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개발자

by 서초량

나는 ‘개발자’라는 용어가 마음에 든다. ‘만들어 낸다’는 의미. 지금은 대중적인 단어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개발자’라는 단어를 듣지 못했다. 대신 ‘프로그래머’라는 단어를 썼는데 생소한 감이 있었다. 당시 한 친구는 장래 희망이 ‘프로그래머’라고 했더니 “너는 커서 게임을 하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와 혼동한 것이다. 거의 20년 전, 컴퓨터 공학과는 인기가 없었을 때이니 그럴 만했다.


‘프로그래머를 어떻게 알았을까? 어려워 보인다. 나는 할 일이 없겠네.’


그랬던 나였는데 현재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개발자가 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직업을 소개할 때 ‘어쩌다 보니’ 개발자가 되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직도 현실을 자각하면 얼떨떨하다. 뭐야, 내가 왜 개발하고 있어?


이건 다 소거법 때문이다. 재수를 끝내고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바로 ‘원서 쓰기’ 인문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이과였으니 문과 계열 지원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가는 건 싫었다. 이것도 싫어, 저것도 싫어. 이과가 지원할 수 있으면서 인문학도 배우는 학과는 없나?


그러다 발견하고 말았다. ‘컴퓨터 공학과 인문학 소양을 모두 갖춘 인재를 키운다’는 신설 학과를.


‘코딩 한 번 배워봤으니 괜찮겠지.’


어쩜 이리도 안일한 마음인가! 이 학과를 나오면 무얼 해서 먹고살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인문학’이라는 단어에 낚여 컴퓨터 공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막상 오니 인문학은 곁다리였다. 학과 커리큘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컴퓨터 공학을 가르칠 건데 인문학 배우고 싶으면 타 학과 수업으로 보충해라.’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찬물을 끼얹은 듯 제정신이 돌아왔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대로 가면 난 뭐가 되는 거지? 설마 개발자가 되는 건가? 말도 안 돼! 내가? 누가 봐도 아날로그 인간인 내가?


하, 내가 한 선택이라 어디 불평할 수도 없고. 게다가 등록금이 어찌나 비싸던지. 우리 집 사정으로는 장학금 없이 한 학기도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학점 따기에 매달렸고 그 결과, ‘과탑’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버렸다. 그렇다. 해 버린 것이다. 나는 코앞의 전공 시험만 보면서 4년을 달렸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졸업을 ‘당해버렸다’.


4년 내내 컴퓨터 공학만 공부한 사람이 빠르게 취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다. 나한테도 누가 알려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나는 개발자가 되는 길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게 개발자로 일한 지 2년째. 나는 힘들다는 말, 개발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저 퇴사할 거예요. 개발 안 할 거예요.”

“그러기엔 너는 개발을 너무 좋아하잖아.”


언젠가 아는 언니와 했던 대화다. 내가 개발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였구나. 의외였다. 어떤 각오도, 결심도 없이 떠밀리듯 개발자가 되었으니. 아, 그러기엔 개발자 농담에 따라 웃고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코드부터 뜯어보는군.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모르게 ‘개발자’스러움에 물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당신이 개발자라면 앞으로의 글도 공감하며 즐겁게 읽어주길 바란다. 혹시 열정적이고 실력 있는 개발자라면 동료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아량을 베풀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