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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 저기 Jul 16. 2024

기분 좋은 촉각 여행- 임실, 남원

2024년 여름 : 남도 내륙 종단기 1

바야흐로 여름휴가철. 이맘때면 모여서 움직이는 단골 멤버 K, G, B가 뭉쳐서 식탐여행을 떠난다. B의 얘기챦은 강제 휴식이 우리에게는 이런 보너스 시간을 준다. 이번 코스는 중부 내륙을 통해 남도 여수와 남해까지 종단해서 내려갈 계획이다.


행운집

KBS의 애착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라는 예능쇼에서 소개한 임실 시골 동네의 조그만 국수와 수제비집으로 달려가 점심을 해결한다. 탄수화물파 일행은 한 시간 반을 달려 수제비와 국수를 먹으려 한다. 임실군 중심부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외딴 마을에 조그만 식당이다. 밖에서 보기에 허름하기 짝이 없다. 모르고 지나친다면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식당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다. 엄청 뻑뻑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테이블 서너 개의 작은 식사공간이 있다.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가게를 지금은 이주 며느리가 함께 하고 있다.

김치수제비는 피가 얇아 마치 부산의 완당을 먹는 착각이 든다. 수제비 피를 떼내는 것이 성가신 일이니 식당에서 먹는 수제비 피는 언제나 두껍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의 수제비는 후루룩 마셔도 될 만큼 얇아 먹기에도 좋고 부담 없는 식감에 맛도 좋다. 묵은지 김치를 넣어 끓여낸 김치 수제비는 일품이다.

국수도 특이하다. 소면보다는 두껍고 칼국수보다는 얇은 처음 보는 면 스타일이다. 소면보다는 씹히는 식감이 있어 근근함을 준다. 나쁘지는 않지만 김치칼국수가 워낙 인상적이다.

덧 붙일 포인트가 있다. 국수를 주문하면 사이드로 머리 고기를 새우젓과 함께 한 접시 준다. 주객이 전도된 건데... 도시 사람 B는 놀람을 금치 못한다. 몇천 원짜리 국수에 고기를 사이드로... 주다니... 이것이 남도 인심의 시작인가.

가게는 이주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새댁 둘이 지키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국말을, 본인들은 모국어로 대화한다. 옆 테이블에서 부부가 식사를 마치고 나갔는데 아내분도 이주해 오신 분이셨다. 역시 지방에 오니 삶의 터전을 우리나라로 옮긴 분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다문화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서 '단일민족'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은 배우지 않겠지?

세월이 켜켜히 쌓인 식당과 양 많고 맛있는 음식

여름휴가라 반바지를 입고 있어 온통 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식탁과 의자의 나무 질감이 다리에 느껴진다. 진짜 나무다... 이렇게 따듯하고 포근할 수가... 이런 편안한 촉감은 멋진 인테리어를 입은 도시 식당들이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무 색상만 프린트한 도시의 무늬 나무들은 모두 가짜다. 짝퉁이다.


남매점빵

식사를 했으니 '달달이'가 당긴다. 디저트는 임실 다운타운으로 들어가서 해결한다. 두 곳의 후보 중 이름이 좀 더 따듯한 남매가 한다는 곳으로 간다. 군청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정말 돈 안 들이고 깔끔하게 차려놓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어울린다. B도 주인장의 '추구미'가 느껴진다고 한다. 커피와 디저트는 나쁘지 않은 정도다. 이 시골에서 이런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샌드위치 판넬로 대충 마감하고 흰색 도색만 해 놓은 인테리어가 오히려 정겹다


임실시장, 임실치즈마을, 치즈온피자

잠시 시장을 들렀으나, 내일이 장서는 날이고 그래서 오늘은 조용하다. 골목 한두 개 눈팅만 한다. 임실에 왔으니 치즈 테마파크에 가서 체험활동이라도 좀 해야 하는데 오늘은 불행하게도 월요일이고 모든 곳은 휴무이다. 가는 곳마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사파리 여행하듯이 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닌다. 차내 에어컨 곁에서 맑은 자연의 여름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참 꿀이다.

조용한 임실의 여름 한낮에 볼 수 있는 한가함의 극치

동네 길을 차로 거닐다 발견한 원두막이다. 아무런 인공자재 없이 나무로만 지어놓은 모양새가 너무 자연스럽다. 구불거리는 통나무를 기둥은 더 없이 안전하고 튼튼해 보인다. 이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가우디가 그랬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직선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형태다. 두 지점의 가장 가까운 경로를 연결한 것이 직선이지 않은가. 그것은 생각의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신봉하고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촌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들 이성의 한계를 스르륵 느끼게 된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모르고 지나치면 한낯 시골 풍경이지만 말이다.

 

갑자기 자연뽕에 취하게 만든 원두막

켄싱턴리조트지리산 남원

한가한 임실을 떠나 체력 보충을 위해 약 25분 떨어진 남원 숙소로 이동한다. 숙소 명칭으로 보아 지리산을 느낄 수 있는 외곽 지역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시내 중심에 있다. 가끔 여행지 검색 중 보던 그 사진의 모습을 가진 건물이 있다. 겉 보기에 낡은 리조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 번 놀랄 일이 생긴다. 체크인을 하러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잘 정돈되고 고급져 보이는 로비 인테리어에 놀란다. 화강암 소재를 주로 사용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웅장한 품위를 지닌 공간을 만드러 놓았다. 굿잡. "아하 제대로 실내 리노베이션을 했나 보구나".

특히 리셉션 데스크가 자연스러운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울퉁불퉁한 돌에 손을 얹고 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 손이 많이 닫는 앞부분은 진하게 변색이 되어 있다. 여느 리셉션 데스크의 반질한 상판보다 자연스러운 돌질감이 어찌나 좋은지 한참이나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돌의 거칠한 표면을 손으로 만났다. 좋다 좋아 이 질감... 아까 나무에 이어 돌까지? 오늘 내 촉각이 호강하는 날이다.

그런데... 키를 받아 들고 들어 온 객실은? 아 이것은 아주 낡은 옛날 콘도미니엄의 방 그대로 인듯한다. 로비와 대비되는 이 반전이 너무나 놀랍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깊이 베여 있고, 꼼꼼히 관리 못한 흔적이 너무 많다. 요즘 리조트나 숙소의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래도 거실도 분리되어 있고 넓어서 좋으니 이 가격에 이 정도면 오케이다.

한우회관

저녁은 체력 보강 및 영양 보충 차 고기를 먹기로 한다. 낮에 과한 탄수화물 섭취로 저녁은 단백질 위주로 가 보는 거다. 2016년에 제주도 한달살이 가는 길에 들러 먹은 육회비빔밥 식당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이곳 한우마을이라는 식당을 보고 그곳이 아닌가 생각하고 왔다. 그곳이 맞다. 안심과 육회 비빔밥은 부담 없이 마일드한 풍미를 준다. 여기는 전라도다. 맛이 없으면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은 거다. 이런 신뢰라니. 안심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녹는다 녹아. 두꺼운 고기가 부드러워 젓자락으로 찢어질 정도다. 가격은 좀 있다 싶으나 양이 많다. 맛있는 저녁을 먹는 즐거움. 땡스 갓.


빈타이카페

지난번 전주 여행에서 소개한 전북지역 로컬 커피 체인점이다. 전주에서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대로 동남아 풍의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럭셔리 그 자체다. 위치가 남원 예술촌과 광한루 옆이라 한국적 정서를 공간에 듬뿍 담았다. 여느 최고급 호텔 인테리어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마감과 소재와 색감이다. 인테리어 하신 분 감각에 칭찬을 보낸다. 이러니 '도시 촌놈'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싶다. 지방이 개발되면서 넓은 땅에 멋진 공간들이 너무나 많이 생긴다. 즐거운 일이다.

인테리어도 멋지지만, 화장실 손잡이가 나를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돌맹이를 달아 놓았다.

디저트 타임 후 나오기 전 화장실을 들렀다가 손이 호강한 이야기이다. 화장실 손잡이가 돌이다. 아 자연물이 주는 이 촉감이란... 또 좋다. 다시 한번 디테일한 인테리어 센스에 박수를 보낸다.


남원예술촌, 광한루

카페를 나오면 연등이 길거리에 가득하다. 밤이 되니 그 빛이 화려해지며 멋진 풍경을 만든다. 야간에 걸어보는 광한루의 풍경은 낮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낭만적이다. 저녁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거기에 입장료까지 무료로 바뀌니 금상첨화다. 얼마 안 되지만 공짜라니 신나네. 조명과 어우러진 광한루는 아름답게 그지없다. 누각의 원탑인 경회루를 빼고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그리고 이곳 남원의 광한루가 우리나라의 4대 누각이다. 브랜드 있는 곳이라 그런지 무척 아름답다. 낮보다는 저녁 산책을 권한다.

물에 비친 광한루의 아름다운 모습, 이 곳은 몽룡이와 춘향이가 썸 타던 곳

저녁 산책까지 마치니 이제는 하루를 마감할 시간. 다이소에 들러 애플워치 충전기 하나 사고 복귀한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받는 다이소 혜택. 도농간 삶의 패턴이 차이가 없어진 것을 볼 때마다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는구나 싶다. 수고했다! 대한민국. 요즘 국뽕이 왜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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