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원광고등학교 강연
시작은 똥멍청이처럼 한다. 그러니까 핑계를 대서라도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다.
오늘의 전조증상은 옷 입기에서 드러났다. 그럴 줄 알고 올해는 강연 갈 때 옷차림을 정해 놨다. 면 티(해마다 케빈 거시기에서 두 장씩 구입)에 청바지(역시 같은 곳에서 구입), 그리고 재킷(비슷하지만 계절마다 다름).
한여름에는 하얀색 블라우스에 팔랑팔랑한 검은색 바지. 올 여름에는 강연이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이지 않아서 한 달에 두세 번씩 같은 옷을 교복처럼 입고 나간 거다.
오늘은 원광고등학교에 가는 날.
하필 바람이 서늘하고, 하늘은 맑았다가 음침해지고, 구름은 내려앉았다가 슬쩍 옆으로 비켜났다가 다시 나타났다. 베란다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나는 시골 살 때 우리 광환이 삼촌이 전기로 물고기 잡으려다가 감전될 때처럼 뻣뻣해지면서 파박 거렸다. 입력해놓은 옷 입기 매뉴얼에 에러가 난 거다.
“나 뭐 입어?”
유치원생도 아닌데, 자매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거 입어. 내가 준 블라우스 있잖아.”
“바지는?”
“아직은 시원한 걸로 입어.”
우리 집에서 원광고등학교까지는 자동차로 45분. 수학동 3층에 있는 도서관 청람관은 어두웠다. 동굴처럼 습습하지는 않았다. 에어컨을 세게 켜놔서 시원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도서관 안에 있던 어느 학생이 유리문 바깥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는 말했다.
“작가님이세요? 신발 신고 들어오셔도 돼요.”
노트북 가방을 테이블에 놓는 동안 불이 켜졌다. <소년의 레시피>나 <우리, 독립청춘>을 들고 있는 학생들은 집어등에 몰려드는 물고기들처럼 호의를 보이며 나한테 와서 줄을 섰다. 나는 곧바로‘어서와. 선 사인회, 후 강연은 처음이지?’ 분위기에 편승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최고였다는, 재미있어서 두 번 읽었다는 말을 라이브로 몇 번이나 들었다. 사인을 받는 학생들을 지켜보던 한 선생님은 “이렇게 정성들여 길게 사인하는 분은 처음 봐요”라고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내 감격은 100% 충전됐다.
<소년의 레시피>와 <우리, 독립청춘>을 각각 읽은 학생 40명은 보고서 같은 형식에 글을 써왔다. 글씨들이 너무나 참하고 잘생겨서 옵하,라고 부르고 싶었다. 반짝반짝 빛나고 근사한 학생들이었다. 1시간 강연 듣고 쉬는 시간에는 질문을 써서 냈다.
“원하는 것을 하다가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해요?”
슬럼프는 살아있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거의 날마다 사람들은 슬럼프를 겪는다고, 땅에 파묻어도 기어 나오는 독종이라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냥 하라고, 한 발만 들여놓아보라고 했다. 나도 어제 오늘 해서 한 문단 밖에 못 썼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작가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뭉클했다. 눈물이 쏟아지고 콧물이 드럽게 나올까 봐 쿨한 척 말했다. 나도 만날 뭐가 될지, 뭐하고 살지 고민이라고. 큰 꿈은 가져본 적 없지만 그 순간만은 배포가 생겼다. 베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왕이면 미모의 베셀 작가가 좋겠다. 체 게바라도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했잖애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