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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헤이 Jan 09. 2024

치아바타

겉은 질기고 단단해도 속은 촉촉하고 쫀득하다.

"능력이 안 되면서 하고자 하는 욕심은 반드시 화와 고통을 부른다. 욕심을 하고자 하는 목표로 삼길 원하면 그냥 저스트 두잇하면서 능력이란 것을 쌓으면 되고 그러다 원하는 바를 해내고 나면 욕심은 더 이상 욕심이 아니며 이미 내가 가진 것이 된다."

마치 누군가 대단한 사람의 말 같지만(어쩌면... 같잖을 수도.) 그냥 내가 '어떤 일에 도전한다는 것' 대해 항상 하고 있는 생각 따위이다. 물론 난 무언가를 해낸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니며 이건 나의 '그냥 하면 되잖아, 해버리지 뭐, 못할 건 뭔데?, 너는 처음부터 잘했냐?' 정신을 정제된 표현과 문장으로 옮긴 것뿐이다. 좋게 보면 실행력이고 추진력일 수 있으나 나쁘게 보면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거나 주제에 맞지 않게 일을 우습게 보는 무지 무식함이거나 신중함이 없는 경우이다.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일 수도.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면 된다'가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 최근 깊은 우울감과 동시에 가슴에 새겨지기도 했고 내 것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판별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나도 내 주변도 평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애꿎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철이 든다고 해야 할까?


사실 알았을 뿐이지 여전히 '이 생각이 맞다.' 백 프로의 확신은 없다. 백프로로 합당한 진리는 또 어디 있겠느냐마는 적당한 타협 내지는 각 재고 이르게 포기하는 행동으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 계속된 의심을 만들고 있고 무엇보다 이 타고난 보잘것없는 그릇과 성향이 그 현명함과 지혜를 담기에는 너무 얕고 조급하다. 그에 따른 결과로 만들어진 욕심과 무모함의 결정체. (타라~)

막손의 최대 망작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두둥-  이게 그나마 외양을 갖추었던 것.


포카치아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난 후, 그 무모함과 욕심으로 감히 치아바타에 손을 대었다. 겨우 하나 만들고 빵 좀 알았다고. 물론 치아바타가 전문가들에게 어려운 빵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또 도전의식을 불러왔겠지만 그래도 막손 따위가 감히 도전할 급은 아니었다. 그렇게 탄생한 망작. 게다가 먹어보니 빵은 더럽게 짰다. 와- 어떻게 만들면 빵이 짤 수 있을까? 반죽부터 말도 안 되게 흐물거렸던 기억으로 필시 계량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넸지만 잘 구워진 치아바타가 탄생할 것을 확신하며 사둔 샌드위치 재료들을 보니 기가 막혀 웃음도 나질 않는다. 꼴값도 이런 꼴값이 없네.


치아바타의 어원이 슬리퍼였던가? 정말 찌그러진 쓰레빠 같구나. 버리기는 아까워 다 먹긴했다.


난 나를 참 호되게 혼내지만 문제는 또 다른 나는 그 호됨을 곧잘 무시한다. 그 '나'는 낙담하고 있을 '나'가 아니었다. 나의 또 다른 자아는 정말 막 나가는 충동성이 엄청나게 큰 아이이다. 이 막 나가는 자아가 말한다. '오케이 알았고, 이제 두 번째는 돼.'

밑도 끝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그러나, 곧 막 나가는 자아는 밀가루를 퍼 나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번째 치아바타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도구 탓을 하고 선생님 탓을 하지. '이 유튜버의 것을 보면 안 되겠어. 내가 망한 것은 이 유튜버의 계량이 잘못된 탓이야. 다른 전문적인 선생님을 찾자.' 그렇게 찾게 된 2번째 유튜버 선생님.

'전문적'을 판단하시는 단서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더 반죽 방법이 간단하고 쉬웠던 것 같다.

그래요. 초보를 위해 더 난이도를 낮춰야지요. 아무튼 선생님 믿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통에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 올리브유를 넣고 대충 휘휘 젓는다. 그리고 30분 발효.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이번엔 계량도 확실하게. 선생님의 반죽 상태와 나의 반죽 상태를 비교하며 성실하게, 거의 집착 수준으로 과정을 따라간다. 선생님께서 너무 높은 온도의 발효도 좋지 않다 하시어 전기장판에서 반려동물처럼 꼭 끼고 있던 이전과는 달리 천을 덮어 상온에서 발효시킨다.

난 전문가의 가르침은 생각보다 고분고분 잘 따르는 편이다. 오래 나를 보아오는 사람들은 반골 기질이 뼛속까지 새겨진 사람인 줄 알았다거나 의심 많고 뭐든지 딱 부러지게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사람 잘 믿고 순진하게 말을 잘 듣네 하며 놀라곤 한다. 네. 고백합니다. 저는 사람 보는 눈이 별로 없습니다.

처음에는 수치스러움과 분노를 담아 강한 부정을 해오다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간 잘못된 선택이 너무 많았으므로. 물론 그 잘못된 선택의 대부분은 회사, 상사, 대표 등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의 신뢰도 평가 기준이 있다고 항변하고 싶다. '말'과 '행동'에서 그 단서를 많이 찾는 편인데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표현과 어투,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에서 그 사람의 생각이 표현된다. 그 포인트를 파악하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사람을 안다는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걸 뛰어넘는 사기꾼들도 많아서 많이 당했지만. 아무튼 뭣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사람들을 분리해내고자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만약, 오랜 시간 판단 기준을 상회하는 신뢰도를 얻는 단서를 충분히 모았다 하면 그 즉시 의심을 거두고 믿음을 아낌없이 베푼다. 예를 들어 요즘 나의 절대적인 신뢰 수준을 확보하시고 나의 라이프 패턴을 조종하시는 우리 한의사 선생님의 경우, 외모 자체가 절대적인 신뢰 덩어리시고 자신감 있는 말과 논리와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혼꾸녕? 압박질문? 등을 통해 나를 사로잡으신다. 동안구조로 보이기 힘든 얼굴형에서(오해 마세요. 선생님. 진심 까는 것은 아닙니다. 악조건에서도 남다름을 보여주시는 것을 강조하고자.) 거의 나와 동갑뻘로 보이는 외모를 보유하고 계시지만 내 나이보다 10살이 많으시다. 이 믿기 힘든 외모를 장착하신 것도 모자라 나의 체지방 무게와 맥박으로만 지난 날의 과오를 바로 짚어내신다.

"이번 주 내내 술좀 먹었구만?", "아침 안 먹고 다니네 요즘?"

최근 진짜 놀랬던 건 오랜만의 진료에서 "요즘 화가 몸을 지배하고 있네, 무슨 일 있니? 넌 감정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몸이 바로 안 좋아지는 거 아니?" 뭐 이 정도면 점쟁이 뺨친다. 내 심리상태까지 족집게처럼 맞춰내는 그를 안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전문가지, 전문가. 그래서 그의 말대로 살려고 노력해 열심히 소식도 하고 사진도 찍고 선생님께 식사 사진 보고도 열심히 올리는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야 그렇게 하면 약 안 먹어도 좋아지겠다. 다 약 팔려고 그러는 거야." 한다. 불경스러운 것들. 훠이 훠이 물러가라 물러가.

반죽에서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으나 팩트와 실력을 확인하면 믿음은 뒤따라가는 법. 어둡고 사랑 없이 차가운 시대에 이 정도 믿음은 있어도 되지 않습니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으니 어떤 사람을 정의하는 불변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 그래도 우리 최소한의 인간애를 잃어버리지 맙시다. 사랑 없는 사람은 되지 맙시다. 사랑으로 다시 치아바타를 만들어봅시다.


포카치아를 만들 때처럼 30분씩 반죽을 사방으로 한 번씩 접어준다. 접어주고 반죽 휴식, 접어주고 반죽 휴식.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생성되는 발효 가스로 인한 거품들이 순조로운 진행을 증명해주고 있다. 굳이 특별한 재료나 도구가 없어도 시간으로만 맛있는 빵이 탄생할 수 있다니.(쓸데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그대여, 그대는 아직 맛을 보지 못했네.)


시간이 더해가며 거품은 더 커지고 반죽 표면에 굴곡도 더 강해진다.


그렇게 4번 정도 반죽을 괴롭히고 나면 12-18시간 동안의 저온발효를 위해 냉장고에서 반죽을 재워준다. 이쯤의 시간 역시 자정. 거의 주말 밤 요리가 루틴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환기시키는 데에 꽤 효과가 좋다는 것이겠지. 그래 요리가 날 살리고 있다.

포카치아와 재료의 배합만 다를 뿐 거의 만드는 시간과 과정은 유사하다. 포카치아 반죽보다는 더 물기가 많은 느낌이고 통밀로 만들어 구수한 냄새가 매력적이던 포카치아와는 달리 발효의 시큰한 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향이다.




다음날 아침. 발효시간을 기가 막히게 지켜 일어난 후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반죽도 깨워낸다. 왕거품이 뾰루지처럼 뿅 하고 올라왔지만(이 신성한 것에 뾰루지, 아주 좋지 않은 비유라는 것을 알지만 곰보, 여드름, 사마귀... 왜 다 이름이 이렇지?) 꽤 오래 잠을 자서 그런지 반죽의 표면은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처럼 차분한 모습이다. 반질, 매끈. 이 다음 반죽의 경계면을 살살 긁어내며 밀착되어 있던 부분을 분리해 주고 통을 뒤집어놓으면 게으른 내가 침대에서 슬슬 기어 나오는 모습처럼 반죽이 통에서 쭈우욱 미끄러져 떨어진다. 일어나라 일어나!  


반죽의 윗면과 밑면이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조용해 보였던 반죽은 감쪽같이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어맛. 이것은 달 표면인가요?

생성된 거품이 그대로 무늬로 새겨진 듯하다. 매끈하기만 했던 반죽이 이런 반전 뒤태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반하겠네요. 매력적이야. 열심히 수면 밑에서 발을 굴리는 오리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하게 자다 일어난 척했지만 밤 사이 끊임없이 발을 굴리며 발효를 하고 있었군요. 미생물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마냥 평온해 보이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지 않은 것 같고 밝기만 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도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을 자세히 알아가다보면 끊임없이 자기에 대한 고민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토해놓거나 혹은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대화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고통을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사람, 고민의 흔적이 좁고 얕은 사람 혹은 그저 변명과 핑계로 점철된 자기 위로에만 갇혀있는 사람이 감히 담을 수 없는 생각. 깊고 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발견할 때의 기쁨과 끌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거나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축복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거나(아주 잘못된 판단이지만 나 역시 시야가 좁은 인간이기에) 평소의 행동이 마냥 순수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들이 발견될 때 흠칫 놀란다. 특히 주변에서,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전혀 그럴 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서 그런 면모를 발견했을 때라면 더욱 그렇다. 말 그대로 반전 매력. 그렇게 발견한 사람들은 그냥 알기만 하던 사람에서 더 깊은 관계로 한 걸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친구든 연인이든.

치열하게 자신에 대한 고민의 시간들이 어느 순간 진실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사람. 그 고민의 시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큰 선택과 고통에 직면했을 테고 그 시간 속에서 혼자 얼마나 자기 자신을 깎고 다지며 그 시간을 감내했을지, 나 역시 동일한 시간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견뎌내고 있기에(요즘은 너무 자주 온다 싶다.) 그 고통에 공감하고 그 아픔에 연민의 감정이 든다.

깊은 터널을 지나며 생각의 깊이를 깊고 넓게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생각과 행동 안에는 명확한 배경과 이유가 있고 그 만의 통찰이 있다. 그 만의 매력이 드러나는 지점들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런 사람들과 더 가까이하고 싶고 더 자주 함께 하고 싶다.

그렇게 나의 치아바타도 끊임없는 움직임과 속 끓임 안에서 깊은 맛을 일깨워낸 그래서 더 매력 있는 빵이다.


미리 오븐을 예열해 두고 이 소중한 발효의 흔적들이 사라질까 조심조심 반죽을 만져 네모반듯하게 펴 두께를 균일하게 맞춰주고 삼등분을 내준다. 이제 본격 치아바타의 모양으로 성형을 해줄 차례다. 원래 빵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제대로 된 도구도 갖추지 못한 터라 긴장하며 최대한 흔히 보아왔던 치아바타의 모양을 만들어나간다. 아기 엉덩이처럼 토실토실한 반죽들이 만질수록 볼수록 사랑스럽다. 행여 망가질까 조마조마하다. 예쁘게 만들어 보고 싶었으나 워낙 그런 재주는 없고 어차피 내가 먹을 건데 뭘, 우리 반죽이 들 안 다치는 게 최고란다.


구워질 때 부풀 것을 예상하고 길이를 조절해주다가 반죽이 찌그러졌다. 주름진 반죽도 귀여울 정도면 이것이 바로 우리 엄마들의 자식을 보는 마음인가요?


예열해 둔 오븐에 아이들을 잽싸게 넣고 반죽 위로 물을 칙칙 뿌리고 오븐을 닫는다. 유튜브 선생님께서는 바닥면의 열이 충분히 뜨거워야 반죽이 위로 통통하게 잘 올라오며 구워진다고 하셨고 물을 칙칙 뿌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표면이 빠르게 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잠시 본격적인 공부를 고민해 보았지만 당분간 일 벌이지 말자며 스스로를 단념시켰다. 그놈의 즉흥적인 실행력.

떨리는 마음으로 오븐의 온도와 시간을 맞추고 완성되길 기다린다. 망한 기억은 오븐이 돌아가는 시간 내내 앞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덕분에 치아바타가 완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는데도 떨려.


열이 충분치 않은 작고 저렴한 오븐이라 제대로 된 치아바타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이번엔 정말 제대로 성공했다. 망한 기억을 딛고 일어선 재 도전의 성공은 짜릿하다. 이래서 고통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는 것이군. 구워져 나온 치아바타들의 모양은 예쁘지 않았고 옆은 다 터졌지만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한 조각 잘라 시식해 보니 매번 사 먹는 아티장의 치아바타만큼 몽글몽글한 촉촉한 질감이었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크러스트는 얇고 바삭바삭했고 안은 더없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반전 있게 딱 구현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오 이것을 정말 제 손으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옆구리터진 치아바타, 그래도 높이는 적절하게 나왔고 무엇보다 그냥 맛있었다. 그럼되었다.


얼마나 뿌듯한지 저절로 핸드폰에 손이 간다. 예쁘지도 않은데 이리저리 돌려가며 찍는 치아바타 사진.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거냐고요?!?

설레는 마음으로 맛본 한 조각이 바로 두 조각이 되어간다. 또 한 조각. 여느 때처럼 그 자리에서 빵 하나를 해치운다. 근데 이건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특별히 좋은 밀가루를 쓰지도 않았는데 우리나라 강력분이 그냥 이렇게 좋은 맛이 나는 겁니까? 왜 이렇게 맛있지? 내 입맛에도 콩깍지가 씌여진 것인가?

헐레벌떡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을 준비했었으나 이 맛에 가려지는 것도 싫어 나중에는 바게트처럼 조심히 찢어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맨 빵을 우걱우걱 먹었다.


최근 이걸 먹을 때만큼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보니 오래간만에 맛본 최고의 희열이었다.





완성된 치아바타 중 하나는 반을 갈라 샌드위치를 만들어보았다. 치아바타만큼 콜드 샌드위치가 어울리는 빵이 또 있을까? 빵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속재료는 단출하게 갖추어 샌드위치를 만들어본다. 반쪽을 잘라내니 기공과 촉촉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볼수록 매력 터지는구먼.

상추를 깔고 닭가슴살에 토마토와 올리브만 넣고 샌드위치 조합을 완성했다. 늦은 주말 점심, 커피와 함께 먹는 샌드위치, 말해 뭐 해. 그것도 내가 만든 빵으로! 또 하나는 평일 회사에서 먹는 저녁밥을 위한 메뉴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서브웨이 스타일로? 속재료는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빵을 치즈로 녹이고 내가 만든 마성의 할라피뇨 잼으로 마무리. 마음이 넉넉해진다.


알차게 구운 치아바타를 모두 당일 소진 완료했다. 드디어 해내었다는 자신감은 앞으로 빵을 사지 않는 미래까지 상상해 본다. 이번에도 하늘로 솟아오른 객기에 차분한 내 자아는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올리브를 넣어보고 토마토와 바질도 넣어보고 새로운 치아바타를 상상하며 부푼 기분을 다스려내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속을 봐야 진국임을 아는 것 처럼 속을 열어보니 안 봐도 맛있는 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가루 + 이스트 + 소금만 휘휘 섞어 발효의 마법으로 멋진 치아바타가 탄생해 버렸다. 화려한 재료도 멋진 베이킹 도구도 없었다. 그냥 잘 만들어진 유튜브 선생님의 가이드와 보잘것없는 내 망손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이스트가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좋은 빵 맛을 만들어주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성공에는 꼭 좋은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하고 앞에 놓인 내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된다. 자꾸 필요한 시간을 억지로 당기려 머리 쓰지 말자.

그렇게 긴 시간 안에서 발효 과정처럼 부글부글 끓은 내 안의 고민과 고통들이 인내와 통찰로 쌓이다 보면 이 반전매력의 치아바타처럼 나를 멋지게 완성시켜놓지 않을까?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더없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그래서 알면 알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진하게 남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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