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 결심

문유석 작가님 북토크

by 배지영

문유석 작가님의 최근작은 드라마 <프로보노>.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시청률 종합 1위. ‘모객 걱정은 없겠어.’ 작가님이 한길문고 강연 오신다 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나는 우선 문유석 작가님의 에세이 <나로 살 결심>을 샀다. 급할 게 뭐 있어. 젠가처럼 쌓인 ‘안 읽은 책 책탑’에 살포시 얹어놓았다.


“지영아, 문유석 작가님 강연회 북토크로 한다. (웃음) 사회 볼 수 있어?”


한길문고 문지영 사장님이 말했다.


한길문고는 내가 스무 살부터 다닌 서점, 그로부터 27년 후에 총 28개월간 상주작가로 근무했던 곳. 이제는 그냥 단골손님일 뿐인데도 몇 개의 책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서점에서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문지영 사장님의 사비가 들어가야 하는 행사까지 벌인다. 최근에는 한길문고 신년 파티.


큰일 났다. 북토크 진행하려면 문유석 작가님 책을 싹 다 읽어야 한다. 내 방과 거실과 베란다 책꽂이까지 샅샅이 뒤졌다. 두 권 밖에 안 나왔다(갑자기 죽으면 책이 가장 큰 문제일 것 같아서 주기적으로 버리거나 다른 사람 주거나 한길문고 중고책방에 기증). 더구나 문유석 작가님은 드라마도 3편 쓰셨는데 어쩔.


침착하자.

<나로 살 결심> 띠지에 쓰인 글은 ‘<개인주의자 선언> 10년 후 첫 번째 삶의 끝에서 써내려간 결심結審’. 시간 밭으니까 두 권 먼저 읽으면 되겠어.

하나씩 해치우자.

그런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악마 판사> <프로보노>를 다 완주할 수 있을까.


일요일에는 일찍 일어나서 카페 간다. <나로 살 결심>은 좋아하는 그 시간에 읽었다. 학력고사 인문계 전국 수석. 글 쓰는 부장판사 문유석 작가님이 법원에서 퇴직했을 때는 코로나.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고 철저하게 데이터와 객관적 근거로 판단해서’ 투자한 주식은 망.....


백수와 프리랜서를 겸한 문유석 작가님은 유튜브 중독, 독서불능증, 쓰기 싫다병을 앓는다. 어느새 나는 문유석 작가님을 ‘내 아티스트’처럼 응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아티스트가 잘 안 될 리 없다. <나로 살 결심>은 ‘타고난 영웅보다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속물인 현실적인 인물들’이 나오는 작가님의 드라마처럼 끝난다.


‘초면인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문유석 작가님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첫 질문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할수록 보는 사람들의 짜증만 돋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유퀴즈>에 안 나간다 해놓고서 크리스마스 특집에 왜 출연하셨냐고 물어볼까. 아니이, 드라마 시청한 뒤에 입체적으로 생각해도 되잖아.


<프로보노>를 소파에 누워서 완주했다. 게임 채널 본다고 리모컨 달라는 강썬님한테 모처럼 권위 있게 말했다. “응, 안 돼. 엄마 지금 일하는 거야.” 글쓰기 덕분에 만난 충남 당진의 에세이 작가님들과 한길문고 에세이 작가님들에게 질문도 여러 개 받았다. 나는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북토크 질문을 한 편의 이야기처럼 맞춰 보았다.

1월 23일 금요일 저녁 한길문고 문유석 작가님 북토크. 귀한 시간을 내서 서점에 온 분들은 방청 알바들 같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문유석 작가님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 포인트 아닌 곳에서도 와하하하 웃었다. 이 사랑스러운 독자들 앞에서 문유석 작가님도 어린 시절의 독서와 동네 여행, 부장판사 시절, 중소기업 하나를 세우는 만큼 돈이 드는 드라마를 쓰는 고충도 들려주었다(그래서 <유퀴즈> 출연하신 거예요).


현장에서 받은 질문은 다채로웠다. 작가를 꿈꾸는 최선생님은 죄송하다면서 내란수괴 재판에 대해 물었다.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개인주의자로 살면서 열등감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 어떡해야 하는지도 물었다. 그건 진화 과정의 자연스러운 감정, 문유석 작가님은 자신을 소인국에 온 걸리버라고 생각한다 했다. 소인들이 화살을 쏜다 한들 간지러울 뿐. 사람들을 감자나 배추라고 여기면 신경이 덜 쓰인다고도 하고요.


후딱 지나가 버린 1시간 15분. 나는 그때부터 초조하다. 북토크에 참여한 분들에게는 작가님의 친필사인과 작가님과 찍은 사진이 꼭 필요한데(작가님들은 대개 서울행 버스를 8시 40분이나 9시로 예매한다). 내 머릿속에서는 초시계가 재깍재깍 돌아간다. 질문을 하나 더 받고, 서둘러 정리 멘트를 하는데.


“괜찮습니다. 시간 있어요.”


문유석 작가님이 말했다. 그 순간 진짜로 작가님이 ‘내 아티스트’처럼 귀해졌다. 최애를 주인공으로 쓰기도 하는 나는 다음 책 주인공 이름을 정하고 말았다.ㅋㅋㅋㅋ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북토크도 없다. 그래도 시작 전에 문유석 작가님에게 “몇 시 차 예매하셨어요?”라고 여쭤봤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더 여유 있게 묻고 문유석 작가님도 더 편안하게 말씀하셨겠지.


그날 문유석 작가님은 익산역에서 10시 기차 타셨다.

그날 김희대 박사님 부부는 대구에서 오셨다(한길문고 방문 두 번째).

그날 ‘내 책 좀 사주셔요’라는 말(마이크 잡으면 자동 재생)은 하지 않았다. 잘했어, 나 자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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