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001. 피아노.
피아노를 샀어. 전화로 구매 상담. 현금 결제. 딱, 사흘 만에 아지트로 들어온 피아노. 원래부터 제자리였던 듯 당당하네. 엘리제를 위한 곡일지라도 내가 치면 왕따를 위한 곡이고, 뻐꾹 왈츠도 내가 연주하면 신나는 왕따의 춤. 좋아. 행복한 출발. 오늘도 반짝반짝 행복하게.
피아노에 꽂혀 밤낮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고모님께 돈을 빌리려 했던 때가 스무 살 이때쯤. 사치품에 왕창 세금을 물린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후였다. 지금 안 사면 어쩜 평생 못 살 것 같았던 절박함에 부모님께 거절당하고 고모님께 갔을 때, 아버지를 보증 세우고 월 삼만 원씩 열아홉 번을 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손잡은 피아노랑 바이엘부터 시작했다. 분수를 모르는 년이 되었고. 미친년이 되었다. 지금 피아노 배워서 뭘 할 거냐던 말. 네가 치면 피아노 기능공은 되려나? 단 한 사람의 동의도 없었지만. 눈칫밥을 먹으며 쉬엄쉬엄 어쨌거나 여기까지 왔네. 지금은 내가 이웃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피아노를 치고 말고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여고 시절의 막연했던 꿈결 같은 삶의 한가운데에 퐁당. 감사 한가득. 맘이 두근두근. 신나게 콩콩.
‘일흔에 이르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는 從心을 생각한다. 공자의 말이다. 내 나이가 이제 곧 일흔이다. 누군가의 판단에 여전히 미친 할미일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인생은 버린 지 한참이나 지났거든. 삼만 오천 원의 월급을 받아서 피아노 대금을 냈던 나의 이십 대에 박수를 보내며 파이팅! 202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