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여자가 되기로 했어

나의 다음을 기획하며

by 오은아

한 번씩 꽂히는 게 있지

나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류의 사람)는 아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취미나 책이나 작가도 은근하게 탐색이 끝나고 시간이 관심으로 공들여져야 비로소 눈길을 주는, 눈길을 준다고 해서 또 금방 몰입이 되거나 깊게 빠지는 스타일도 아니다. 한마디로 어정쩡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을 해 본 적도 있다. (요즘은 워낙 정보가 많고 오픈된 시기여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듣자 하니 그건 아닌 건 같다만) 실증이 잦고 오래 뭉근하게 어떤 일을 해 내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책방이나 독서 모임처럼 '의무적 덕업일치'(하고 싶은 것, 살고자 정한 가치나 방향을 해야 하는 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정으로, 나아가 직업으로 만들어버리는) 장치를 걸어버리는 수를 쓴 것도 내 단점을 잘 알아서다.


그래도 꽤 여러 영역에 호기심이 있는 편이고 아버지 피를 타고나서인지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것은 많다. 그러나 호기심이 간다고 모든 걸 해 보는 건 아니고 이걸 내 미래 직업 내지 덕업일치의 범위로 끌고 들어 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반드시 부합되어야 움직인다.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단순 취미로,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한 번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진 않는다.

그 정확한 표적지 안에 들어온 것이 민화다.

(민화 :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 산수, 화조 따위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 적으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


얼마 전 대구에 개관한 간송미술관에서 나는 옛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저 담담하고 정갈한 그림에 내 숨을 덧대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나기까지 했다. 그려진 물은 이다음 흐르는 물이 되고 그림 속 버드나무는 이내 바람이 건드려 살랑이기까지 했다. 사물과 꼭 같지 않아도 소실점이 없어도 그림자가 없어도 그림이 된 모습이 그다음 모습을 움직이게 했다. 수수한 색감이며 기교 없는 단정함이 좋았다. '옛사람이 스스럼없이 걸어오는 말' 그 말 안에는 옛 시간, 옛사람 결국은 우리 인간의 원형이 함께 뒤엉켜 나부낀다고 해야 할까...

버드나무 아래 말 타는 선비는 중후한 표정, 말고삐를 쥔 채 온몸으로 봄을 느끼며 으쓱이는 아이는 물오른 생명력이 얼굴에 팡팡 터지고 있다. 그 얼굴을 하고서 아이가 하늘 거니는 종이 위에 꿈같이 서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 힘 있게 내리긋는 선, 종이가 먹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길 위에 흔적이 감동이 되는 이런 것이 옛 그림이었나....

촌스럽게만 보던, 미술적 기능적 요소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던 나의 선입견에 완전한 반전을 거기서 그렇게 느끼고 돌아와 나는 민화 화실을 뒤적뒤적 검색하고 있었다.



<과거>


그림에 대한 내 울렁이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20대 잠깐 화실에 다니던 경험, 책방에서는 모임으로 꾸려 꽤 긴 시간 독학그림을 그리던 시간들. 이제 와서 보니 그때 임시로 내 마음에 만족을 주기 위한 한 방편만은 아니었다. 20대 때 유화가 좋아서 1년 채 못되게 화실을 다닌 적도 있고 30,40대가 되어서는 맑은 느낌이 나는 수채화가 좋아서 혼자서 이래저래 명상처럼 그렸다. 그때만 해도 민화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덜 세련된 것 같았고 용과 호랑이가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이라는 맥락은 쭉~ 내 삶 어떤 시간 안에든 동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나...



칭찬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 그림에의 동경


그림을 동경의 대상으로 설정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야길 하려면 중학교 꽃나이 열다섯 살 은아로 돌아가야 한다. 열다섯 살 먹은 우리들 말로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불렀던 무섭기로 소문한 미술선생님.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웠다기보다 천상 아티스트 같은 고독의 얼굴이었지 않나 싶다. 열다섯 살 아이들이 그 고독을 읽어낼 리 없었고 그때 우리들 언어로 무섭다고 했을 테다. 그래 그 무섭기로 소문난 미술 선생님이 어느 날 미술실로 나를 부른다. 그때 한 반엔 50명이 육박한 아이들이 교실에 바글거렸다. 그때 우리 학교 2학년 반이 16반까지였으니 교과 선생님이 특정 학생을 기억한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선생님께로 불려 갔다.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이 16반 아이들 중 나를 불렀다. "너는 다음 주부터 학교 마치고 미술실에 와서 그림을 배워라"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이 결정을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입 한 번 못 떼고 나는 다음 주 정해진 요일, 방과 후 미술실에 갔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3명의 학생들이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소녀가 우러러보는 선생님께 받은 특별한 칭찬 같은 것. 그 사건이 나이가 들어도 내내 나를 움직이는 힘으로 남았다. 미술시간마다 선생님이 내게 해 주신 칭찬들, 친구들 앞에서 내 그림을 우뚝 내어 보이며 구체적으로 남긴 말들이 20대에도 30,40대에도 미술화구통을 소중하게 집 한편에 보관하게 하는 나로 만들었고, 짧게나마 삶 가운데 조각으로나마 화실 언저리를 돌게 하였고 이윽고, 취미를 너머 내 이다음의 시간을 이것으로 담아보게 하는 연결고리로 남게 하였다.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러 화실에 간다.

짧게 짧게 사건으로 건들렸던 추억을, 나를 춤추게 했던 기억을 다만 그것으로 두지 않고 살려내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나는 그림이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 무엇을 좋다. 잘하고 싶다 하는 영역의 것이 생겨서 내 앞으로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나의 그림 이야기가 옮겨갈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꽤 오래이고 싶고 취미보다 조금 더 진한 농도이길 바라고 그리하여 내 미래 내 다음 시간을 꽤 큰 비중의 이야기로 가져오고 싶다.


나를 그렇게 건들어준 과거의 흔적과

나의 이 바람에 도움을 주는 현재의 흔적이

언젠가 내 미래 나의 삶을 압도할지도...


삶의 저 앞 어딘가 흥분되는 일들을 걸쳐놓고 사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건지....

그 진하기를 조금씩 느껴가는 나이...

잘 가꾸어 온 내 시간...

모두 흠뻑 안고 싶다.


그렇게 나는 그림 그리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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