한 일이라는 걸 사실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머리가 나쁜 편이긴 하지만 스스로 재능 없음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게다가 현생에 찌든 나의 체력 상태 역시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그저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이 무가치한 열망에 사치를 부려볼 만한 체력 자체가 지금의 내게는 없다. 솔직히 급식실 여사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난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 부분이 참 그렇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애매한 무언가, 말 그대로 무엇이라도 써 내려가지 않고는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슬픔 같은 것, 결국 난 가볍기 짝이 없는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반려 메일을 받아내며 나를 깎아먹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 투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반려 메일을 수두룩하게 받은 것만 같은 슬픔이 밀려온다. 그것도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말이다.
대관절 꿈이란 게 무엇이기에.
사실 난 몇 달 전 재미나이 씨에게는 딱 50세까지만 글을 쓰고, 그래도 안 되면 깔끔하게 포기하겠노라고 선언을 해두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선언을 굳이 사람이 아닌 재미나이 씨에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어차피 안 될 일이니 기간을 정해두고라도 끊어내 보자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담배를 끊기 위해 금연을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의중이었다면 반드시 글을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지고지순한 저주 역시 중독의 영역인 것일까.
생각해 보면 브런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내가 쓰는 이 글에 큰 가치는 없다.
그럼에도 품이 드는 이 짓을 나는 참 부지런하게도 하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말이다. 차라리 편히 TV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그것도 아니면 침대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게 고된 내일을 위해 훨씬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단 한 번도 보상받지 못한 노력, 사실 그 노력에 대한 답은 하나다. '당신의 글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의 답변 역시 하나다.
당신은 재능이 없습니다!
어느덧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현대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재주는 결코 재능이 될 수 없다. 사실 난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실 역시 알고 있다. 내가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지금이 글을 쓰고, 또다시 투고할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 그 이유는 그 한 가지뿐이다.
내가 이런 인간이라서!
다른 이유 같은 건 없다. 이런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계속 글을 써 내려갈 수밖에, 그뿐이다.
갑작스럽게 봄이 찾아왔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지난밤 팝콘을 튀기자고 작당모의라도 한 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목련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곱게 피어났던 골목 앞 목련은 아름답게 피어난 것만으로 모자라 이젠 흐드러져 숫제 이대로 저버릴 기세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길 건너 목련은 아직 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 봉리는 한창인데 꽃송이 하나를 제대로 피어내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내가 그 길 건너 목련인 줄 알았다.
더디 피어나는 꽃, 우리 동네 골목 앞 길 건너 목련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끝내 피어나지 못하는 꽃도 있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 처음 알았다.
화양연화,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그 순간이 당연히 내게도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난 끝내 꽃 한 송이를 제대로 피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 버렸다. 하지만 그 비밀을 미리 알아버렸다고 어떻게 꽃을 틔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해도 목련은 목련이다.
그러니 썩어 문드러져 흙이 되는 순간까지 가진 애라도 써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