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리는 삶을 연습하기
20년 만에 제주도
몇 년 전, 아빠가 하늘로 가셨다. 아빠를 모시며 보냈던 6년은 나에게 쉼이라는 단어가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기보다, 버텨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날들이었다. 밤새 안녕하신지 선잠을 자며 확인을 해야 했고, 행여나 주무시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봐 한쪽 귀를 열어놓고 잠을 잤던 시간들이었다. 아빠가 떠난 뒤에도 나는 쉽게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괜찮은 척 일상을 이어갔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채워갔다. 하지만 마음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딸이었다. 딸 녀석은 말이 많지 않았다. 대신 나를 오래 바라보며, 말수가 줄어든 나, 웃음기 없는 얼굴엔 꾹 참은 슬픔을 곁눈질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우리 제주도 갈래?" 제주도는 나에게도 오래된 기억의 장소였다. 20년 전에
한 번 다녀왔을 뿐인, 희미해져 빛바랜 추억의 섬이었다. 딸의 제안에 가라앉아있던 마음에 숨이 들어왔다. 그렇게 3박 4일 여정으로 제주도로 향했다.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조용했다. 바람을 맞으며 걸었고,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딸은 함께 걸으며, 묵묵히 함께 했다. 긴장했던 마음을 나는 풀어놓았다. 엄마라는 역할, 딸이라는 책임감, 아빠 옆에서 늘 강해야 했던 나의 선택을 하나 둘 내려놓았다. 누리지 못했던 나의 삶에 후회는 없다. 아빠를 잃은 아픔 속에 쉼 없이 버텨온 시간을 딸은 그저 함께 있어주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제주의 여행 동안 딸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위로를 해주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아빠를 돌보며 보살폈듯이 딸 녀석도 3박 4일 동안 나를 보살펴 주었다. 지금도 그 여행을 떠올리면 제주의 행복이 떠오른다. 수시로 꺼내보는 사진첩 속에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딸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누린다는 것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감사했다.
누리는 삶에 대해 말해온 작가들
누리는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삶의 본질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누림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가져도 흔들리지 않는 삶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시선의 변화라고 말한다.
익숙한 삶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다시 누리게 된다고 했다.
이들의 말은 하나로 이어진다. 누리는 삶이란 더 큰 것을 갖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누리는 삶을 연습하기
조금씩 누리는 삶을 연습해 보고 있다. 자주 여행을 가지 못해도 괜찮다. 미리 만들어 놓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해보며 소소한 여행을 즐기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가까운 곳으로의 하룻밤을 해봐야겠다. 하나둘씩 소소한 행복이 모이면 나의 삶의 결이 바뀐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평온한 하루에 나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오늘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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