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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Apr 21. 2024

탑클라우드 호텔 801호에서

그는 나보고 쉬었다 가라 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는 손만 잡고 있을 거라고 맹세했다. 그와 나누는 이야기를 몹시 좋아하는 나는 침대에 딱 선을 그을 거라고 대꾸했다.


탑클라우드 호텔 801호에서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 손을 잡지도 않고서 호텔 오기 전에 시간을 보냈던 장항 솔숲, 우리 둘이 맨발로 걸었던 해변,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우주 정거장’으로 쓰일 것 같은 스카이 워크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수평선과 장항 제련소 굴뚝과 소나무 우듬지를 보며 우주선에 접선하려고 모인 사람들 이야기를 창작했지.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는 여전히 내 손을 잡지 않았다. 호텔 들어오기 전에 본 번영주택(2층짜리 연립주택, 천변뷰)으로 화제를 옮겨 갔다. 거기를 사서 우리 둘의 작업실로 쓰자고 했다. ‘나 요새 쫌 돈 없는데....’ 염력과 독심술을 쓰는 그는 7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인세와 강연료와 원고료를 모아둔 자신의 ‘작가 통장’ 잔고를 밝혔다.

김진영 철학자는 <이별의 푸가>에서 육체는 미래를 모르고 오로지 과거만을 안다고 했다. 자기가 있었던 곳, 머물렀던 시간, 자기가 만지고 감각하고 느꼈던 손, 팔, 입술, 목소리만을 안다고. 그를 알고 지낸 15년과 나눴던 무수한 이야기와 곁에 바짝 붙어 걸을 때의 감촉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했어야 할 말을 나는 카톡으로 고백했다.  


“최은경 작가님이 오늘 준 선물을 오래 기억할게. 작가 통장 잔고도. 제발 나를 가져.ㅋㅋㅋㅋㅋㅋ”

#작업실

#번영주택

#사고싶다

#천변뷰

#최은경작가

#짬짬이육아

#이런질문해도되나요

#아직은좋아서하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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