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옥돌 S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안내자 옥돌 Mar 19. 2024

무인세탁소에 가지 않겠습니다

낭만은 비효율에서부터.

코트에 단추가 떨어졌다.


반짇고리를 사서 직접 꿰맬까 하다가, 겨울코트인지라 수선을 맡기기로 했다.


집 근처 세탁소를 찾아봤다.

무인’이 아닌 곳으로.


셀프세탁방은 여러 군데 보이는데,

주인장이 상주하는 세탁방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 곳을 찾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야심차게 코트를 싸들고 갔건만

여기서 수선은 안 한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

집 앞에서 수선‘’ 하는 무인세탁방을 발견했다.


무인세탁방에 도착했다.


여타 무인세탁방과 다름없이,

키오스크 앞에서 회원가입을 진행한다.


핸드폰번호 인증, 비밀번호 설정, 회원 등록..

귀찮음을 끅끅 이겨내며 세탁/수선 신청서를 누른다.



'세탁, 수선 구분은 어떻게 하는 거지?'

'수선 신청서를 따로 작성하라고? 어디서?'

'코트를 여기에 냅다 집어넣으면 되나?'

'결제는 어디서 하는 건데?'

'QR코드는 또 어딨는 거야~~!!'



세탁소 사장님이 계셨다면 어땠을까.



“세탁? 수선? 뭐 맡기러 오셨어요~”


“수선이요. 코트에 단추가 떨어졌어요.”


“아이고~ 여기만 좀 손 보면 되겠네.

수선비는 선불, 5000원.

목요일쯤 가지러 와요. 문자 넣어줄게요.”


“아하 넵. 감사합니다!”



세탁소 사장님과 함께라면

이렇게나 간단히 끝날 일인데...


무인세탁소라서 빠르게 끝날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 ~


무인세탁소에 수선 맡기려다가

족히 15분은 키오스크 앞에서 씨름했다.


*

디지털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넉넉히 닿은 아날로그는


느리고,

어설프고,

때론 귀찮다.


그러나


따뜻하다.

정감있다.

편안하다.


디지털이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준다면

아날로그는 편안한 삶을 있게 한다.


*

디지털이 만연한 세상에서

아날로그를 사랑한다.


결국 아날로그가 세상을 구하리라 믿는다.



둘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어령 선생님의 책 <디지로그> 처럼!



언젠가는 ‘디지털이 미래’라고 생각했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디지털 세상에서 기획하는 서비스기획자가 멋있어 보였고,

외부 소리에 휩쓸려 환상을 따라갔다.


물론 기획 일은 재밌었다.

앱 서비스의 형태로 상상을 구현하는 것도.


그런데 나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실물의 것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더라.


이를테면 공간,

그 안을 채우는 물건, 향기, 촛불 같은 것들.


소중히 가꾸고 다듬는 일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직접 맞닿는 감동을 주는 유형의 것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는 이유



온라인 요가/명상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음에도

굳이 루프탑 요가 클래스​를 꾸리고,


우리집에 인연들을 하나 둘 불러모아 파티 한바탕을 벌이고,


쿠팡으로 손쉽게 주문할 수 있음에도

15분 거리의 망원시장에 걸어가서 장을 보고,


친구 생일날 카톡 선물하기로 전할 수 있지만

동네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에 기꺼이 마음을 담는다.



낭만있다


라고 말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한강을 배경지 삼아 황금빛으로 물드는 석양,

모닥불 앞에서 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굽는 마시멜로,

바다 아래서 볕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즐기는 물놀이...



그곳에 디지털은 없었다.

아날로그가 자리한 순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낭만은 비효율에서 나온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어이 있어주는 마음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나는

무인세탁소에 가지 않는다.



번외


전에 살던 동네에서 이름을 불러주시며

딸처럼 맞이해 주시는 세탁소 아주머니가 계셨다.


집에서 더 가까운 세탁소가 있는데도

굳이 거기에서 세탁물을 맡겼다.


돌이켜보면,


그 세탁소의 세탁 실력(?)보다

타지에 나와 살면서 느낀 포근함이 절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다.


다른 동네로 이사 온 지금.

가끔은 세탁소 아주머니의 따스한 정감이 그립다.


“아가씨, 또 왔어~?”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

옥돌의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okdol_yoga

매거진의 이전글 오직 너를 위한 생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