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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r 26. 2016

“딱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뀌고 말았어요!”

요가 강사 이경미

“대학만 졸업하면, 200만 원은 쉽게 벌 줄 알았어요. 취직해서 엄마한테 뭐든지 다 해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2012년 2월, 지방에 있는 한 사립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경미씨는 군산 집으로 왔다.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잘 하면, 학생들이 늘고, 그러면 인기 강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경미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어학원에 취직했다.   


 

어릴 때 경미씨 꿈은 한의사.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이 좋다고 해서 일찌감치 정해놓은 꿈이었다. 무엇이든지 지면 속상한 아이였다. 마흔에 외동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우는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무엇이든지 잘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학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도,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손꼽을 만큼 공부를 잘 했다. 



“우리 학교에서 전교 1등 해도 한의대 가기 힘들대.”



군산여고 1학년 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다. 한의사라는 꿈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이과와 문과로 나뉘는 2학년 때, 그녀는 당연히 이과를 택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능력이 못 미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선생님한테 문과로 바꿔서 영어교육학과 가겠다고 했어요. 안 된대요. 그래서 싫어하는 수학Ⅱ랑 물리를 계속 공부했어요. 내신이 중요하니까요. 저희 학교에는 이과에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몰려 있었어요. 등급제라서 4%만 1등급이에요. 하나만 틀려도 4등급이에요.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은 교차지원(이과에서 문과로 지원)도 안 되고. (한숨)그래도 열심히 했죠.”



그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임용고시 봐서 영어교사 되는 게 목표였다. 성적장학금도 받아야 하니까 학과 공부도 신경 썼다. 복수전공으로 ‘외식산업조리학과’를 하고도 싶었지만 공부에 방해될까 봐 포기했다. 선배들이랑 영작 스터디 모임도 했다. 어학연수 갔다 온 선배들이 경미씨가 쓴 에세이를 보고 “현지에서는 안 써. 뉘앙스가 달라” 할 때마다 마음이 상했다.  


 

“아빠, 서러워서 못 살겠어요. 저도 어학연수 가야겠어요. 보내주세요.”



경미씨가 말했다. 어머니와 둘이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는 등록금을 대줬다. 그러나 1년에 3천만 원쯤 드는 어학연수는 안 되겠다며 미안해했다. 경미씨는 좌절했지만 마음을 추슬러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힘들게 교사 돼서는 그만두는 선배도 보았다. 시험과 문법에 치중하는 학교 영어교육에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 4학년, 동기들은 임용고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경미씨는 그 대열에서 슬그머니 멀어졌다. 교사 되고 싶다는 마음은 희박해졌다. ‘학점은 마무리 잘 하자’고 생각해서 학과 공부는 하던 대로 했다. 졸업한 친구 몇이 짐을 꾸려 서울 청량리 고시원으로 갈 때, 경미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학원에 취직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선생님이니까 공부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사탕 하나 더 사주고, 쉬는 시간 더 많이 주는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 학부모님들이랑 상담 전화 하는 것보다는 숙제 꼼꼼히 검사해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숙제도 공부니까요.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전화 자주 하는 강사가 더 좋을 수 있죠. 그런 일로 치이니까 보람을 잘 못 느꼈어요.” 


영어 강사 만 1년, 경미씨는 한 번뿐인 인생을 소모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일단, 비리비리한 몸부터 활력 있게 만들어보자고 나섰다. 그래서 요가원에 갔다. 한 달에 10만 원, 큰돈이었다. 마음속으로는 30일만 배운 뒤에 집에서 혼자 해야겠다고 계산을 했다. 스물다섯 살 봄, 밤바람이 몹시 차던 어느 밤이었다.   


  

경미씨가 간 곳은 필라테스와 피트니스를 겸하는 ‘날씬한 요가원’. 재미있었다. 일 끝나고 요가 하러 갈 때 막 설렜다. ‘매가리’ 없던 몸은 탄탄해졌다. 몇 달 지나자 허벅지 앞뒤로 근육이 올라왔다. 하루라도 쉬면 근육이 사라질 것 같았다. 일이 많아서 피곤한 날도, 꼭 요가를 하러 갔다. 온 힘을 다해서 동작을 했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진짜 좋아. 요가는 너를 살게 해 줄 거야. 우리 같이 예뻐지자.”   



그녀는 친구들한테 말했다. 요가는 불안한 마음을 가시게 만들어줬다. 무슨 일이든 완벽을 추구하던 경미씨는 열정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가하면서 성격이 화사해졌다. 몸매 라인도 예뻐졌다. 척추도 반듯하게 세워지면서 조금 틀어져 있던 골반도 제자리를 찾았다. 한쪽만 먼저 닳던 구두 굽도 두 쪽이 공평하게 닳았다.  



성실한 태도는 눈에 띈다. 요가원의 박선희 원장은 경미씨에게 지도자반을 배우라고 권했다. 주저하지 않고, 따로 그 과정을 공부했다. 그녀에게 가장 고난도의 자세는 일자 뻗기. 지도하는 원장이 경미씨의 두 다리를 짝 벌어지게 미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일자 뻗기는 속 시원하게 안 됐지만 요가 지도자 자격증은 땄다.  


“2013년 10월부터 1년 반 동안 투잡을 했어요. 어학원 끝나고, 요가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했죠. 고민했어요. 열정이 넘치다 보니까, 저는 어학원에서 숙제 많이 내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인 거예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 잘 하기를 바라면서도 숙제 많은 건 싫어하셨어요. 영어를 많이 접하지 않고서는 잘 할 수 없어요. 여기는 외국이 아니니까요.”


2015년 6월, 경미씨는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영어 강사에서 요가원 전임강사가 되었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중년의 회원들은 “왜 요가를 해도 그대로야? 살이 안 빠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몸집이 좋은 어머니를 둔 경미씨는 “자녀들이 먹고 남은 음식만 안 먹어도 살 덜 쪄요”라면서 웃는다. 



키 169cm에 길쭉한 팔다리. 경미씨는 ‘비주얼 요가 강사’ 로 딱 좋다. “건강한 게 먼저야”라면서 10년간 태권도를 시킨 어머니의 선견지명 덕분에 쑥쑥 자랐다. 경미씨는 요가하면서 시선도 달라졌다. 비싼 돈 들여서 대학 졸업한 게 무용지물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교육학을 배운 덕분에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요가를 가르칠 수 있다.    



“저는 몸이 진짜 뻣뻣한데 요가 할 수 있나요?”



처음에 요가 하러 오는 사람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뻣뻣한 몸. 경미씨는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뻣뻣해요. 저는 너무 너무 뻣뻣한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동작을 완벽하게 안 해도 된다고, 발 끝 잡을 때에 발목 잡으라고 한다. 일자 뻗기 동작을 하면서 “저는 3년 만에 됐어요”라고 웃는다. 사람 몸은 천천히 변한다고 말해준다. 



경미씨도 처음에는 욕심이 있었다. 다른 요가 강사들처럼 멋진 자세를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자세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왜 안 될까?’ 불만스러웠다. 그녀의 몸은 아주 더딘 속도로 유연해졌다. 그래서 뻣뻣한 몸을 가진 회원들을 더 잘 이해한다. 동작 하나를 제대로 하기까지 긴 시간 몸이 아프고, 마음속으로 ‘그만둘까 말까’ 번뇌한다는 것을.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를 앓는 사람들도 요가를 하러 온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해서 생기는 거북목, 여학생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척추측만증, X자 다리나 O자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요가원에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경미씨는 그이들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 에너지도 주고 싶다. 그래서 배움이 있는 곳이면 찾아다닌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물리치료과 이영진 교수님이 소도구 메디컬 트레이닝 강의를 전주에 와서 하셨어요. 배웠죠. 발전하고 싶으니까 여기저기 워크샵에 가요. 원인을 찾는 공부가 필요해서 근육학이나 해부학 등도 찾아보고요. 플라잉 요가 자격증도 땄어요. 지금은 돈 벌어서 배우는 데 쓰는 단계예요. 필라테스도 배우려고요. 동양의 요가와 서양의 스트레칭을 합친 운동인데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어요. 속 근육을 잡아줘요.”



요가에서 주로 마지막 동작으로 하는 사바사나.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경미씨는 사바사나를 처음 할 때 무척 좋았다.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도 감동이었다. 그래서 경미씨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악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좋은 곡은 메모했다가 경미씨가 지도하는 사바사나 때 켜 준다.   



경미씨는 요가원에서 회원 상담, 서류작업, 요가 수업 등을 한다. 전보다 근무 시간은 긴데 재미있다. 영어를 가르칠 때는 짝사랑하는 것처럼 조바심이 난 적 많았다. 요가 강사 하면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비로소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중년의 회원들은 경미씨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세와 마음을 알아봐 준다고.  



“요가도 소통이에요. 잘 되면, 그 사람이 가진 밝은 에너지의 최대치가 나와요. 저도 딱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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