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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03. 2022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다.

#일상생각 #과정의아름다움 #일상깨달음

실패라고 할까? 혹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고 할까. 그에 대해 후회를 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에서부터일 것이다. 

헛된 시간을 보냈다는 그 믿음, 기회비용을 낭비해버린 듯한 그 분위기에 스스로 압도당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득이 없는 결과에 눈물을 짓곤 한다. 


그런 쓰라린 결과에 따라 
우리는 그토록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 버린 것일까.

나는 아직 진행 중인 창업가이다. 나 또한 큰 성공을 하여 성공담을 자랑스럽게 알리고도 싶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크고 작은 시도도 꽤 있었으나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과로만 보자면 허탈하기도 하고, 과거의 모든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근래 나의 모습은 빛이 나지 않았다. 

그날도 그러했다. 무기력에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아 TV를 켜고 채널을 마구 돌렸다. 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도 없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채널만 돌리다가 좋아하는 두 가수가 나와 채널을 멈췄다.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윤도현이 이타카를 외치며 이타카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타카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것이 장소라는 것조차. 내가 보는 회차는 거의 마지막 회였던 것 같다. 윤도현이 하현우에게 물었다. "왜 이타카에 가고 싶은 거니?"

나 또한 궁금했다.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타카는 그리스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친 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고향이었다고 한다. 여러 고난을 겪고 도착한 이타카는 낙원도 아니고, 화려한 도시도 아니며 그저 작고 수수한 섬일 뿐이다. 오디세우스도 하현우도 이타카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타카에 도착한 가수 둘은 노래를 했다. 꿈에 관련된 노래였던 것 같다. 하현우가 이타카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에게 깊은 울림을 준 시 때문이라고 했다. 그 시에 감명을 받아 이타카에 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화면에 나오는 이타카의 시는 나에게도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의 나를 쓱 쓸어내리는 시였다.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중략)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 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C.P. Cavafy, Ithaca 중에서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시 중에서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우리는 모든 행위 속에 늘 결과와 성공 여부가 중요했다. 어릴 적부터 시험 등수가 중요했으며, 시도하는 것들의 합격여부가 중요했다. 최종적으로 벌어들인 수입의 금액이 중요했고, 승진 여부가 중요했다. 그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 앞에 마음이 쉽게 상하기도 하고, 인생의 모든 엔도르핀을 끌어모아 놓은 것 같은 환희도 느꼈었다. 문제는 원치 않은 결과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졌고, 절망했으며, 희망을 잃었다.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하지만 이타카의 시는 이미 길 위에서 풍요로워졌으며, 아름다운 여행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설령 그 땅이 불모지일지라도 우리는 현자가 되었으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목적지인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는 줄 것이 없다하지만 오기까지의 여정이 선물이었다고 시는 노래하고 있다. 


이타카는 목적이 될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다. 막상 거기에 도달하니 허탈하기 그지없는 경우를 느껴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성공을 하였거나 합격을 하였는데도 허탈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타카가 아니다. 여정 속에서 느낀 인간만의 다양한 감정들, 예상치 못했던 인연과 도움들, 자신 없던 일이었음에도 진전시키고 있는 나의 든든함,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열망, 그 모든 것이 실상은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인 셈이다. 그것을 결과 하나만을 놓고 모든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하여야 할까?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것이다. 때론 지쳐 누워있는 순간마저 우리에게는 여정인 셈이다. 그러니 너무 채찍질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정을 다시 떠나 길 위의 현자가 되어보겠다는 용기가 아닐까.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모든 의욕을 잃고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주섬 주섬 몸을 일으켜 앉았다. 지난 시간을 계속 부정할 것이 아니라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새로운 여정에 대한 선물을 받으러 가야 했다. 그것이 불모지일지라도. 


TVN 프로그램 '이타카로 가는 길' 중


당연히 최선의 결과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과정의 아름다움에도 충분히 감사할 것이다. 

나는, 우리는 계속 이타카로 나아갈 것이다. 



저의 경험과 생각이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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