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by 시간나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익숙한 말이지만, 사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어이없는 조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적인 가치가 우선시 되는 오늘날에 이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더욱 거리감이 느껴진다.


조직에서 스스로를 뒤로한 채 아무리 뼈를 깎아 성과를 거두어도, 결정권자의 눈 밖에 나면 도태되기 십상인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미운 사람에게 오히려 떡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미운 놈은 예쁜 짓을 해도 계속 미워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성인군자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미운 사람에게 정성을 보탤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지나치던 차에, 최근 겪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이 속담에 담긴 유래와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옛날에 성미가 고약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야단을 치는 통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며느리는 제명에 못 살겠다는 절박한 상황에까지 이르자, 결국 용하다는 도사를 찾아가 방책을 물었다.


"도사님, 시어머니를 빨리 돌아가시게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간절히 애원하는 며느리에게 도사는 비방을 알려주겠다며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인절미라는 며느리의 대답에 도사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백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말고 인절미를 정성껏 만들어 대접하게. 그러면 백일 후 시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될 것이네."

신이 난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와 그날부터 찹쌀로 인절미를 만들어 시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시면서 "이 년이 죽을 때가 됐나, 왜 안 하던 짓이야?"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며느리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매일 하루 세 번씩 정성을 다해 인절미를 만들어 드렸다.


그러자 시어머니의 마음도 서서히 달라졌다. 두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며느리의 지극정성에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 흉 대신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석 달째에 접어들자 며느리의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집살이는커녕 칭찬과 웃는 낯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시어머니가 좋아진 것이다. 문득 그런 시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자신이 무서워진 며느리는 이제는 시어머니가 정말로 죽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며느리는 다시 도사를 찾아갔다.


"도사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죽지 않을 방도를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도사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너의 못된 시어머니는 이미 죽었지 않느냐?"

도사의 말대로 고약했던 시어머니는 더 이상 없었다. 그 자리엔 며느리를 사랑하고 자애롭게 대하는 시어머니만 계실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단순한 처세술을 넘어선 성인군자의 지혜였다는 생각이 든다.


미운 사람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성을 통해 내 마음속의 '미운 존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은 그 대상보다 미워하는 나 자신을 먼저 갉아먹기 마련이다.


미운 사람에게 떡을 준다는 행위는 그 상대를 위한 자선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지옥의 불을 끄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미움의 나무는 상대가 아닌 내 마음의 토양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정성껏 빚은 인절미는 시어머니의 독기를 녹였을 뿐만 아니라, 며느리 자신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증오를 먼저 잠재운 비방이었던 셈이다.

각박한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기보다,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기 위해 날을 세우며 살고 있지 않은가.

미운 사람을 죽이는 비방이 다름 아닌 그를 향한 지극한 정성이라는 이 역설적인 가르침은, 관계의 회복이 비난이 아닌 수용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늘날의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그럼에도 참으로 어렵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이 속담을 삶에서 오롯이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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