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은파유원지
“병자년에 방죽을 부리는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씨가 한 욕이다. 고종 13년인 병자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서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우리에게는 몹시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바로 그해, 조선 팔도의 방죽은 다 가물었다. 말라붙은 방죽은 ‘건방죽’이라고 불렸고, ‘건방지다’는 말이 되었다. 주제 모르고 날뛰는 사람에게는 “병자년에 방죽을 부리는군”이라고 욕했다.
은파는 고려 말에 만들어졌다. 농사짓기 위한 거니까 쌀 미(米)자를 넣어서 ‘미제방죽’이라고 불렀다. 사는 게 고달파도 아름다움은 보인다. 해질녘, 가둬 둔 물이 반짝이는 모습은 너무 예뻤다. 방죽의 이름은 ‘은파’로 바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파를 거닐었다. 그 중에는 ‘머슴 대길이’를 쓴 시인 고은도 있었다. 그는 은파 바로 옆 동네 미면(미룡동)에서 자랐다.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겟작대기 뉘어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였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 밖에 모른단다’라고 하는데, 은파는 어쩌자고 사람들에게 눈 호강부터 시켜주는가. 언제 와도 좋은 곳이다. 여행자들은 물빛다리를 건넜다가 돌아온다. 자전거도 빌려 탄다. 쇠고기무국이나 짬뽕을 먹고는 다시 물빛다리의 야경을 보러 온다. 주말이면, 버스킹 공연도 제법 볼 수 있는 은파에서 천천히 걷는다.
군산 사람들은 은파에 올 때 편한 신발을 신는다. 호수를 끼고 걷는다. 차가 다니지 않는 흙길, 소나무가 무리지어 서 있는 길을 에돌아서 힘차게 다닌다. 한여름이면,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물빛다리 건너 바닥분수에 간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을 입고 온 아이들은 분수에 뛰어든다. 젊은 부모들은 바캉스 하러 온 것처럼 돗자리를 펴고 그늘막 텐트를 친다.
때로 사람들은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낯선 도시에 가서 온종일 쏘다니고, 이국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산뜻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일상은 그대로다. 고달프다. 어느 주말, 은파를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벚꽃 그늘에 앉는 것만으로도, 오리 배를 타며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거 참 좋네” 하는 날이 온다.
동화책 <파랑새>에서 치르치르 남매는 행복을 줄 ‘파랑새’를 찾아 멀리 멀리 떠났다. 갖가지 힘든 일을 겪었다. 그 애들은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다는 걸.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사람 사는 동네와 바짝 붙어있는 은파. 군산 사람들에게는 파랑새다. 여행 온 외지 사람들에게도 “좋다! 은파 오길 잘 했어” 라고 만드는 파랑새다.
첫 번째 사진은 진정석 작가, 두 번째에서 네 번째 사진은 남상천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