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목격할 때마다

할아버지와 의자

by 오은아

늦었다. 곁눈질할 사이 없이 엑설레이트를 밟아야 한다. 왼쪽 백밀러를 잠깐 보는 사이 하얀색 주택 건물 앞에 한 할아버지가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있다. 표정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등허리를 잔뜩 말고 바닥과 무릎사이 높이 어딘가에 눈이 멈춰져 있다. 어떤 인과도 발생하지 않는 관계, 우연히 내 시야에 들어온 어떤 노인. 노인의 표정과 눈빛. 고갈된 에너지를 겨우 엉덩이로 받치고 앉은 어느 노인의 모습을 지나왔다. 신호등이 하나 지나고 두 개 지나고 주차를 하는 동안에도 그 모습이 꺼지지 않는다. 잘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을까? 아무도 말 걸어주는 이가 없나?

말 걸어와도 받을 힘이 없나?

시간을 죽이지 않으면 살 방도가 없는 지경 같은 것이 있나?

내 부모와 나아가 나의 미래를 그 장면에 얹고 있다.

텅 빈 공간 속으로 돌진해 오는 시간을 하나하나 태우고만 있을 그 어떤 날이 올까?

눈빛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우두커니 앉아 허공에 나를 두는 시간이 내게도 올까?




여느 때처럼 책방에서 다른 관계들과 복잡한 시간들을 엮는다.

이전 내 질문은 잠시 사라지기 마련이다.


퇴근길이다.

출근길 그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출근길 할아버지는 나의 태근길 다시 재생되었다.

이 재생의 시간이 노년이라면 나는 감당할 자신이 있나?

두려움이 폭포처럼 들이닥친다.


책방에서 나는 모임 사람들을 바꿔가며 책을 바꿔가며 날마다 죽음과 삶을 공부하는데

이 모든 것이 퍽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공부하듯 욱여넣고 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나타난 할아버지가 일순간 공부한 노년에 대한 다른 버전을 들고 나타났다.




나의 기우였길 바란다. 동네 친구들과 국수 한 그릇 잘 잡수시고 잔소리 많은 할머니가 사발에 끓여주는 맥심 커피도 걸쭉하게 한 잔 마시고고 까무룩 소파에서 낮잠도 주무셨다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해 질 녘 바람 앞에,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그 의자에,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그 자세로 이 복잡계의 시름을 무장해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딱 그즈음 공교롭게도 내가 다시 할아버지와 마주쳤길... 그랬길!



그것이 아니라면 아랫배부터 밀쳐 오르는 고통 같은 것이 연민 같은 것이 허무 같은 것이 감당이 안 되는 속력으로 치받을 것이기 때문에.


요즘 부쩍 모든 사람들이 한 편 몹시 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때마다 목구멍이 탁! 하고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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