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생님은 여느 아티스트들처럼 팬 사랑이 지극하다. 출근할 때는 실내로 들어가기 직전에 꼭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어 준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팬이 달겨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내가 해봤어요). 사진 찍으라고 포즈도 잘 잡아준다. 정말 최선생님의 팬이라서 행복하다. 행복하다고요.ㅋㅋㅋㅋㅋ
갤러리 카페 공감 선유. 작품 전시만 하는 갤러리 동에는 최선생님과 나 둘뿐이었다. 전시회 가면 그림도 사고 달항아리도 척척 사는 최선생님은 액자 같은 창 앞에 앉아 쉬었다. 나는 최선생님의 마음을 해석했다. ‘그래, 내가 당신의 아티스트다. 마음껏 찍어라.’ 감격한 나는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갤러리 저 끝에서 최선생님 쪽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한 점의 조각품처럼 앉아 있던 최선생님.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는 기형도 시 ‘그 집 앞’을 읊조렸다. 최선생님의 모습을 흔들리지 않게 촬영하기 위해 근육뿐인 허벅지와 종아리에 더욱 힘을 주고 걸었다. 역시 최선생님 팬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갤러리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그 집 앞’의 마지막 문장을 애써 지웠다. 나는, 낙담한 나는, 최선생님이 앉아 있던 의자로 다가갔다. 내 아티스트의 체온을 아직 품고 있는 의자를 영상에 담았다. 팬의 사랑으로 사는 아티스트라고 해도 일하는 사람. 칼퇴가 좋은 거 아닌가.
사정없이 바람이 몰아치는 야외에 최선생님은 서 있었다. 뒤따라갔다. 폭풍우 이는 바다처럼 건너편 숲이 일렁여도 대숲 덕분에 야트막한 언덕은 안온했다. 최선생님은 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티스트. 이십 대 때 떠났던 독일 여행을 들려줬다. 맥주나 소시지, 오래된 성, 아니고 실연 이야기. ‘역시 내 아티스트 최고구나.’ 으쓱하며 주차장으로 나오니 보이는 들판.
“여기는 왜 가을이야?”
최선생님의 말씀이 음성 지원 되는 거다. 아니이. 아직 수확하지 않은 보리밭을 보고 할 말이야? 보리 베고 다시 땅 갈고 무논 만들어서 모내기를 하는 거라고요. 나락 익었을 때만 황금 들판 아니고요, 보리도 익으면 누렇다고요. 최선생님은 도예가(씨름왕 출신이 도예가로 갑자기 정해줌)인데 왜 자연이나 흙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거냐고요?
탈덕이 어디 그리 쉬운가. 시골에서 자란 내가 대도시 사람인 최선생님을 이해하기로 했다. 자고로 자기 아티스트는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
나는 최선생님을 모시고 도심으로 들어왔다. 최선생님의 눈에 띈 건 어느 도예 공방의 폐업 안내문. 최선생님은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았다.
“요새 이렇다니까. 도예가 이렇게 힘들어.”
내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우선 작품을 사야겠지.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최선생님의 작품을 본 적 없다. 우선 최선생님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흙을 퍼서 최선생님이 사는 도시에 보내야 한다. 가만 보면 최선생님은 물레도 없고 가마도 없을 것 같긴 한데. 팬으로서 대규모 조공을 조직해야 하지 않을까. ㅋㅋㅋㅋ
그로부터 사흘 뒤, 최선생님은 영광스럽게도 영상을 하나 보내주셨다. 브런치 카페에서 팔 것 같은 아름다운 메뉴를. 친절하게 설명도 덧붙이셨다.
“오늘 아침 고3 밥. 물레질 안 하고 (프라이)팬 질만 하네.ㅎㅎㅎ”
일상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내 아티스트 존멋! 최선생님이 큰애 입시 끝날 때까지 도예 활동 쉬셔도 뭐라 못하겠다. 참고로 최선생님의 본캐는 오마이뉴스 23년차 편집기자, 그리고 작가. 최근작은 <이런 제목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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