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세상으로 가고팠던
동네를 산책하다가 문득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오르막이라서 자주 가지 않았던 길을 오랜만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두 다리로 걸어 오르기에는 언덕이 너무 컸다. 절반쯤 도착하면 이미 다리는 저릿저릿했고, 아빠가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는 날이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가끔 숙제를 깜빡해서 차 안에서 우다다 수학 문제를 풀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언제나고 기다려준 아빠, 어깨가 참 크고 넓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이 떠오른다. 입학 전 엄마 아빠 손 잡고 사전답사까지 했으니, 학교까지 데려다주신 엄마한테는 큰 소리를 뻥뻥 쳤다. 혼자서도 집을 찾아갈 수 있겠다고!
그리고 첫 하굣길. 분명 올 때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는데.. 교문을 나서니 두 눈에 들어오는 세상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압도된다. 집은 어디로 가야 하지? 오는 길에 봤던 그 상가는 어디 있는 거지? 쬐끄만 몸뚱이로 요리조리 고개를 흔들어봤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알 길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보이는 길 따라 걸어보자.
무작정 걸었다. 가다 보면 아는 길이 나오겠지.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아는 풍경은 나오지 않고, 불현듯 두려워졌다. 두리번두리번. 한참을 헤매도 우리 집은 나올 기미가 없다. 이러다 나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야...? (그때부터였을까? 길치의 세계 탐험이 시작된 게.)
정 안 되겠다 싶어 뒤돌아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갔다. 담임 선생님을 부랴부랴 찾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우물쭈물하다 ‘우리 집을 못 찾겠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엄마가 학교까지 나를 데리러 왔고, 엄마표 우리 동네 수업을 받으면서 집으로 내려온 기억이 난다. 여긴 OO 아파트, 여기는 농협, 저기는 피아노 학원 상가....
그때는 너무나도 큰 세상이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없다는 아이에게 ‘동네’는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니 집 밖을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아주 거대한 세상에 던져졌다고 생각한 거지.
다시 찾은 초등학교. 그때와 같은 위치에 서서 세상을 바라봤다. 훌쩍 커버린 키와는 달리 두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몹시도 자그매졌다. 아빠의 드넓었던 어깨는 앙증맞게 줄어들고, 부모님 참관 수업에 온 엄마들 중 나름 큰 키를 자랑했던 우리 엄마도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것처럼 우리 동네도 세월의 풍파를 맞아 쪼그라든 걸까?
구름사다리를 줄기차게 탔다. 쉬는 시간이면 쌩 달려 나가서 요리조리 사다리 위에 올라타 한 칸씩, 두 칸씩 봉을 옮겨 전진했다가 하늘 위로 두 다리를 뻥 차서 박쥐처럼 매달려도 보고. 사다리 하나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줄기차게 놀곤 했지.
제일 높은 즐거움이었던 구름사다리는 이제, 손을 가볍게 올리면 닿이는 세상이 되었다. 혹여나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던 정글짐은 조그만 컵케이크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는 이 세상이 나를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훌쩍 커버린 사이 내 몸에 맞지 않게 된 어린 옷처럼 세상도 조그마해진 거야.
그런데 오늘은 달랐어.
이 조그만 동네 안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는 거 있지? 코딱지만한 운동장에 두꺼운 추억들과 아이만의 순수함, 그걸 지켜보신 선생님과 부모님, 그 어른들도 어린 사랑으로 보살폈을 마음들..
세상은 아담해져 보일지라도 결코 작아지지 않았던 거야. 작은 것들을 소중히 바라볼 수 있는 눈. 때 묻지 않은 맑은 유리구슬처럼 눈동자를 반짝인다면, 우리는 조그만 동네에서 더 큰 세상을 만날지도 모르지.
그때는 커 보였던 것들이,
정말로 커다란 것들이었던 거야.
작아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너머에 넓은 바다를 품고 있었던 거야.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