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전영애

내게 어른

by 오은아


"우연!으로 날아든 본질!"


가벼이 접근한 것들이 값진 본질로 다가온 경험, 누구라도 있겠지만 참 신기하다.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 보면 잘 기획된 것 마냥 내 삶에서 퍼즐이 맞춰지지.


정원을 이쁘게 가꾸는 어느 할머니라는 정보 한 줌만 들고서 다큐멘터리로 그녀를 만났다. 한참 식물 디자인 공부를 할 때여서 더더욱 정원이나 가드닝에 관심이 컸다. 식물 공부가 아니더라도 십수 년 전부터 타샤튜더 할머니처럼 자신의 재능을 잘 가꾸는 할머니들에게 유독 관심이 갔고 책이든 영상이든 그들의 정겨운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은 나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정원을 메인 콘텐츠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전영애 할머니가 등장했고 나는 이(!) 할머니가 그(?) 할머닌 줄 모르고 다큐를 보다가 찌릿 전기충격 같은 필연을 부르고 말았다.


정원은 뒷전 본질을 횃불처럼 들고 나한테 걸어 들어오신 전영애 교수님.

도대체 내가 헤세의 데미안을 몇 번을 읽었던가. (참고로 헤르만 헤세를 퍽 좋아한다. 책방에 헤세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것도 전영애라는 번역자의 이름이 떡~하고 박힌 민음사 판을 말이다. 그 할머니가 이 할머니였다. 이렇게 만나진다고? 영 엉뚱한 주소를 들고 잘못 찾아간 목적지에서 첫사랑 같은 어마어마한 사람이 만나지기라도 하는 듯. 이 가벼운 우연 앞에 깊이 박힌 필연이 고구마줄기처럼 준비되어 있었다니.


이쁜 정원 좀 보자고 들어갔던 할머니의 세계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줄곧 고민해 온 그 "지향"의 영역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내 세계에 어른이라 불릴 만한 또 한 사람을 찾아낸 것이다. 그 "어른"이라는 존재는 이제와는 다르게 책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시대를 앞지른 저세상 사람의 작가도 아니었고 말 한마디 섞기 힘든 외국인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가서 말 걸 수 있는 거리에 내 모국어로 만나지는 동시대 한국 할머니. 이미 헤세의 책으로 과거에 인연이 닿았고 또 다른 시간과 의미를 타고 내 삶 한 영역으로 구체화되어 들어온 교수님.


이전에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면 먼발치에서 어렴풋 그 사람(들)을 보면 족했다. 그러나 책방을 하고나서부터는 내게도 용기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래서 일단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해야 할 말이 생기면 곧장 그리로 달려가는 학습된 용기가 생겼다. 우선 그녀를 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지향으로 지은 여백서원을 좀 보고 싶었고 마침 한 달 한 번 여백서원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고 하니 그분의 발자취, 자칭 7인분 노비로 가꾸신 정원이며 그분의 시간 안을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나도 나름의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나 싶어 시도한 것이 책방 3개 모임에서 일단 교수님이 번역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 괴테의 <파우스트>를 완독 하겠다 생각했다. 내가 아는 이 할머니를 괴테 학자로 책방 선생님들께 소개하는 것도 나의 몫이고 말이다. 그분의 에세이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그다음 그 해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 서너 달을 괴테와 파우스트로 보냈다.

그해 가을, 그녀를 만나러 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월마토(한 달 한번 여백서원을 일반인에게 오픈하는 날) 날을 맞추어 대형 버스 한 대를 맞춰 버렸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다큐를 본 사람이 적지 않았고 책방에서 이미 교수님 책과 파우스트를 읽어 여백을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많이 모아졌다. 책방 회원은 아니지만 정원 다큐를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아 책방 sns를 통해 함께 여백을 방문할 사람을 모으니 45인승 한 차를 채울 인원이 금방 모아졌다.

나 혼자도 갈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할 때 더 의미 있다는 사실을 책방 하면서 내내 느끼지 않았던가. 내 품을 좀 들이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장으로 여는 것이 또 책방지기의 일이겠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괴테학자, 번역가, 시인, 2011년 바이마르 괴테학회 금메달 수여 등 그분이 이룩한 어마한 업적에 비하면 여백에서 만난 전영애 할머니는 너무 소박하고 친근했다. 아기 같은 웃음을 꺄르르 웃으시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동네 할머니 마냥 정감 넘치는 환대를 해 주셨다.


파우스트를 완독하고 간 우리의 정성이 통했던지 여백서원 앞에서 거짓말처럼 교수님과 마주치게 되었고 첫 대면 단체 사진을 기분 좋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젊은 괴테의 집 건립 때나 수선화 펀딩 등 자잘하게나마 정성을 보탤 수 있는 일들로 인연을 이어가다 내친김에 2025년에는 파우스트 독회 1년 과정에도 참여하며 책방 선생님들과 한 달 한 번 방문하고 있다. 소소히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까지 가져가고 있으니 첫 우연의 힘이 얼마나 진득한 인연이 되었나 나도 재미있게 놀라고 있다.


그분이 나는 왜 좋은가

그분은 괴테학자다. 평생을 괴테 연구에 몸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삶, 그런 분에게 괴테를 소개받았다. 괴테의 몇 작품을 읽고 모르는 것 아니었지만 괴테를 대문호 정도로만 알게 된 그때와는 다르게 "인간 괴테"를 정식으로 소개받은 느낌이었다. 그런 괴테는, 그리고 전영애 교수님은 내 삶의 지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낼 힘을 만들도록 해 주셨다.

그래 그거다.

나의 방황을 혼란의 지옥이라 말하지 않는 이

나의 방황을 지향과 과감히 연결시키는 이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


나의 방황은 길 없어 허우적대는 혼란의 지옥길이 아니고 지향이 있기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깊어짐의 역설이다. 혼란의 오해로 낙심하지 않게끔 나를 강하게 붙잡는 힘이다.


"하고 싶은 일을 소신 있게 해도 괜찮다. 세상이 복잡해서 수를 써야 되나 이게 더 쉽나 하지만 산을 넘지 않는 일은 없다" 본인이 손발이 닳도록 사신 삶 앞에 나온 증언 같은 것이 그렇게 힘이 될 수 없었다.


배울 것이 있으면 그곳이 아프리카든, 아메리카든 단숨에 가셨다고 했다. 그 배움과 배움의 길을 기꺼이 내 삶에 포함시키는 교수님의 삶이 내 시간에도 전이되어 꿈틀 거리는 자쾌를 선사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한 달 한 번, 파우스트 독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수님이 계신 여주에 간다. 전국에서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 에너지는 내 영혼을 짱짱히 펴는데 부족함이 없다. 가는 시간 오는 시간 왕복하면 7시간 족히 걸리지만 여백에 머무는 시간이 고작 4-5시간 밖에 안되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삶 여행하듯, 일상 휴식을 그리듯 그곳엘 간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여백서원 산책로를 걷는다. 괴테 오솔길도 걷는다. 내 인생을 한 땀 한 땀 꿰어가는 발걸음처럼 나무도 보고 꽃도 본다. 이 산책로도 처음엔 덤불길이었겠지. 누군가의 뜻으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겠지. 하니 나도 왠지 그 덤불을 오솔길로 만들어 보고 싶다.


"괴테는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면 그 문제를 정면으로 '살아냅니다.' 회피하거나 관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치열하게 부딪히며, 그 경험을 자신의 내면과 문학 속으로 녹여냅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키울 수 있는가? 그 물음에 괴테의 삶, 전영애 교수의 삶은 내게 많은 울림이 되어 온다.


다음달에도 나는 여백엘 갈 것이다.

60년간 파우스트를 쓴 괴테를 만날 것이고

오솔길을 걸으며 나의 앞으로의 시간을 꿈꿀 것이다.


나의 지향은 이 숱한 거름들을 가지고 여백의 정원처럼 나의 정원, 나아가 우리의 정원이 되리라 믿는다.

색색이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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