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데가르송은 왜 40년 넘게 '이상하게' 남았을까

by ㅎㅇ

꼼데가르송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다." 비대칭 실루엣, 검은색으로 뒤덮인 컬렉션, 옷인지 조형물인지 모를 형태들. 2026 FW 컬렉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Black Hole"이라는 테마로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전통적인 남성복의 코드를 해체하고, 라펠과 단추 위치를 재배치하며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꼼데가르송이 40년 넘게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브랜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유행은 빠르게 변하고, 브랜드들은 시장에 맞춰 끊임없이 변신한다. 그런데 꼼데가르송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같은 방식으로 계속 변한다.

26fw 컬렉션


본질로 돌아가기: "옷이란 무엇인가?"

레이 카와쿠보가 1981년 파리에 처음 섰을 때, 그는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졌다. "옷이란 무엇인가?" 당시 패션계는 화려한 색상과 몸을 드러내는 실루엣이 주류였다. 하지만 카와쿠보는 검은색, 오버사이즈, 비대칭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은 "히로시마 컬렉션"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카와쿠보는 전쟁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옷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1997년 "Body Meets Dress, Dress Meets Body" 컬렉션은 이 질문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패딩으로 부풀린 비정상적인 실루엣은 "옷은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전제를 거부했다. 대신 카와쿠보는 "옷 그 자체가 몸이 될 수 있다"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브랜드 기획자로서 나는 이 지점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일까?"를 묻는다. 하지만 꼼데가르송은 "옷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본질로 돌아가는 질문이 40년 넘게 브랜드를 지탱하고 있다.


상식에서 착안하기: "아름다움은 완벽함이다"를 뒤집다

꼼데가르송의 혁명은 "당연한 것"을 다시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1982년 Holes 컬렉션은 일부러 구멍을 뚫은 스웨터를 선보였다. 1983년 Patchworks and X 컬렉션은 의도적으로 해진 가장자리와 노출된 솔기를 그대로 두었다. 비평가들은 "종말론적"이라고 혹평했지만, 일부는 "신선한 사고"라며 찬사를 보냈다. 카와쿠보는 "아름다움은 완벽함이다"라는 상식을 뒤집었다. 불완전함, 비대칭, 해체.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다. 나는 이 방식이 브랜딩의 본질이라고 본다. 좋은 브랜딩은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꼼데가르송은 "옷은 예뻐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어, 오히려 더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었다.


비상식을 상식으로 되돌리기: 이상함이 새로운 기준이 되다

꼼데가르송의 가장 큰 업적은 "이상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1981년 파리 데뷔 당시, 꼼데가르송은 "이상하다", "히로시마의 복수"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오버사이즈와 비대칭은 패션의 새로운 상식이 되었다. 스트리트 브랜드부터 럭셔리 하우스까지, 모두가 꼼데가르송이 만든 "비상식"을 따라 하고 있다.

형태는 매번 달랐지만, 질문은 같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정말 옳은가?"


브랜드 리듬: 본질, 상식, 비상식이 만나는 지점

브랜드 커넥터의 시선에서 보면, 꼼데가르송의 일관성은 브랜드 리듬이다. 브랜드 리듬이란 매 시즌 다른 디자인을 선보여도, 같은 박자와 톤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꼼데가르송의 브랜드 리듬은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본질로 돌아가기. 매 시즌 "옷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둘째, 상식에서 착안하기. "아름다움은 완벽함이다"라는 상식을 뒤집어, 불완전함이 더 강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비상식을 상식으로 되돌리기. 40년 전 "이상하다"는 평을 받았던 디자인은 이제 패션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꼼데가르송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컬렉션 노트는 짧고, 카와쿠보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해석하게 둔다. 어떤 사람은 꼼데가르송을 "예술"로 읽고, 어떤 사람은 "반항"으로 읽는다. 그리고 그 해석의 자유가 꼼데가르송을 더 강하게 만든다.


브랜드의 아름다움을 다르게 보는 방식

브랜드의 아름다움을 '완성된 형태'로만 본다면, 꼼데가르송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아름다움을 '본질을 묻고, 상식을 뒤집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본다면, 꼼데가르송만큼 일관되고 강렬한 브랜드는 드물다. 꼼데가르송은 40년 넘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답을 주는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그게 꼼데가르송의 브랜드 리듬이다. 나는 브랜드 커넥터로써, 꼼데가르송이 사람들에게 닿는 방식이 흥미롭다. 꼼데가르송은 모두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본질을 묻고, 상식을 뒤집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과정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자연스럽게 닿는다.

이 코트는 울룩불룩함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정말 옳은 걸까. 꼼데가르송은 여전히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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