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거
스무 살 이후로 죽 나는 ‘어른’이 되려고 부단 노력해왔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넉넉한 사람이다. 자기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잘남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 자신과 타인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짧게 말하면 꼰대의 반대말쯤 될 것 같다. 수년간 나 자신을 돌아본 결과, 내가 꼰대를 시쳇말로 ‘극혐’하는 데에는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는 꼰대 기질이 큰 몫을 함을 깨달았다.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슈퍼 꼰대가 될 수 있는 기질이 나에게는 있다. 자라온 환경을 자양분 삼아 내 안에서 옴짝 옴짝 싹을 틔웠을 거고 내가 가진 교사라는 직업 또한 이제 움튼 새싹에게 얼른 자라라고 거름을 붓는 격이니, 네모난 교실에서 독재자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나는 차분하게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중이었는데 요즘 들어 조바심이 자꾸 난다. 대체 어른은 언제, 어떻게 될 수 있는 건가. 나는 왜 여전히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나.
지난 3년간 내 밤낮과 통장까지(!) 갈아 넣으며 사랑했던 아이들이 얼마 전 수능을 봤다. 언제나 첫사랑은 늘 그런 거니까, 나는 가진 마음을 탈탈 털어 주면서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서툰 사랑이 늘 그러하듯이 아이들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 안절부절 웃었다 울었다 하며 그렇게 2년을 내내 붙어 다녔다. 한 발 떨어져 지켜보게 된 올 해라고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지는 못해도, 늘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교무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한민국에서 고3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버거운가를 나눴다. 수능 전날, 수험표를 받아 들고선 짐짓 다 큰 표정으로 ‘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멀어지던 뒷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19년 키운 아이인 양 가슴이 찌릿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비장하게 출정했다가 장렬하게 꺾이고 돌아왔다. 역대급 불수능은 서울 북쪽 끄트머리에서 평생을 소소하게 살아온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도 잔인한 시험이었고, 다들 인생에서 처음 만난 큰 시험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1교시 국어부터 31번 만유인력 문제에 흠씬 두들겨 맞고 말았다.
수능 다음 날 아이들을 볼 일이 너무 두려웠다.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수백 번을 생각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는데 그래도 여전히 막막해서 출근이 하기 싫을 정도였다.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쌔앰-' 하고 들어오면 수고했다 토닥이고, 울면 같이 울었다. 근데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는 아이는 대체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종일 속상했다. 제대로 위로할 노련함도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농담을 할 재치도 없는 내가 한심해서 짜증이 났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매일 다 스러져가는 얼굴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뭐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다가도 나까지 덩달아 우울한 게 짜증 나서 이것들 얼굴 좀 그만 보고 싶었다. 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한 달이었다. 재수하는 게 무슨 자기 존재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인 양 지난 19년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앉아있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내 열아홉이 딱 저러지 않았나 싶었다.
방을 다 헤집어 고3 때 스터디 플래너를 찾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앞에 앉아서 애꿎은 바닥만 툭툭 차던 내 제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 안에 있었다. 입시가 한 방에 안 풀리면 내 인생이 다 망해버린 거라고 확신하는 오만한 내가,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 앞에서 혼자 창피당하느니 그냥 그만 살고 말아 버릴 거라는 무모하고 독기 어린 내가 거기 있었다. 무시무시한 결심(?) 옆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학교 아빠'였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다 툭툭 놓아두고 가셨던 초콜릿이며 대일밴드며 그런 껍데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죽 붙어있었다. 시간이 지나 빛이 다 바랜 영수증 뒤에 샘이 써준 "김유진 울지 말고 쉬운 거 풀어라" 같은 글까지 참 알뜰히도 잘 모아두었더라. 이런 걸 모아 붙이는 애가 열아홉에 죽기는 무슨. 그 시절 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나의 실패를 마주하기가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잘 보여줄 뿐이었다. 빼곡히 적힌 글을 보며 반성이 됐다.
다 내 조급함 이었나보다. 아이가 얼른 괜찮아 보여야 나라도 덜 불안할 것 같아서 괜찮기를 종용했나 보다. 그런 깨달음이 드니까 나와 닮은 그 아이한테 더 미안해졌다.
'야 다들 어려웠대. 결과 나올 때까진 모르니까 좀 있어봐 봐.'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앉아있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오늘은 기분 좀 어때? 야 날도 좋은데 나가서 뛰고 올래? 기분 좀 나아지겠지!'
조언을 가장해서 자꾸 꼰대질을 했던 게 부끄러웠다.
오늘은 가서 사과부터 해야지. 안 그래도 불안할 텐데 자꾸 재촉해서 미안해, 내가 고3 제자는 처음이라 그래- 하면서 겸허한 고해성사를 해야겠다. 야,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면 널 믿는 나를 한 번 믿어보는 건 어떠냐? 같은 괜히 낯간지러운 소리도 해 보고 좋아하는 버블티나 하나 사서 입에다 넣어줘야지, 그리고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줘야겠다.
어른까진 모르겠고, 그렇게 덜 꼰대스러워져 봐야겠다.
(201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