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인턴이라 함은 마지막 학기에 취업을 염두에 두고 실무를 경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채용형 인턴처럼 인턴 후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인턴 경험을 스펙 삼아 바로 취직을 준비한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그러할 것으로 생각했다. 3학년 2학기,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 학과는 신설 학과였다. 나는 1기 입학생이었다. 내 위로 선배가 없었다는 말이다. 다니면서 그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별걱정 없이 시간은 흘러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우리 과의 남학생 대부분이 군대에 가고, 여학생 몇몇도 휴학했다. 그러자 문제가 터졌다. 학생 수가 부족해서 전공 수업을 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아니, 전공 수업이 안 열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결국 타개책으로 나온 것이 ‘인턴’이었다. 이제 고작 3학년인 학생들에게 인턴을 가라는 것. 우리 학교에는 ‘현장실습’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 과목은 학교와 제휴를 맺은 회사에 가서 실습하면 학점을 인정해 주는 과목이었다. 그것 역시 전공과목이니 그걸로 인정해 주겠다고. 지금 그게 말입니까?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가는 인턴인데. 우리는 학생이 없어서 수업이 열리지 않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인턴 경험으로 얻은 것은 정신과 진료비요, 사라진 것은 자존감이었다. 자주 혼나다 보니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인턴을 다닌 탓이다. 마음이 산산조각 나서 결국 정신과를 다녔다.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이거 할 줄 알아요? 저거 할 줄 알아요? 그 말에 나는 ‘아니요’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인턴을 가서 한 대화를 요약하면 주로 이렇다.
“이거 할 줄 알아요?”
“아뇨.”
“하세요.”
“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그렇게 해 가도 제대로 못 해서 혼나는 일의 반복. 왜 우리 학과는 좀 더 실무를 중심으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애꿎은 학과 커리큘럼을 원망도 해 보았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었지만. 나는 아무튼 주어진 일을 해야 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인턴 4개월. 그 4개월은 내게 생존 싸움과도 같았다.
지금 와서 그때의 내게 말을 걸 수 있다면 ‘학부생 나부랭이가 뭘 알아! 당연히 무능하지!’라며 등짝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당시의 나는 맨땅에 헤딩하고 혼나면 땅굴 파고 ‘나는 무지렁이야….’를 속으로 외치며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프론트엔드 개발을 제대로 해본 건 인턴 할 때가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학교 수업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정말 무능하고 무지할 수밖에.
인턴을 나가기 전에는 개발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다.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인턴을 통해 직접 프론트엔드 개발을 해보고 나서야 막연함이 뚜렷한 형체를 지니게 되었다. 화면은 눈에 보이니까. 특히 반응형 웹페이지를 만드는 작업이 신기했다. 화면 크기에 따라 레이아웃이 바뀐다니!
그 순간을 기억한다. 화면이 모바일 사이즈만큼 줄어들자 일렬로 늘어놓은 4개의 버튼 모양 탭 메뉴가 표 형태로 바뀌던 것을. 글로만 써 놓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화면 너비에 맞춰 레이아웃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 순간이 마법 같았다고 기억한다. 프론트엔드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은 이 마법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구현하는 법을 배워 보니 마법보다 퍼즐 맞추기에 더 가까웠다. 이 상황에는 이 조각이, 저 상황에는 저 조각이 보이도록 정교하게 짜인 퍼즐. 어쩌면 사용자의 눈을 속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작업에 나는 점점 몰두했다. 점점 스며들었다.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착착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 광경이 아름다웠다고 한다면 너무 변태 같을까?
무지렁이는 처음 가보는 길을 조금씩 걸었다. 인턴 실습은 학교와는 달라서 실수가 너그러이 용납되지 않는 곳이었다. 혼나는 일은 아주 일상이었다. 일하고 혼나고 일하고 혼나고 다시 일하고…. 그러다 인턴이 끝날 때쯤엔 반응형 웹페이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었다. 고생하면서 일한 대가로 하나라도 건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턴이 끝나갈 무렵인가. 실습하던 회사의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좋은 코더라고 생각해요.”
개발자에게 코더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코더는 단순히 코드만 짜는 사람이고 개발자는 코드 짜기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좋은 코더’라는 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레벨이 올라간 느낌? 이제 코드라도 제대로 쓰는 사람이 되었구나. 빠바밤! 무지렁이에서 좋은 코더가 되었습니다! Lv. 0에서 Lv. 5 정도로 급성장한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 개고생을 하면서 배웠는데 이걸 썩힐 수 없어!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어야겠다!’
그렇게 혼나면서 배웠으니 싫어질 법도 한데.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겠다고 결심해 버렸다. 인턴을 하기 전에 나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자각도 없었다. 2년 반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서도 ‘내가 개발자가 된다고? 대체 내가 개발자가 되어서 뭘 할 수 있겠어?’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인턴을 나가던 당시를 떠올리면 그때가 참 적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곤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를 때 실무를 해 볼 수 있어서. 아무런 계획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실무를 겪어서. 덕분에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마지막 학기에 진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인턴,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쫓겨나듯 가게 되어서 무섭기도 했는데.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개발자로서 나의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