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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Jul 21. 2023

사별은 누구나 하는 거라고.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거야. 

집이 나가면 어쩌지?  

2018.05.25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복덕방에 내어 놓은 지 한참이 되었다. 간혹 연락이 오고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가곤 했지만 아직은 아무도 집을 계약하지 않아서, 지금도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집에 살고 있다. 나는 이 집에 월세로 살고 있다. 월세는 백 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에 관리비까지 합하면 이백 만원 가까이 되어서 내 입장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간다. 이 집은 하루 빨리 내어 놓고 이사를 해야 함이 마땅한 상황이다. 그런데 내가 집을 내어 놓으려는 그 사이, 집 주인께서는 이 집을 매매로 내어 놓으셨고 우리 집에는 그래서인지 집을 둘러 보러 오시는 분이란 죄다 매매계약을 희망하시는 분들뿐이다.



   남편이 사망하고 얼마간은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이사할 생각을 못했다. 그때는 별다른 일이 또 생기지 않아도 그저 얼마 전에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울면서 걸어 다니고 울면서 운전하던 때였으니깐, 나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 이 무거운 집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집은 도통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집을 둘러보러 온 사람들은 몇 있었기는 했지만 조금 유심히 본다 싶은 사람들도 돌아간 후에는 아무 연락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내 계약기간은 올해 9월까지이다. 지금 5월 말이니 만약 몇 개월 남은 올해 9월까지 이 집에 새로운 매매계약자가 생겨서 이 곳에 대한 매매 계약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이 집에서 올 여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이사를 미루고 있다가 봄을 보내고 후덥지근한 여름까지 모두 지나고 나면, 가을이 시작될 쯤 이사를 할 것이다. 오히려 집이 안 나가서 번거로울 수 있는 이사를 조금 늦출 수 있고, 아이들을 친정으로 내려 보내야 하는 시기가 늦춰진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빨리 해서 새로운 생활에 서둘러 적응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집이 나가지 않아 이사가 늦춰져서 생경하고도 두려운 삶이 어쩔 수 없이 미뤄진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크기 때문일 테지만, 나는 사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간혹 생길 때마다 “어, 어쩌지, 정말 집이 나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든다. 월세가 너무 무거우니, 이 집에서의 생활을 어서 청산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시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바로 그와 동시에, 이 집이 나가면 이제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미친다. 어쩌지, 어쩌지, 나는 안달 복달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상태로 정리되지 않은 무서움만 가득한 마음이 된다.


  이혼의 경우처럼 남편이 살아 있지만 다만 헤어진 것뿐이어서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나는 남편이 아예 없는 정말, 정말 오롯한, 온전한 의미의 한부모다. 남편이 살아있던 동안 나는 어린 아이 둘 때문에 하던 일을 놓고 몇 년간 주부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안간 순식간에 하늘의 무너지는 것과 같은 사별의 슬픔을 맞이했고, 동시에 혼자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특별한 가장’의 위치에 놓였다. 숱한 눈물의 밤을 지낸 후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란, 아빠 없는 아이들이 돈 마저 없어서 너무나 서러운 상태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언제부턴가 늘 이렇게 다짐하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2인분이 아니라, 3인분을 해야 하는 처지라고 한들 아직 유치원도 가기 전인, 어린이 집에 다니는 아주 어린 둘이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는 많지 않다.



  아마 그 선택이란, 일자리가 있는 곳 근처에 나 혼자라도 지낼 조그만 거처를 구해서 얼른 이사해서 일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아이들의 양육은 나의 친정 부모님께 맡아달라 부탁하는 것뿐일 것이다. 마치 여느 평범한 집안처럼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에는 남편이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부인이 아이들의 양육을 분담하는 상황과 피차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보통처럼 지내지만, 나는 남편의 역할을 내가 하고, 부인의 역할을 친정 부모님이 하는 것으로 그 등장인물이 조금 다른 것뿐이다.



  만약 누가 늙은 부모님께 내 아이를 맡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내게 말한다면, 사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거의 없다. 만약 정말 내게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애비 없는 자식들 돈까지 없어서 정말 서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그런 상태는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편도 없는데 새끼마저 떼어놓고 돈 벌러 나가야 하는, 그 애미 마음은 대체 어떨 것 같아요? 상상은 해 보셨어요?”고 되물을 수 밖에 없다. 이제 미친 듯이 일에만 매진해서 2인분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내가 아이들의 양육을 믿고 맡길 곳이란 친정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이셨던 분도 나의 남편이 죽고 난 후 몇 달 후에 사망하셨고, 시아버지이셨던 분은 내가 남편과 결혼하기 몇 년 전에 이미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아서, 시댁에도 아무도 안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홀홀 단신으로 내 아이들 둘을 키워내야 한다. 주중에는 미친 듯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하고, 너무 어린 내 아이들이 아빠도 없는데, 엄마마저 떨어져서 서럽지 않도록 주말마다 친정인 광주에 내려가서 아이들이랑 놀아줘야 한다. 그게 남편이 죽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결정 내린, 앞으로의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빈민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나의 일이다. 친정에서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마 나와 내 아이들은 평생 빈민의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어서 나가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인데도, 나는 집을 보러 사람들이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집이 나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시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일을 주로 해왔던 사회복지사 한 분은, 내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면,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과 같이 지낼 돈도 벌지 못하는, 다같이 죽는 길이 되기 쉽다고 했다. 엄마가 얼른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엄마와 아이들이 나중에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도 아이들이 나랑만 있는 것보다는,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 집에서 주중을 보내다가, 주말에 엄마와 함께 지내면 그게 훨씬 더 좋은 환경일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어쩌면 내 아이들이 주중에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 받으면서 지내다가 주말에는 엄마와 같이 놀러 다니면 정서적으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일하는 데에 있어서도, 주중에는 일에만 전념하고, 주말에는 아이들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덕방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인 상태가 되는 것은, 참, 매번 똑같다.



  사실 집이 나가기 전인 지금도,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애기들의 어린이집 등하원과 내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부모님 말씀처럼, 집이 나가기 전, 이사하기 전이라도 아이들을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친정에 내려 보내고 나만 지금 인천 송도의 집에 남아서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은 “내가 너무 무서워서 안 된다”고 부모님께 억지를 부렸다. 



  “나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무서워. 이 집 나가면 바로 조그만 데라도 서울에 나 혼자 지낼만한 작은 집 하나 구할 거야. 그러면 애기들은 광주에서 어린이집 새로 구해서 보내면 돼. 주중엔 나는 서울에 있고 애들은 광주에 있고 하다가, 주말엔 내가 광주 갈 거야. 애기들 혹시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깐, 내가, 정말 몸이 부서지지 않는 한, 정말 매주 광주 갈 거니까 그건 걱정 말고. 차 안 가지고 그냥 버스나 기차 타고 자면서 가면 괜찮을 거야.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월요일 새벽에 올라오면 일주일 중에 4일 떨어져 있고 3일은 보잖아. 주말부부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 그니깐 이 집 나가면 그때 애들 보낼 테니깐, 그 전에는 엄마나 아빠가 우리 집에 와서 애기들 좀 봐주면 안될까? 엄마랑 아빠는 다 은퇴하고 집에 계시잖아요. 나는 남편도 없이 2인분으로 일해야 되는 앤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렇게라도 일해서 지 새끼들 키워보겠다고 이렇게 발버둥치는데, 나 불쌍하지도 않아? 엄마랑 아빠가 나 좀 도와주면 안돼?



  나 정말, 정말로 이 집에서 나 혼자 지내는 건 좀 무서워. 그건 정말로 못하겠어. 남편이랑 애들이랑 같이 살던 집에서 작년에 남편이 죽어서 사라졌어. 근데 애들마저 멀리 친정으로 내려가면, 나만 혼자 이 큰 집에서 있게 되잖아. 그럼 정말 혹시 어느 날 우울해지면, 나 거짓말 안하고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고!



  나 좀 도와줘. 응? 나 엄마랑 아빠마저 안 도와주면 정말 살 수가 없어. 제대로 일할 수도 없고, 애들 뒤치닥 거리까지 다 하면서, 파트타임이나 하면서 평생 가난하게 살라는 거잖아.



  나 정말 엄마랑 아빠가 안 도와주면 죽어 버릴 거야”



  나는 하도 부모님이 올라와서 봐 주는 건 안 된다고 광주로만 오라고 하셔서, 그냥 좋게 좋게 얘기만 하다가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죽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보다, 내가 아직 실제로 내 애기들을 친정이 있는 광주까지 떼어 보낼 자신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내가 도저히 아직 애기들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낼 준비가 안돼서, 그 생각만 하면 눈물만 나서, 그런 것이었다. 애기들이랑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은 내가 “죽을 거다.” 라고 하는 말에 놀라서이신지 바로 다시 수화기를 들어 올라오시겠다고 하셨고, 덕분에 나는 죽지 않고 버티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그 미래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지금의 상황에 처한 나를 도와주시는 몇몇 분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도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면 작게나마 매번 두려움이 밀려온다. 정말 집이 나가면 어쩌지? 나 잘 할 수 있을까? 설마 금요일 밤 만날 때마다, 월요일 새벽에 떨어질 때마다 애기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약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요즘 나는 꽤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를 보러 저녁 외출을 했다. 한 위치에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이다. 우리는 그 친구가 운영하던 병원이 그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그 주변에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생기고 또 사라지고 했었는지 등등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사실 내게 그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필요했던 이유 중에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그 친구가 중학생일 때 돌아 가셨다는 사실도 있었다. 내가 이 일이 생기고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이, 나는 내 아이들이 앞으로 혹시라도 겪게 될 ‘아빠 없는 자식’의 아픔을 절대로 완벽하게 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나면서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되는지,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지, 나는 겪지 못했으므로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온전히 품어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이랑 밖에서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다른 테이블의 가족을 보고서 “저기 아빠 있다. 저기 아빠 있다.” 라고 다른 아이들의 아빠를 무심코 불러대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혹은 자꾸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 아빠 나왔어. 저기 아빠 있어.” 하고 성인 남자 출연자를 가리키면서 말하는 아이를 볼 때, 그 어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싸늘함이 몰려오고, 그 가슴은 대체 어느 정도로 문드러질 수 있는가 하는 것들뿐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헤아리지 못할, 내 아이들이 겪어야 할 ‘아빠가 없는 아이들의 아픔’을 아마 이 친구는 조금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딛고서 사회적으로도 의사로 성장한 친구를 두고, 나는 내 아이들의 미래도 또한 어김없이 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의 대화 중에 친구는 내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나도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 그 이후로 조금 더 자라고 나서 친구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어서 싫더라고. 나는 얘기할 아빠가 없으니까. 근데 그런 시기가 지나고 조금 더 지나니깐, 그냥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분이구나 싶어서, 그냥 고마웠어. 네 아이들도 다 잘 자랄 거야.



  그리고 사별은 누구나 하는 일이야. 이혼이야, 누구 인생에는 없을 일일 수도 있지만, 사별은 누구나의 인생에 다 공통적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별일도 아니야. 그냥 그 시기가 조금 다를 뿐인 거지.




  음..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 거라고.”




  아, 그랬다. ‘사별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생각을 나는 왜 하지 못했을까?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일 뿐인, 평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만들어 나가느냐에 따라서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더 불행하게 할 수도 있었다.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건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인생에 일어난 것들 중 아무 것도 기적이 아닐 수도 있고, 모든 일이 기적일 수도 있다면,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적으로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 멋진 마법과도 같은 나의 인생. 어쩌면 집이 나가고, 이사를 하고 난 후에 내 인생이 더 멋지게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신이 난다. 







2023.07.21


그래 그때는 참. 그 말이 안들어왔었는데 


사별은 누구나 하는거고.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거라는거. 

되게 웃겼는데. 


내가 이제 그 일을 하고 있다. 


사별하신 분들이 그걸 더 좋은 걸로 만들어내는 일 

꼭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말도 만들었다. 

사별을 4별로. 

반짝반짝 빛나는 내 인생의 4개의 별로. 



그리고 아직은 작지만. 뭔가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별하신 분들이 계속 그 자리에만 그대로 머물러 있는게 속상해서. 

더 빛나는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어서 


채팅방도 만들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한국여성커리어리더십협회 / 갑자기 사별한 엄마들의 성공연대 홈페이지 

https://careersalon.creatorlink.net/



오픈채팅방에서는 

사별한 엄마들이 살아남기위해 필요한 것들을 매일 매일 한가지씩 생각해보도록 

<매일 질문> 코너를 운영 중. 

사별맘성공을 위한 모든 것, 사모

https://open.kakao.com/o/gCODPq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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