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밀라 공동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3)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역사가 놓치고 있는 평화적 가치를 발견하여 글로 쓰고, 함께 읽고 소통하는 실천을 통해 평화적 가치와 담론을 공유하고, 우리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피스레터 다시 읽기>에서는 피스레터에 기고되었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피스레터는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나 평화교육센터 블로그(https://peacecenter.tistory.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평화의 마중물]
북아일랜드에 온 지 다섯째 날, 1월 17일, 코리밀라를 떠나는 날이다. 지난밤 데릭 윌슨 교수님 집에서 받은 감동이 남아서일까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두 해 만에 다시 와 본 이 곳을 또 떠나야 한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어제 댄 가즌 선생님이 소개한 평화축구(Peace Soccer)를 잔디밭에서 해 보기로 한다. 평화축구의 목표는 이기고 지는 데 있지 않고,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우리 편 저쪽 편이 어디라도 잘하면 손뼉을 쳐 주어야 한다. 선수를 바꾸는 일도 자유롭다. 댄이 심판을 맡고 우리는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규칙은 서로 협력하고 또 협력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기고 싶은 마음은 숨기지 못한다. 드디어 내 발끝에서 흘러간 공이 상대편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손흥민 선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만세를 부르는데, 갑자기 상대방 선수들도 같이 달려와서 어깨동무를 하고 흥겹게 축하해 준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보다 같이 좋아하는 운동이라니! 잠깐 충격에 사로잡혔다가, 마치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모두 참 잘했다며 환하게 웃으며 이끌어 주는 댄 가즌 선생님과 둘러서서 웃으면서 축구를 마쳤다. 돌아가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평화축구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축구도 공부도 모두 전쟁이고 이기는 사람만이 기억에 남고 진 사람은 패배자로 낙인찍는 세상에서 평화축구는 분명 큰 흔들림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사진을 찍느라 한바탕 웃고 떠들고 나서 짐을 꾸려서 떠날 준비를 한다.
데릭 박사와 김동진 박사의 안내로 데리 오크그로브(Derry Oakgrove)통합학교와 데리(Derry), 아일랜드 국경선 방문을 하려고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넘게 달려서 오크그로브 학교에 닿았다. 차에서 내려서 춥고, 미끄러운 터라 발을 조심해 가며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학교는 초등, 중등 통합과정으로 운영하고 있고, 한눈에 보기에도 시설이 참 훌륭해 보였다. 먼저 강당에 들어가서 안내를 받았는데 마침 오후와 저녁에 있을 연극 공연을 위해 공연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서 장비를 설치하는 곁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방문한 우리들을 맞아 주려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모둠마다 서너 명 학생들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우리가 던지는 질문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활기차고 유창하게 대답이 이어 나온다.
잠깐 오크그로브 학교와 같은 통합학교와 통합교육에 대해서 살펴보자. 북아일랜드에서 통합교육은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서 이를 초등, 중등 교육에서 실현하자는 움직임으로 출발하였다.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안고 자란 아이들에게 평화, 화해, 공존의 가치를 같은 공간에서 일상적인 만남을 공유하면서 익히도록 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와서 교육학자들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통합교육 운동이 번져나갔고, 2016년 현재 63개의 초, 중등 통합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이, 청소년의 7% 정도인 22,509명 정도가 통합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북아일랜드 통합교육위원회에서 학교 설립과 행정 지원, 교사 연수와 프로그램 지원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후 오히려 흐름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전환학교, 공유교육 같은 흐름이 더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젯밤 데릭 윌슨 교수님 집에서 만난 코리밀라 공동체 어른들은 모두 걱정하는 얼굴로 이런 흐름은 서로를 만나게 하고 통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분리하고, 쉽게 통치하려는 정치가들의 편의주의에서 나온 흐름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통합교육은 장애를 지닌 학생들을 일반 학교 교실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이다. 북아일랜드에서 쓰는 통합교육과는 결이 다른 말인데, 보태어 말하면 우리나라도 남과 북이 다가 올 화해의 시대에 교육에서 바로 맞닥뜨려야 할 과제가 바로 통합(교육)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다가올 가까운 과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곳이 바로 북아일랜드 통합학교인 셈이다.)
다시 오크그로브 학교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 방문단은 학생들에게 통합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만족하는지, 어떤 수업을 받고 있는지, 앞으로 대학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다. 고3 과정이고 ‘모범생’ 표시인 배지를 가슴에 두세 개씩 단 학생들은 정말 씩씩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수업 시간은 35분씩 10시간이고, 마지막 학년 학생들은 두 시간을 연달아 쉬기도 한다고 한다.
“공부 말고 학생들 스스로 하는 것은 없나요?”
“학교의 학생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역사 수업 시간에 갈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우고 있나요?”
“수업 말고 평화에 대한 활동, 방과 후 활동 같은 것을 하고 있나요?”
“앞으로 대학에 가려고 하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요?”
“체육 수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질문은 이어지고 학생들 대답도 바로 나왔다. 내가 던진 역사 시간 수업에 대한 대답을 옮겨 본다.
“고학년(고등 과정) 역사 수업에서 남북 아일랜드의 갈등 역사를 배웁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여기서 자랐기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나이가 좀 들어서 이 갈등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교육 내용을 묻고 싶었는데, 다음 일정 안내가 나오는 바람에 여기서 멈추었다. 대답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 교실 학생들 표정이 자꾸 겹쳐 떠오른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 이런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보는 날은 어쩌다 가끔 정말 드물게 만난다. 아, 졸업식 날은 밝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어지는 대화는 놓치고 말았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올 때 학생들을 위해서 사진 촬영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어느새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 그림이 그려진 벽이며 내용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학생들도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같이 찍어 준다. 이 학교는 북아일랜드에서 대학 진학하는 학생들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고, 학생들도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북아일랜드 통합학교가 모두 이 학교처럼 운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디서나 그렇듯이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그래서 이곳 교육자들도 고민이 깊어 보인다.
오크그로브 학교를 나와서 간 곳은 아일랜드 국경선이다. 국경선 하면 총을 든 남북의 병사들이 말없이 마주 보고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아일랜드 국경선은 좀 싱거운 곳이다. 그냥 남북으로 이어진 길에 차들이 씽씽 달리고 그 한켠에 여기가 남북을 나누는 경계선이라는 표지만 덜렁 서 있다. 우리는 그래도 사진은 남겨야 한다며 달리는 차들 옆에서 조심조심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브렉시트’ 이후 다시 이 국경선에 장벽을 쌓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고 한다. 총길이 499km, 도로만 275개, 날마다 국경선을 넘어서 출퇴근하는 사람 3만 명, 여기에 다시 장벽을 세우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다시 장벽을 마주하고 대결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국경선 근처에서 있었던 슬픈 역사 이야기를 듣다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러 음식도 나눠 먹었지만, 기네스 생맥주를 높이 들고 평화를 위해 건배하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버스에 올라 데리 방문에 나섰다. 2017년에 왔을 때 데리에서는 하루 묵으면서 천천히 걸어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았고, 이곳에서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오늘은 저녁 일정 때문에 서둘러서 17세기에 만들어진 데리 성벽을 걸으면서 1972년 1월 30일에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 성벽 아래 건너다 보이는 벽화와 상징물, 그리고 성벽 뒤편 현대적인 건물로 가득한 런던데리(영국) 마을을 대비하면서 1998년 평화협정 때까지 3천5백여 명의 사망자와 더 많은 부상자를 남긴 대립과 갈등의 상처를 눈으로 보았다. 놀라운 것은 그 대립과 갈등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고 있고 다음 세대들이 이 역사의 현장에 와서 그렇게 살아온 조상들의 삶을 느껴보기를 바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데리 시내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포일 강 양쪽을 이어주는 피스 브리지(Peace Bridge), 다리 이름처럼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남쪽과 북쪽이지만, 다리를 놓고, 그 다리를 오가면서 오랜 시간이 덧쌓여서 조금씩 갈등과 대립이 풀려가는 꿈. 그 꿈의 현장이기도 했다. 다리 한가운데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다시 벨파스트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벨파스트에 돌아와서 한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집 떠나오면 집밥이 그립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편이라 허겁지겁 깨끗하게 비웠다. 그리고 저녁 책잔치에 쓸 꽃다발을 구하러 거리로 나섰다.
오후 7시, 벨파스트 코리밀라 사무소에서 평화 책잔치(Book Concert)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시민사회(The Korean Peace Process and Civil Society, 김동진. 2019.)가 시작되었다. 좁은 공간이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데이비드 미첼(David Mitchell) 박사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김동진 박사와 같은 대학에서 동료로 일하는 미첼은 아일랜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와 연구에 매진하는 김 박사를 칭찬했고, 다른 연구자는 할 수 없는 전문성 깊은 성과를 이렇게 출판해서 평화 프로세스와 시민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세계에 알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소감을 말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룬 주제, 한국에서 지속된 평화구축 과정을 다루고, 어린이어깨동무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노력을 다룬 점, 평화학의 개념을 잘 소개하고, 적용하려고 한 점에서 크게 기여하였다고 말했고, ‘교수들은 정작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 이 책은 꼭 읽을 만하다.’고 말을 맺었다.
김동진 박사는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거푸 하면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코리밀라 식구들, 트리니티 컬리지 학생들, 서울에서 온 어깨동무 선생님들을 불러주었다. 책을 쓰면서 아일랜드와 한반도를 나란히 올려놓고, 더욱이 ‘한국을 잘 모르는’ 서양의 학자들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영어로 말하고는 다시 서울에서 온 우리를 위해 우리말로 다시 말하고, 통역을 맡아 준 댄 가즌 선생님에 대한 칭찬도 했다. 마치면서는 ‘책 바우처’를 선물로 나누어 주기도 하셨다.
이어서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마치기 전에 데릭 교수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평화를 만드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때로는 즐겁지만 고립되고 힘든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평화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헤어지기 전에 한 문장씩 나누자.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힘들어도 어떤 것이 우리가 지치지 않고 일을 하도록 하는 힘이 되나요?’ 물으셨다.
어린이어깨동무 김윤선 국장이 먼저 답을 했다. ‘안녕, 친구야!’ 어깨동무에서 즐겨하는 인사말을 소개하면서 남북의 어린이들이 만나서 친구가 되자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알시티(R-city)를 이끄는 알란이 말을 받았다. “저는 평화를 위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금방 지칩니다. 저는 청소년들과 같이 활동을 하면서 열정을 보고, 그 열정이 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한국에서 온 분 누가 더 말해 줄래요? 그러면서 데릭은 나에게 눈짓을 보내왔다. 나는 엉겁결에 일어서야 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교육과정을 만드는 일을 선생님들과 같이 해 왔고, 그 인연으로 이번에 두 번째로 북아일랜드에 왔습니다. 헌신적이고 활동적인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반도 평화가 오기까지 그날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남과 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운동에 힘껏 참여하겠습니다.” 버벅대며 자리에 앉았다.
책잔치는 근처 펍으로 옮겨서 뒤풀이(미첼 교수는 한국에서 온 분들을 위해 순서에 넣었다고 했다.)에서 기네스 맥주를 마셨다. 신기하게도 아일랜드 분들은 딱 한 잔만 마시고 일어났고, 남은 기네스는 나와 몇 사람이 독차지했다.ㅋㅋ 호텔로 돌아와서 댄 가즌, 심은보, 김경옥 선생님과 같이 맥주를 더 마셨다. 최관의 교장선생님 지갑을 좀 털었는데, 다음날부터 꽤 오래 시달릴 만한 일을 저지른 셈이다. 벨파스트에서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더블린으로 가야 하고, 가슴에 남은 감동도 안고 가야 한다.
박종호|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