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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Jul 10. 2024

여행은 끝나고, 채식은 시작하고.

닷새 동안의 가족 일본 여행이 끝났다. 여름휴가로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첫째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 기말고사가 끝나고 곧바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준비는 비행기 표가 다했다. 일단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 숙소 예약이 쉽고, 숙소 예약을 하고 나니 일정 잡기가 수월하고, 그다음에는 주변에 식당과 쇼핑할 곳을 확인하고,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어려운 곳은 일일 여행 패키지를 예약했다. 일본은 JR노선이 좋아서 4일짜리 JR이용권을 미리 구매했다. JR을 엄청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노보리베츠 온천을 다녀올 때와 오타루 운하를 구경하러 오가는 길에 이용한 것만으로도 JR을 일일이 끊어서 이용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삿포로 시내구경도 여러 번 하고 쇼핑도 하고, 온천도 하고 오타루도 구경하고, 비에이 후라노 일일패키지도 끊어서 잘 구경하고 다녔는데, 계속 바깥 음식을 먹는 바람에 기름진 음식을 과식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니, 평소에 유지하던 체질식과 채식 위주의 식사에서 벗어날 것을 알고, 여행 전부터 얼마간 식단을 더 엄격하게 조절하려고 애쓰긴 했지만, 여행지에서 엄청 먹고 나니 다시금 식단 조절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사람마다 식단 조절을 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아토피 피부 때문에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 많은 시대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일부러 안 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외모를 보여주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괴로움을 겪으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는 입에 맞는 음식을 즐겁게 먹었다. 사실 식도락이 엄청난 즐거움 아닌가? 식도락만큼 즐거운 것도 별로 없지 않은가? 매일매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손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나도 아니다. 심지어 결혼 전에도 살을 빼려고 음식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지만 크게 살이 찌는 편도 아니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먹는 것도 아닌데 살이 조금씩 쪘다. 같은 양의 음식을 먹고도 몸이 지속적으로 불어나는 것도 노화 탓인가? 살이 조금씩 찌고, 입던 옷이 불편해지고, 옷 입은 태가 잘 나지 않아도, 옷스타일을 바꿨지, 식단을 바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특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바로바로 풀기에는 달콤한 디저트에 커피 조합만 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갑자기 아토피가 심하게 올라왔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감기에 걸리듯이 아토피가 심해졌고, 그러고 나서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대로 체질식을 했다. 금체질인 사람은 고기와 밀가루, 커피가 몸에 해롭고 푸른 잎채소와 통곡물, 생선이 대체로 건강에 이롭다. 체질식을 상당히 열심히 몇 개월간 유지했고 놀랍게도 아토피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아토피는 심각한 정도여서 피부과에서 아주 높은 정도의 스테로이드 연고와 약을 처방받은 상태였다. 그 약을 하나도 먹지도 바르지도 않고 가져다 버렸는데, 그 약조차도 듣지 않을 때가 되면 더 독한 약을 써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약을 멀리했다. 한쪽에 치워둔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때에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독한 약을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기에 고심 끝에 통째로 버렸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15년 정도 사용했었다. 사춘기쯤부터 결혼하기 직전까지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생각지도 않고 필요한 대로 조금씩 발랐는데,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한 스테로이드 연고는 끊기가 어려웠다. 많은 양도 아니고 그저 아주 조금씩 바르기만 하면 피부 트러블이 잠잠해지고, 누구보다도 매끈한 피부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내 피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오히려 얼핏 보기에 피부가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러다 연고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시점에 와서야, 스테로이드 없을 때의 나의 피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부를 위해서 체질식을 시작했지만, 단식은 하지 못했다. 짧은 단식이 아토피 피부를 낫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자신이 없고, 그 효과에 대한 확신도 없으니 굳이 실행해 보지는 않았다. 조승우 한약사의 <완전배출>이라는 책을 읽고 채소과일식을 실행해 보았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채소과일식과 일반식의 비중이 7:3 정도면 좋다는 작가의 말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반대로 3:7이 되기도 하고 일반식을 하면서 기름진 음식을 조금씩 더 먹게 되고 디저트도 조금씩 더 먹게 되었다. 자꾸만 특별한 일이 생기고 외식을 하게 되면서 채소과일식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아침에만 채소과일식을 하고 점심과 저녁은 체질식을 간신히 유지했는데 고맙게도 아토피가 자연적으로 상당히 치유되었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고 얼마간 계속 불편했다. 아주 매끈한 피부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아토피가 남아 있다. 그때 읽은 존 맥두걸의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연식물식을 주장하는데, 채소과일식이나 체질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채소과일식에 비해서는 통곡물이 추가되니 좀 더 먹을 게 많고, 체질식에 비해서는 생선 등 해산물이 빠지니 좀 더 먹을 게 없다. 자연식물식에서는 생선도 죽은 음식으로 친다. 고기보다는 덜하지만 생선도 결코 권하지 않는다.



자연식물식을 며칠 해 보았는데 몸이 훨씬 편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엔 30일간 자연식물식을 실행하려는 참이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을 듬뿍 먹었으니 지금이 자연식물식을 하기에 딱 좋은 시기다. 오늘은 자연식물식 첫 번째 날이다. 오늘은 통곡물도 먹지 않고 하루종일 양배추만 먹고 있으니 채소과일식에 가깝다. 뭐가 되었든 자연식물식을 시작하면서 몸을 좀 비우고 싶다. 여행지에서 먹은 온갖 음식을 소화하고 배출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에 적색 양배추 한 통을 손질해서 통에 담아 두었다. 아침에는 생 양배추에 소금만 뿌려서 먹고 점심은 양배추에 소금과 후추 간을 해서 살짝 볶아 먹었다. 저녁에는 다시 생 양배추에 잘 익은 백김치를 꺼내 먹었다. 밥을 포함한 곡식은 먹지 않았다. 어제 늦게 여행지에서 돌아온 데다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하루종일 양배추만 먹으니 좀 몸이 나른한 느낌이다. 채소과일식의 문제는 쉽게 허기가 지고 기운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연식물식의 첫날은 채소로 디톡스를 하려고 한다. 내일부터는 쌀, 콩, 팥을 섞어서 잡곡밥을 하고 반찬으로는 채소, 그리고 간식으로 과일을 먹어야겠다. 밥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하루종일 양배추만 먹으니 갓 지은 밥이 맛있어 보인다. 밥을 먹고도 늘 뭔가가 아쉬워서 찬장에서 쿠키나 초콜릿을 꺼내어 먹어야 만족스러웠는데, 오늘은 아이들 식사 차려면서 밥만 보아도 맛있어 보인다. 오늘까지는 그래도 디톡스다. 자연식물식을 30일 동안 유지하려고 한다. 짧게 하루 이틀 자연식물식은 해보았지만 30일을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에 몸무게를 재어 보았다. 그리고 오늘의 피부의 상태를 알고 있다. 30일 뒤에는 몸무게가 어떨지, 아토피는 어떤 상태일지, 그리고 입맛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자연식물식이 정말 좋아서 계속 자연식물식을 유지하게 될지, 30일 동안 피부가 완전히 나아서 자연식물식을 포기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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