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미국
지금까지 만난 선후배 중에 일 잘 하는 사람들은 꼭 이 말을 했던 것 같다.
"쪽팔리기 싫잖아"
다른 인더스트리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광고대행사 사람들은 그랬다.
사실 AE일이라는 게 그렇다.
소극적으로 일하면 클라이언트와 제작팀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만 하면 된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제작팀에 충실히 전달만 하는.
그런데 쪽팔리기 싫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Value를 더하게 된다.
나도 제작팀처럼 제작안 아이디어를 함께 내거나,
클라이언트가 요청하지 않은 선제안을 하거나,
기획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소위 말하는 "끌로 파거나".
직업에 대한 신성한 소명의식이다.
우리가 금융권처럼 연봉을 많이 받는 인더스트리도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할애한다고 회사에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내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일함으로써
나의 행복을 극대화하며 내 직업 또한 최대한 존중하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보지 않아도 내 자신이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무엇이든 쉽사리 넘겨 보내지 않는,
일종의 "강박"으로 발전한다.
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마음에 드는 글씨체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폰트를 바꾸거나
PPT에 들어간 이미지 비율이 안 맞으면 일일이 다 체크하거나
심지어 발표 대기실에서까지 내용을 고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하면 솔직히 참 피곤했다.
다만, 일로 기억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냥 쪽팔리기 싫었던 것 뿐.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 아닐까.
일 잘하고 싶으면, 쪽팔리기 싫으면 된다.
일을 대충하는 사람들은 연차가 쌓일수록
남을 속이는 기술에 능수능란해지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연차가 쌓일수록
나를 속이지 않는, 쪽팔리기 싫은 기술을 더욱 연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