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글로벌 청년 평화 포럼 후기 - 박희정
평화. 누구나 원하는 평화는 정의하기도 배우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이번 평화 포럼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대와 마음이 모였고, 그 시작은 여수였다. 도시의 무더위에 지친 청년들이 여수의 바닷바람을 따라 평화통일교육연구소의 임재근 소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여수 순천 10.19 사건 필드워크를 시작했다. 14연대 주둔지였던 수상 비행장 활주로에서 시작해 무기고로 사용되었던 동굴, 중앙동 인민대회 장소였던 광장, 여수중앙초등학교, 만성리 학살지, 형제묘,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까지. 70여 년이 지난 현재, 곳곳이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울부짖었던 수많은 민중의 목소리는 역사 속에 살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수의 바닷바람은 유난히 짜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에서 아직도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참담한 현실 앞에 희생자들에게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어 ‘......’라고 침묵만 위령비에 남긴 살아있는 이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위령비가 있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형제묘를 바라보며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돌을 던지다 마련된 공간이다. 소장님은 ‘여수 순천 10.19’ 뒤에 따라오는 단어가 ‘사건’인지, ‘항쟁’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미완인 이 사건에 대해 평화를 꿈꾸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침묵해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필드워크를 마무리했다.
더 이상 침묵만이 답이 아닌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대한 힌트는 이어지는 저녁 특강 시간에 찾을 수 있었다. 이번 특강은 데스몬드&레아 투투 레거시 재단 CEO인 자넷 잡슨의 ‘글로벌 이슈에서 청년의 역할’을 주제로 이루어졌다. 남아공에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폭력과 인종 차별에 맞서 힘쓰고 있는 자넷은 투투 주교가 전한 진리 두 가지를 알려주었다. 바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없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진리는 늘 쉽지 않다. 용서는 진실이 드러나야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난 후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회적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자넷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대하게는 국가에 의해, 소박하게는 나의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갈등이 떠올랐다.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하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로 인해 스스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청년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함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평화를 경험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평화를 위해 새로운 방안을 찾아가는 해외활동가들의 활동 소개 및 발표가 있었다. 미국친우봉사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AFSC), 사이프러스 역사대화연구소(Association for Historical Dialogue and Research, AHDR), 캄보디아 피스갤러리(Cambodia Peace Gallery, CPG), 미국아시안화해센터(ReconciliAsian, RA), 코리아어린이캠페인(Relief Campaign Committee for Children, Japan, RCCJ), 북아일랜드 알시티(Rcity Youth CIC). 각 국가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희생을 딛고 현재 미래를 그려나가는 청년활동가들의 움직임을 들으니 희망이 피어올랐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여러 권력에 의해 식민화가 훑고 지나간 현재에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탈식민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이었다. 그 몸부림이 있기에 아직 세상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남아있는 건 아닐까?
소개 후에는 직접 평화를 연습하기 위해 ‘피스게임’을 진행했다. 북한, 남한, 미국, 중국 등 6개의 국가로 팀을 나누어 각자 입장에 따라 협상을 하는 게임이었다. 협상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냉철하게 협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익을 교환하는 것도 어려운데 용서를 기반한 평화는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체감했다. 특강부터 피스게임까지 화해와 용서, 평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만이 아니라 실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 글로벌 청년 평화 포럼은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평화를 실천하고 전해준 활동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시간을 위해 한동안 고생했을 스탭, 그 덕분에 옴팡 잘 누린 참여자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져 진정한 평화 포럼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각자가 온 몸과 마음으로 전하고 받은 평화의 기운이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 전해지기를 바란다. 이번 포럼을 통해 각국에 수많은 친척들이 생겼다. 우리는 여름이면 평화 글로벌 포럼을 떠올리며 명절에 가족을 찾아가듯이 서로를 찾고 있지 않을까?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