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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안내자 옥돌 Mar 22. 2024

You make me a better person.

3월 3주 차 회고록

48시간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 하루에 수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요즘. 그 과정에서는 익숙한 일도 있고, 전혀 새로운 일들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항상 일어난다.)


아직 시작 단계의 프로젝트가 많아서 정신없이 일정이 이어진다. 초기 세팅을 마치고 안정화되면 좀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갖고서, 지금은 이렇게 달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차츰 내가 원하는 큰 그림과 가까워질 수 있겠지.



발도르프 2주 차 수업

매주 수업노트 작성중~!

 아이들의 언어 습득은 어릴수록 빠르다. 저학년일수록 전 수업을 기억하는 양이 확연히 다르다. 거침없이 입말을 따라 하는 걸 들어보면 발음을 그대로 베껴한다. 더더욱 아름다운 발음과 정확한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외국어 학습의 변화가 벌써부터 눈에 보이는데, 일 년을 함께 보낸 후 아이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한 아이의 전학 소식을 들었다. 대안교육과 공교육의 장단과 한계점은 분명하다. 가장 크게는 재정 문제. 대안교육은 학력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반면 공교육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교과서 밖 세상을 배우는 공부를 할 수 있다.  

  

 10명의 아이들에게 외국어 수업을 통한 인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교육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좋은 교육을 더 많은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요즘 정치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다보니 정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아직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정계 진출의 꿈은 거의 없지만.. 이런 말들을 듣고 보니 결국 큰 일을 해내려면 큰 기업을 세우던가 정치를 하던가.. 세상의 모순은 너무나 많고 이끌어야 할 변화는 산더미다.  



예루산렘 STORY


방꾸미기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부터 여태까지 살아온 주거형태는 코리빙이었다. 학교 기숙사뿐만 아니라 지역 학사, 쉐어하우스, 하숙집 등 다양한 주거를 경험했다. 그리고 비로소!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ofc 월세^^)


이번에도 동거인과 함께 사는 코리빙이다. 타인과 함께 사는 건 동일하나, 이전과 분명히 다르다.


이전 하숙집에서 정~말 ‘내 집’을 갖고 싶다고 느꼈던 포인트가 몇몇 있다. 첫 번째는 이가 나간 접시를 발견했을 때. 내 집이었다면 ‘재수 없어!’라며 바로 버렸을 텐데, 이모님께서는 그 접시를 그대로 쓰셨다. 한정된 주방 공간이기에 접시를 공용으로 사용했는데, 가끔 이 나간 접시를 집을 때 그렇게 기분이 별로일 수가.


두 번째는 공간에 취향을 담을 수 있다는 것.


하숙집에도 내 방이 따로 있긴 했지만, ‘남의 집’ 느낌이 강하다는 핑계로 열심히 꾸미지 않았다. (벽지에 그 흔한 엽서 하나 붙여두지 않았다.) 친구들을 초대할 수도 없었기에 방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방을 둘러봤는데 정말 단 하나도 내 취향이 묻은 물건이 없음을 자각했다. 슬펐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고 감각적인 공간 경험에 감동받는 나인데, 내 방 하나도 잘 가꾸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구도 원래 있던 것들이 많았고, 배치도 바꾸지 않은 채로 그냥 내 물건만 얹어 근 3년을 살았던 거다.


오래된 방을 갈아엎을 용기는 나지 않았고, 새 공간을 구할 심산으로 방을 보러 다녔다. 줄곧 살고 싶었던 마포구에서 원룸을 보러 다녔는데, 당시 월세에 10만원을 더 얹어도 아주 좁고 답답한 공간뿐이었다. 무작정 나선 부동산 탐방에서 ‘쉐어하우스’라서 넓게 살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같이 살자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동거인이 나타났다. 그토록 동경하는 마포구에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가 아닌 둘이니까! 그리고 운명처럼, 처음 보러 간 집을 계약했고 마포구 동거생활은 1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한 달이 넘은 시점, 드디어! 내 방이 사람 손길로 채워지고 있다. 커튼, 책상, 침대, 옷장.. 하나하나 내 손으로 선택하고 채워가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 나의 색깔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방을 보며 슬퍼했었는데, 그 한을 다 풀어내는 중이다. 아, 나 취향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 의자도 조립할 수 있구나? 조그만 공간을 이렇게나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인프J 언니랑 같이 살아서 이렇게 빨리(?) 방을 가꾸게 된 거다. 언니는 한 달이 다되도록 짐을 풀지 못한 인프피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혼자 살았다면 내 방은 아직 침대도 없이 텅 비어 있었을지도^^



집들이


1. 꽃집 사장님

@okdol_day


꽃처럼 아름답고 향긋한 친구가 우리집에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집밥 한상 차리고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와 만나게 된 지는 1년이 좀 넘었나?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인 이후로 만난 친구 중에 깊은 유대감을 자랑하는 손에 꼽는 인물이다.


그녀는 단순히 꽃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꽃집을 지향하며 꽃 한 송이에, 제품 하나에 이야기를 담는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며 부딪히고 깨지는 우리는, 성격과 성향은 다소 다를지라도 나아가는 방향성이 동일하다. 나의 목소리로써, 나의 경험으로써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 그래서 그녀와의 대화는 우스갯소리로 시작했을지라도 어느 순간 심연을 헤엄치고 있다.


벌써 단골이 되어버린 동네 칵테일바에 같이 갔다. 사장님께서 우리의 대화에 리액션으로 양념을 뿌려주시다가 급기야 대화에 참여하셨다. 가게에 셋만 남아서 새벽을 나누며 대화를 지새웠다. 그 순간, 우리는 연결되었고 나는 이 가게의 긴긴 단골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즐거운 친구. 만남과 관계를 이어감에 있어 배움을 나누는 친구. 이런 우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2. 아부지

딸내미가 차려준 집밥 :)


처음으로, 서울 집에 아부지를 초대했다. 여태까지는 외부인을 초대하기 어려운 주거형태였기에 부모님을 한 번도 서울 집으로 모셔본 적이 없는데, 마포구에 자리를 잡고나서 아버지께서 서울 올 일이 생겨 우리집으로 모셨다.


요즘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집밥 대신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창원에서 매실액에 참기름에 다리미까지.. 바리바리 싸 온 아부지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외식하러 나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빨래를 널면서 정신없이 아빠를 맞이하고, 집 구경을 시켜드렸다. 별말씀은 안 하셔도 ‘좋은 집 구해서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눈치가 느껴졌다.


이 집에 살면서 동거인과 집밥을 정말 잘해 먹는다. “나 이렇게 건강하게 잘해 먹고살아~”라고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었던지라 계획에 없던 요리를 시작했다. 집에 있는 채소와 재료들을 꺼내 어묵탕을 끓이고, 오일파스타를 만들었다. 휘뚜루마뚜루 만들었지만 그릇에 담고 보니 그럴듯했다.


“맛있어?!?!”라고 연신 물었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아부지는 딸래미가 차려준 밥상에도 미동 없는 표정으로 “괜찮네”라는 대답만 전하신다. 신랄한 비판을 피한 것이 어디랴! 그것이 최고의 칭찬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했다. (요즘 요리를 자주 하다 보니,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도라~)



@okdol_day


백화점에서 두 팔에 나와 동생을 안아서 돌아다니고, 주말마다 엄마 대신 맛있는 요리를 해 주시고, 잠에 못 드는 어린 딸 머리맡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울 아부지.


방 꾸미는데 나사 박을 일도 있고, 아직 설치하지 못한 커튼봉도 있었다. 아빠 앞에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해~~’라며 찡찡댔더니 바로 망치 가져오라는. 아빠 덕분에 2층 침대 매트리스 커버도 단번에 씌우고 원목 거울도 딱 알맞은 자리에 설치했다.


아빠 옆에선 키만 훌쩍 커버린 어린아이가 되는 나.

그런 딸램의 아양과 부탁을 다 들어주는 아부지.


어릴 적보다 훅 작아져버린 어깨와 몸집이지만.. (건강 악화와 함께 살이 15kg는 빠져버리셨다. 현재 헬스를 하시며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커다란 아부지의 등판이 그립기도 하다.)


아빠는 여전한 나의 슈퍼맨이다.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

옥돌의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okdol_y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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