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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r 26. 2016

매일 10km 걸어도 느는 몸무게, 그 청소부의 비밀

환경미화원 청년 이승완

이승완씨는 군산 기계공고 기계과에서 밀링과 선반 일을 배웠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는 군산 대우자동차 하청업체로 취업을 나갔다. 6개월 동안 교대근무, 차 도색을 했다. 신나 냄새 때문에 골치가 몹시 아팠다. 차라리 해병대라도 입대하고 싶었다. 현역 지원은 나이가 차야지만 입영 통지서가 나온다고. 승완 씨는 재깍 신청서를 받아주는 의경에 지원했다. 



“제대하고는 장항에 있는 LS 산전(옛 LG산전)의 하청업체에서 일했어요. 에어컨이나 냉장고에 들어가는 동관 파이프를 만들었어요. 회사는 365일 안 쉬어요. 용광로를 꺼뜨리면 돈이니까요. 50명씩 3교대, 150명이 일했어요.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휴가라도 쓰면, 저는 대근(대체 근무)을 했어요. 하루에 16시간을 일했어요. 많게는 한 달에 10번까지요.” 



회사에는 승완씨 또래가 없었다. 젊은 축이 30대 후반이나 40대였다. 월급은 180만원. 상여금은 60만원씩, 1년에 네 번 나왔다. 승완씨는 통근차를 타기 위해 구암동 현대아파트에서 군산 이마트까지 걸어 다녔다. “2년만 열심히 하면, LS 산전 정직원 시켜줄게”라는 말만 되새겼다. 꼬박 3년이 지났다. 스물여섯 살 청년 승완씨가 정규직 될 길은 안 보였다. 



그는 어머니와 의논을 했다. “대근 걸리면, 하루에 5시간 밖에 못 자요. 진짜 힘들어요” 라고 하소연을 했다. 어머니도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했다. 회사 생활을 두 번이나 해 본 승완씨는 신중했다. 일의 강도와 월급도 고려하면서 구직활동을 했다. 뜻하지 않은 백수 생활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속이 탔다. 



“안산 공단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거기는 군산보다 보수가 세다고 했어요. 올라갔지요. 처음에는 시화에 있는 할머니 집에 살면서 물류센터 일을 했어요. 생활비 쓰고, 할머니 용돈 드리고 하니까 모아지는 돈이 없었어요. 안산에서 큰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는 사촌형이 일자리를 소개시켜 줬어요. 안산 중앙병원의 앰뷸런스 차량 기사요.”



승완씨는 응급환자 실어오고, 예약 환자 데려오는 일을 했다.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도 하고, 간호사들과 환자들의 스케줄 관리도 했다. “열심히만 하면 병원 원무과 정규직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꿈을 키워나갔지만 정규직이 될 징후는 안 보였다. 그 때, 아버지가 안정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며 집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열아홉 살 여름부터 10년 동안 여러 가지 비정규직을 전전한 승완씨, 아버지가 권한 환경미화원 일은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정규직이라는 것 때문에 미련이 생겼다. 뿌리쳐지지가 않았다. 승완씨는 흔들렸다. 그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했다. 그러나 어떤 직장도, 그가 뿌리내리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승완씨는 환경미화원의 길로 들어섰다.     


 

“어떻게 청소할까? 내가 고개 들고 할 수 있을까? 군산에서 태어나서 계속 학교 다니고 회사 다녔는데... 아는 사람 만나면 어떻게 하지?” 



스물아홉 살 청년은 걱정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 한여름, 언덕배기가 많은 나운 1동에서 청소차 뒤에 타서 쓰레기를 치웠다. 군대에서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를 온 몸으로 느꼈다. 일하다가 거리에서 동창을 만난 적도 있다. 그는 웃으면서 친구한테 인사했다. 창피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일하는 거니까.


  

승완씨는 나운 1동에서 2년간 쓰레기를 치웠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일까. 그는 혼자서 월명공원 청소를 맡게 되었다. 공원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통을 수거하고, 편백나무 군락마다 있는 쉼터에서 시민들이 버리고 간 과일 껍데기나 음료수 병을 치웠다. 운동이나 산책 나온 모든 시민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처음에는 어려웠죠. 인사를 하면, ‘쟤, 뭐야?’ 그런 식으로 저를 보니까요. 나중에는 사람들이랑 말도 나누게 됐어요. 그러다보니까 시민들하고 관계도 좋아지고, 일하는데 보람도 느끼고요. 웃으면서 일하면 좋잖아요. 저도 제가 모르는 시민들에게 그렇게 환하게 인사할 줄은 몰랐어요.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



근무 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 그는 하루 10km 이상을 걸었다. 쓰레기를 치우면서 쉬지 않고 다녔다. 그런데 살이 쪘다. 공원 청소를 하라는 발령이 났을 때 83kg 였던 몸무게는 2년 뒤에 90kg. 사람들은 서글서글한 승완씨에게 음료나 음식을 권했다. 마다하면 서운해 하니까 대체로 먹는 편이었다. 운동 나온 장인어른은 그를 볼 때마다 말했다.



“이서방 왔는가? 살이 더 오른 것 같네. 빠져야 하는데.”


     

승완씨는 아내 유리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솔직했다. “환경미화원입니다”라고 말하면, 퇴짜 놓는 여자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장애인 복지회관에서 운동치료사 일을 하던 유리씨는 “괜찮아요”라고 했다. 유리씨는 그를, 남들과 똑같은 건실한 직장인으로 대했다. 그래서 승완씨는 유리씨가 좋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2년 전에 혼인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빚을 내지도 않았다. 서로 가진 돈을 합치니까 2천5백만 원. 거기에 맞는 원룸 전세를 구해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부부는 2년간 돈을 모아서 전세 5천5백만 원짜리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곧 있으면, 첫 딸이 태어난다. 뒤집고, 기고, 걸음마를 할 아기를 위해서, 여전히 알뜰살뜰하게 산다. 



“저는 한 달에 용돈 25만원만 받아요. 와이프가 돈을 어디다 쓰고, 얼마나 저금하는지 몰라요. 근데 워낙 알뜰하게 잘하는 사람이라서 불만 없어요. 와이프는 저랑 결혼하고 나서 월명 수영장 강사로 일해요. 아침 6시부터 오후 6까지, 근무 시간이 저보다 1시간 길어요. 제가 먼저 퇴근해서 바로 집에 가요. 내조를 해야죠. 시키는 일은 다 해요. 음식하고 청소하고. 아직도 스스로 찾아서는 못 하고요.”


승완씨는 2주일에 한 번씩은 회사 동료들이랑 술 한 잔씩 한다. “우리 일은 장점이 엄청 많아요. 동료들이랑 추억도 많고요” 라고 말하는 그는, 군산시 노사가요제에 2년 내리 출전 했다. 처음에는 주위의 권유로 했다. 사장님과 사무실 직원, 현장에서 청소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팀을 꾸려서 나갔다. 예선 통과, 본선에서 장려상과 응원상을 받았다.   



그 다음 해에는 가요제에 나갈 준비를 체계적으로 했다. 1주일에 두 번씩, 두 달 동안, 노래강사한테 홍삼 트리오의 ‘기도’를 배웠다. 화음 넣는 법을 연습했다. 레슨 없는 날은 퇴근하고서 노래방에 갔다. 그렇게 준비해서 나간 노사가요제, 그들의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끝났는갑다” 체념했을 때, “대상!”이라고 했다.



“상금도 백만 원이나 받았어요. 같이 나간 동료 이철씨, 배창석씨, 전경민씨, 김종복씨가 상금으로 기분 내자고 안 했어요. 군산시청에다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자고 뜻을 모았어요. 그래도 없는 시간 쪼개서 무료로 가르쳐 준 노래강사 선생님한테는 고맙다고 했어요. 저희끼리 돈 걷어서 선생님이랑 회식했어요.”  


승완씨의 회사에는 사장님이 “우리도 좋은 일 좀 해보자!”고 만든 ‘희망자원봉사단’이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옛 군산역 무료급식소로 봉사활동을 한다. 약 300여 명의 독거노인들이 식사한다. “막상 해보니까 은근히 흐뭇해요”라고 하는 그는, 이번 토요일에는 퇴근(주 6일 근무, 토요일 낮 12시까지 근무)하고 연탄 2천장을 배달 할 거라고 했다. 



그는 지금 민원 차에서 일한다. 시민들이 신고하고 내놓은 장롱과 침대를 수거하러 다닌다. 일이 없을 때는 현장지원을 나간다. 청소차 타고 쓰레기 치울 때보다는 낫단다. 그러나 “청소 일에 ‘꽃보직’은 없어요”라고 했다. 무거운 거 실어 나르니까 어깨와 무릎이 쑤신다. 승완씨도 그의 직장동료들처럼, 물리치료를 받는다. 한의원에 가서 뜸도 뜬다. 



환경미화원들에게 겨울은 호시절, 승완씨는 “추운 게 오히려 좋아요” 라고 했다. 일하다 보면, 몸에 열기가 퍼지니까 추운 줄 모른다고. 여름은 확연하게 다르다. 몸에 난, 크고 작은 모든 구멍에서 땀이 솟아난다. 두피와 이마에 맺힌 땀은 흘러내려 눈을 찌른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온갖 악취는 코를 찌른다. 



“안녕하세요?”



여름 날 월명공원, 청소하던 승완씨는 나와 내 자매한테 인사를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아는 사람이겠지. 모르는데 저렇게 다정하게 인사하겠냐?” 했다. 기특한 청년을 기억 못해서 미안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나는 인터뷰하기 위해서 승완씨를 만났다. 그와 나는 확실히 모르는 사이, 5년차 환경미화원인 승완씨는 말했다.



“몰라도요, 일하면서 인사하는 게 당연하죠. 저희는 군산시민 세금으로 일하잖아요. 동료들도 저처럼 해요.”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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