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모닝미라클 사이 어드메에서
새벽 3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두 달쯤 됐을까. 정말 지쳐 쓰러진 날이 아니고서야 꼭 한 번은 깬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고양이를 돌보다 보면 어느새 5시가 된다. 그러면 다시 두어 시간쯤 얕은 잠에 들었다. 어떤 날은 글도 썼다.
새벽의 독서와 글쓰기는 이상하게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나는 또렷한 글을 쓰고 싶었다.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기승전결이 단단한 글. 그런데 새벽 3시에 쓴 문장들은 늘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문장은 흐르고, 생각은 번지고, 마음은 쓸데없이 예민해졌다. 낮에는 그냥 지나쳤을 일도 새벽에는 유난히 크게 걸렸다. 왜 그럴까. 새벽은 원래 사람을 그런 식으로 흔드는 시간일까.
요즘은 책 대신 낙서를 한다.
낙서를 위한 준비물은 낡은 노트 한 권이면 충분하다. 거기에 하고 싶은 말을 마구 갈겨쓴다. 대개는 욕이다. 재수없고, 짜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적는다. 점잖은 표현으로 다듬지도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못난 마음을 못난 모양 그대로 쏟아놓는다. 그러고 나면 조금 후련해진다.
더 신기한 건 그다음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글을 보면, 분명 내가 쓴 말들인데도 묘하게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는 세상 끝날 것처럼 들끓던 짜증이, 막상 글자가 되어 종이 위에 붙어 있으면 우습게 보인다. 저 정도였나 싶고, 저 일에 이렇게까지 열을 냈나 싶다. 신기하게도 화는 그때부터 조금씩 힘을 잃는다.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걸 글로 쓴다.
글로 쓴다는 건 어쩌면 내 생각을 내 눈으로 다시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있을 때의 생각은 너무 가까워서 자꾸만 커진다. 하지만 한 번 밖으로 꺼내 적어두면, 그것은 더 이상 나와 완전히 붙어 있지 않다. 나와 생각 사이에 조금의 거리가 생기고, 바로 그 거리 덕분에 감정은 덜 무서워진다. 가까이 있을 때는 삶 전체를 뒤흔들 것 같던 마음도, 막상 적어놓고 보면 생각보다 작고 유치하고 금세 시들어버릴 것처럼 보인다.
당분간은 욕지거리를 쓸 생각이다.
욕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은 솔직히 썩 예쁘지 않다. 하지만 미운 마음을 없애는 데 꼭 품위가 필요하진 않은 것 같다. 때로는 낡은 노트에 한바탕 쏟아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미움은 참을수록 맑아지는 게 아니라, 써버릴수록 탁해진 채 빠져나가기도 하니까.
내일 새벽에도 아마 눈이 떠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노트를 펼쳐 오늘의 미움을 한 장쯤 받아 적을 것이다.
잘근잘근 씹듯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