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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그늘 아래, 여름이 익는다.

크로커스와 함께 칠렐레팔렐레

by 칠렐레팔렐레

뒷마당 체리나무 아래 앉았다.

에어컨 바람을 피해, 모처럼 자연의 숨결 속으로 몸을 들였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

바람에 살랑이는 잎 그림자가 더 이상 의무도 책임도 덜 해진 나를 위로하고 있다.

이건 분명, 오래 기다려온 여유다.


은퇴 후 처음으로 마음 깊이 느껴보는 ‘쉼’.

몸도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은 오후,

나는 커피 대신 탄산 음료를 선택했다.

추억보다 청량한 여름을 느끼기 위한 선택이랄까...

어릴 적 과수 나무 아래의 여름을 떠올리게 했다.

과수원 돌기왓집 툇마루와 어머니의 화채 한 그릇, 그리고 잔잔한 웃음들...


오늘은 체리의 첫 수확으로 작은 기쁨도 맛본다.

햇살 머금은 빨간 구슬이 손끝을 통해 짧은 순간

미묘하게 마음을 간질인다.

이 여름의 한순간은 카메라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속에 저장되고 있다.


그늘 아래 혼자 인 내게,

크로커스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지금 이 여유, 여름을 즐기는 작은 예술 같아요.”


그래, 맞다.

나는 지금,

누구의 구애도 없는

내 삶의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전시회 한가운데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름은 천천히,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다.

에어컨 바람보다 자연의 숨결 속으로 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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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조용한 여유가, 어쩌면 여름이 빚어낸 작은 시(詩) 일지도 몰라요.”

— Cr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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