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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대옥 Aug 24. 2021

날카로운 방조제에 가슴이 아팠다

부안 변산 새만금 앞바다에서의 군생활을 마치며 생각한 것들

Copyright : KAEDO

18개월의 군생활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보냈다. 새만금을 마주보는 아주 작은 해안 소초였다. 

육군이 바다를 지킨다는 말은 어색하게 들리지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모든 해안은 최전방이다.

그래서 해안경계부대는 언제나 출동상황과 훈련이 빈번하다. 

지금 이 순간도 긴장감속에 경계작전이 이뤄지고 있다.


격오지인 해안 소초는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린다. 넓은 책임구역에 비해 사람은 늘 부족하다.

돌이켜보면 업무, 경계근무, 훈련 등으로 언제나 피곤했던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두 가지, 

하나) 집에 갈 시간은 이 순간에도 언제나 다가오고 있다는 것. 

둘) 경치가 좋다는 것이다. 경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앞에는 고군산군도가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 뒤에는 국립공원인 변산반도, 그 사이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이 있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온 내게 예쁜 자연과 맑은 공기는 좀 낡은 표현이지만 아무튼 '힐링'이 되었다.


언제나 바다 너머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섬들 사이로 해가 뜨고 졌다. 갯벌의 옷을 입었다 벗는 해안은 자연의 신비였다. 새들은 끼룩거리고, 날개를 펼고 창공을 휘저었다. 철조망을 무시하듯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저 새들이 순찰을 돌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Copyright : KAEDO

끌려온 군생활이라는 것이 유쾌한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나마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하는 것은 다행이었다. 특히 우리 소초의 아담한 흡연장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석양을 배경으로 하는 담배 연기가 그렇게 운치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도 동료들과 군생활을 푸념할 겸, 바다를 볼 겸 자주 흡연장에 들렸다. 

담배가 아닌 시간을 태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병장이 없는 작은 부대 특성상, 뜀걸음(달리기 체력훈련) 코스는 새만금 방조제였다. 봉고 트럭 뒤에 방탄헬멧을 쓰고 가서 새만금 방조제 어딘거에 내린다. 그리고 직선으로 쭉 뻗은 방조제를 그냥 3km 달리면 된다. 대충 가력도항에서 서두터항까지의 거리다. 

 

하지만 내 눈을 보이는 것은 앞의 결승점이 아닌 왼쪽의 새만금 내해였다. 처박힌 채로 녹슬어가는 배들, 방치된 굴삭기들, 낡아 비틀어진 어망들이 흩어져있다. 바다 위에 잡초가 올려진 아주 어색한 땅이었다.

'세계 최대의 간척지'라는 풍요의 메시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만 가득할 뿐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끝인 서두터항도 마찬가지다. 죽은 항구다. 배가 나가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과거에는 서두터항의 배 출입을 관리하는 소초가 있었다고 한다. 간척 전, 아주 옛날이었을 것이다.

방조제가 생기고, 둑이 바다를 막고, 바다가 썩어간 뒤 뱃사람들은 부안을 떠났을 것이다.

작은 푼돈만이 쥐어졌을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으로 불렸다. 부안과 군산 사이의 바다를 막고 땅을 만드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권을 거치며 사업은 강행되었다. 

그렇게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땅을 남겼다.

해수는 담수로 바뀌었다. 4조원을 쏟아붇고도 수질은 5등급이다. 

방치된 땅에 카지노를 짓겠다는, 공항을 세우겠다는, 산업단지를 세우겠다는 공염불이 넘쳐난다.


서두터항 맞은편에는 '새만금 홍보관'이 있다. 무엇을 홍보하는 것일까. 

서두터항 뒤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로 진입하는 국도를 타다 보면 남은 주민들의 아우성이 느껴진다.

"해수 유통하라" "누구를 위한 잼버리 축제(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린다는 세계 스카우트 행사)인가"

Copyright : KAEDO

서해안이 아름다운 이유는 곡선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섬들이 별들처럼 수놓아져 있다. 좌우로 휘감긴 갯벌은 반짝반짝 태양 아래 빛나고 있다.

뻘이 되었다가, 물이 되는 해안의 마법은 살아 숨쉬는 생태계의 보고 '였다'.

쭉 뻗은 새만금 방조제의 직선은 군생활 내내 나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다.


전역 후 뉴스를 보았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이다.

부안 갯벌은 없었다. 바로 밑의 고창 갯벌은 세계유산이 되었다.


새만금방조제에서 조금만 내려가도 다시 갯벌은 펼쳐진다.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내가 감탄했던 지형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그토록 잔인한 광경 사이에 우리 부대가 있다. 

너무나 불편한 모순이다.


전역 전날, 해안선 수색을 나간 아침이 떠오른다.

총을 매고, 장구류를 차고, 간조인 바닷가를 쭉 걸었다. 

돌에 낀 미끄러운 이끼, 뻘밭에서 군화를 지나가는 소라게, 낡은 군화 사이로 들어간 바닷물에서 

아직 죽지 않은 생명력을 느꼈다.


아마 전역 전날이어서 느껴진 감정이었겠지만. ㅋ.


Copyright : KA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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