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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Apr 27. 2020

모래야 나는 얼마나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임요한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다시 읽기 19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가 놓치고 있는 평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글로 쓰고, 함께 읽고 소통하는 실천을 통해 평화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고, 우리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피스레터 다시 읽기>에서는 피스레터에 기고되었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나 평화교육센터 블로그(https://peacecenter.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피스레터 통권 20호(2019년 11월 19일 펴냄)에 기고된 글입니다.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인천영흥고에 부임한 지도 여덟 달이 지났다. 추운 겨울에 처음 부임 인사를 와서 첫 만남으로 설레던 봄을 보내고,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싱그러웠던 여름도 보내고 영흥도에서의 첫가을을 맞이한다. 아직까지 영흥에서의 생활이 대부분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가끔은 원인모를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주는 고립감, 농어촌 지역이기 때문에 누리기 어려운 문화적 혜택 등이 그 이유일 게다. 이를테면 어느 날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햄버거 세트가 너무나 먹고 싶다거나, 몇 달 동안 출시를 기다려온 한정판 운동화의 실물이 너무나 보고 싶다거나.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여기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이곳 아이들은 주말이면 근처에 있는 시화, 안산 중앙, 배곧 등으로 나들이를 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부모님들은 모두 생업이 바쁘셔서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대중교통을 이용해 뭍에 나갔다가 버스가 끊기기 전에 들어와야 하는데, 주말에 행락객들이 많은 시간에 걸리면 왔다 갔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만 서너 시간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외부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편인데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부서는 ‘교과 융합 현장 체험 학습(이하 융합 답사)’이라는 것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난 융합 답사는 부여와 공주로 가서 신동엽 문학관, 정림사지, 궁남지, 구드래조각공원, 부소산성, 무령왕릉 등을 돌고 오는 1박 2일 코스로 진행을 하였다. 학생 30명과 인솔 교사 5명이 버스 한 대로 학교에서 출발하여 답사지를 돌고 오는데, 아이들이 직접 답사지 근처의 식당을 섭외해서 예약을 하면 교사는 예산을 품의하여 결재를 하고, 학생들이 답사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답사 자료집을 만들어 해당 장소에서 발표를 하면 교과 교사가 보충 설명을 곁들이고 미션을 주는 현장 체험 및 사제동행 프로그램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여 무탈한 여행이 되도록 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하고, 학생들은 빡빡한 일정이 지체되지 않고 계획대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단체 활동을 잘해야 한다.


신동엽 문학관 


첫날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에 날씨도 도와주어 며칠간 좋지 않았던 미세 먼지 농도가 여행 당일에는 ‘아주 좋음’ 상태였고, 고속도로도 막히지 않아 계획했던 일정대로 잘 진행이 되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 두둑이 받은 용돈으로 최근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화제가 된 각종 휴게소 음식들을 사 먹으며 버스 이동 시간조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답사의 모든 여정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충청남도 내륙 지역에 위치해 있는 부여는 백제의 오랜 도읍이었던 관계로 역사가 오래된 마을임에도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잘 정비된 도로망은 섬에 사는 아이들에게 사통팔달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큰 도시처럼 혼잡하지도 않고 횡단보도에는 신호가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산과 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자연도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숙소에서도 우리 착한 영흥도 아이들은 단 한 건의 일탈도 이탈도 없이 늦은 밤까지 방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자라고 하는 시간에 모두 코 잠들었다.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또 있을까. 가뜩이나 천사 같은 놈들이 이렇게 잠도 잘 자니 예뻐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함께 불침번을 서는 선생님과도 계속 아이들이 착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듣는다는 칭찬을 하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마을에서, 평화로운 첫날 밤을 보내고 둘째 날이 밝았다. 일정 내내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평화의 기운이 걷히기 시작했다.




신동엽 시인 생가에서


둘째 날의 첫 번째 일정은 부소산성이었다. 아침 일찍 부소산성 매표소에서 출발해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등을 거쳐 낙화암과 고란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동 거리가 제법 되었고, 안전사고 예방과 학생들의 몸 상태 체크 등 이틀간의 여정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도보로 이동하여 부소산성 매표소에 도착해서 인원 파악을 했다. 한 명이 비었다. 그 한 명은 다름 아닌 우리 반 상민이었다. 아이들 말로 잠시 화장실에 갔단다. 오전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일단 매표소를 출발하기로 하고 선생님 한 분이 상민이를 기다렸다가 함께 일행을 쫓아오기로 했다. 삼충사에 도착해서 상민이와 함께 오기로 한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상민이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매표소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없었어요.”
“네, 제가 전화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바로 상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계속 가는데 상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상민이를 본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떠나서는 상민이를 본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몇 아이들도 전화를 해보더니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묵묵부답. 너무나 걱정이 되었지만 상민이를 기다리기로 한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주변을 좀 잘 찾아봐 달라고 하고 학생들을 인솔했다. 영일루에 도착해서도, 군창지에 도착해서도 상민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계속 받지 않았다. 이놈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처음에는 또 어디 가서 뭘 사 먹는다고 정신이 팔렸거나 혹은 중간에 다른 길로 새서 피시방 같은 곳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였던 걱정이 계속 전화 통화가 되지 않자 행방불명이나 납치, 사고 등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그럴 리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다른 학생들을 인솔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저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계속 일었다. 반월루쯤에 도착했을 때 상민이를 찾으러 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상민이 찾았습니다.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아, 네. 다행이네요. 그 자식 뭐하다가 이제 나타났나요?”
“볼 일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답니다. 매표소 옆 화장실이 상태가 안 좋아서 좀 멀리 있는 화장실을 갔다네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조심히 올라오시고, 상민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좀 전해주세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데 그때부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그렇게 걱정했던 놈이 그저 여유롭게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 녀석의 평소의 모든 행동 특성이 다 밉게 느껴졌다. 우리 학교에서 한 덩치를 하는 상민이는 그 덩치에 걸맞게 먹성도 아주 좋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가서 고기국수 한 그릇 먹는데 2분이 채 걸리지 않는 그의 장기를 우리는 ‘국수 순삭 마술’이라고 불렀다. 그럴 정도로 먹성이 좋은 녀석은 어제 아침부터 엄청나게 먹어댔다. 이동하는 버스에서도, 휴게소에서도, 여정 중 들른 점심, 저녁 식당에서도. 그리고 밤에는 아이들에게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주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때도 아마 분명 실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친구 여럿이서 정해진 양의 치킨을 먹어야 했으니 스피드가 생명이었을 터, 닭을 씹지도 않고 뼈까지 그냥 삼켰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먹고 똥을 싸느라 오전 내내 내 애를 태운 생각을 하니 걱정을 한 것이 너무 억울해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담임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섭기는 했는지 녀석은 낙화암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올라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뭐한다고 전화도 안 받아?”

성이 잔뜩 나서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 폰을 무음으로 해두었어요.”

한참을 녀석을 쏘아보아도 분이 풀리지 않아 인천에 올라가서 보자고는 녀석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말을 던지고 일정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장소에서도, 또 그다음 장소에서도 상민이는 계속 화장실에 들렀고, 급기야 영흥도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의 마지막 휴게소가 지난 후에도 화장실이 급하다고 정차를 요구했다.

“뭘 얼마나 처먹었길래 하루 종일 똥질이야!”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빵 터졌다. 원래도 얼굴에 홍조가 있는 상민은 귀까지 벌게진 채로 화장실에 다녀왔고, 융합답사는 그렇게 끝났다.

공주박물관에서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선생님들만 관사에 남았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아까 상민이를 찾아 헤매던 후배 선생님이 근처에 있는 십리포 해변으로 산책을 다녀오자고 했다. 그래서 나, 함께 답사를 다녀온 후배 여 선생님 한 분, 이렇게 셋은 근처에 있는 십리포 해변 쪽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우리 학교에서 십리포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왕복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학교 일과를 마치고 종종 다니는 산책 코스였다.



여느 때와 같이 십리포 해수욕장을 한 바퀴 돌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화장실을 많이 가리는 나는 지난 융합답사 내내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못했고 여행이 끝나자 긴장이 풀리면서 괄약근도 함께 풀려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근엄한 선배 체면에 같이 온 후배 선생님들에게 똥이 마려워 어쩔 줄 몰라하는 방정맞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관사에 돌아갈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오만이었다. ‘이건 곧이다. 어디든 뛰어 들어가야 한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나는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였던가 생각했다. ‘십리포 해변 가운데쯤에 공용 화장실이 있다. 학교까지는 아직 20분, 그곳까지는 조금 서두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두피에서 샘솟은 땀이 등줄기를 지나 엉덩이 골까지 흘러내렸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후배 선생님들께 고백했다. 나 지금 너무 급하다고……. 그들은 깔깔깔 웃고 난리가 났고, 어서 화장실로 가시라고 자신들은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며, 뛰는 모습은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아, 혹은 뛰었다가는 정말 큰일을 볼 것 같아 괄약근을 힘껏 조인 채 빠른 걸음으로 십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하고 혹시 몰라서 텃밭에 들어가 상추도 네 장 땄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뒷일까지 생각한 내가 스스로 너무 대견스러웠다. 급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서 일을 치르고 뒤처리를 어쩔 뻔했는가. 그 와중에도 발생할 수 있는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하며 더 빠른 걸음으로 십리포 해수욕장 쪽으로 이동했다. 화장실에 도착해서 바로 앞에 있는 관리사무실에 가서 휴지를 얻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장실의 세 칸이 모두 잠겨 있음을 확인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져 눈물이 나려는 것을 겨우 참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마지막 칸에서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사랑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한 소리였다. 그 칸에서 나오시는 분께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에 도착하여 착석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의 ‘폭포’라는 시의 구절을 떠올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도서관과 화장실의 공통점은 학문을 펼치고, 학문에 힘을 쓰고, 학문을 닦는 곳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날은 학문에 힘을 쓸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한 바탕 거사를 치르고 나서 화장실을 나오려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상민이었다.

“선생님 오늘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상민아, 너 십리포 화장실에 CCTV 설치해놓았니?ㅠ 상민이의 참회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자연 앞에서, 생리 현상 앞에서 이리도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누가 누구를 멸시하고 조롱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누구에게도 그럴 자격은 부여하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학교에서 상민이를 만나 사과했다. 어제는 선생님이 오만했다. 미안했다. 영문도 모른 채 덥석 잡힌 손을 멋쩍어하며 상민이는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김수영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우습지 않으냐 이깟 똥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나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떠올리며


임요한ㅣ인천영흥고등학교 국어 교사. 아이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책 읽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은 국어 교사. 여러 길 돌고 돌아 교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무얼 잘하는지, 이다음에 뭐가 될지 궁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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