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영의 한 솔로] 16화 낭심 차기
▲ 대결 나를 이기려고 맥그리거 영상을 보고 온 거구의 남자라니. ⓒ 양민영
도복을 갈아입은 남자가 쑥스러운듯 웃으면서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촬영을 담당하는 스태프인 남자는 체격이 컸고 체중도 제법 나가 보였다. 그는 '격투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UFC(종합격투기대회)를 즐겨본다'고 했다. 전날 밤에도 선행 학습 겸 코너 맥그리거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나를 이기려고 맥그리거 영상을 보고 온 거구의 남자라니. '다칠 수 있으니까 절대 대결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사범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촬영 내내 무엇을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는 없었다. 게다가 이 콘텐츠를 기획한 피디가 섭외 단계에서부터 '주짓수 블루 벨트 여자와 일반인 남자의 대결' 따위를 원했다. 어쩔 수 없이 사범님의 당부를 무시하기로 했다. '이번 한 번만 멋대로 할게요.'
극도로 몸을 사리는 나는 도장에서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젊은 남성과의 스파링을 거절하는 편이다. 그들은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누구도 쉽게 이기지 못한다는 걸 깨달으면 돌변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몹시 허둥거리다가 마구 흥분하기 시작한다. 여성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매트의 최약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힘을 쓴다.
도장에서도 이런데 주짓수를 배운 적도 없는 남자와의 대결이라니. 승패는 내가 상위 포지션을 유지하지 못하고 뒤집히면 끝나는 걸 기준으로 삼았다. 웃으면서 장난처럼 시작한 대결은 그가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일순간 심각해졌다. 남자의 숨이 가빠지더니 한순간 눈이 미치는 걸 목격했다. 광기로 흐려진 눈과 마주하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마치 정언명령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할 땐 무조건 낭심을 차!"
나에게 이 말을 해준 건 전부 남자였다. 아빠, 오빠, 선생님, 친구 기타 등등. 또 세계적인 페미니스트도 비슷한 가르침을 주었다. 작가이자 폭력에 맞섰던 운동가 수잔 브라운밀러는 고환을 '남성이라는 성적 존재의 핵심'이라고 정의했다.
"고환이 쉽게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몹시 잘 의식하고 있는 남성들은 역사를 통해 갑옷과 보완물, 허리띠 위쪽으로만 공격하자는 '정정당당한 신사협정' 따위를 만들어 고환을 보호해왔다. 신사협정을 할 만도 하다. 물론 신사들 사이에서만. 여성이라면 공격당할 경우 '그의 불알을 차라, 그것이 최선의 묘책이다' 나는 자기방어 교습에서 그렇게 배웠다." -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수잔 브라 밀러
호기심 많은 민족인 영국인도 남성 존재의 핵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2016년 영국의 유튜브 채널 '투데이 아이 파운드 아웃'에서 만든 '왜 낭심을 차였을 때 배가 아픈 것일까'라는 제목의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데일리메일> 등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이 채널 운영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환은 원래 위장과 신장 근처의 복부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후 사타구니 쪽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는데 고환의 신경이나 혈관 조직의 일부는 복부에 남는다. 그래서 낭심에 충격이 가해지면 그 통증은 뱃속 아주 깊숙한 곳까지 이어진다. 통증은 주신경을 타고 척추까지 이어지고 두뇌까지 도달해서 아주 격렬한 통증을 유발한다. 충격이 지나칠 경우에는 생식 능력을 잃거나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처럼 허술한 낭심이 여성에게는 방어의 치트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낭심을 어떻게, 얼마나 세게 차야 하나?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발차기 클래스를 기획했다.
유난히 호응이 좋았던 이 수업의 백미는 단연 낭심 차기였다. 전직 킥복싱 선수인 코치님의 발차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긴 다리로 시원하고 강력한 킥을 어쩌면 그처럼 정확하게 꽂는지!
참가자들의 이목이 단숨에 집중됐다. 코치님이 낭심 차기로 가해자를 병원에 보낸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됐다. 그날 배운 낭심 차기의 핵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위보다 더 뒤쪽을 차야 한다'는 거였다. 엉덩이가 아니라 낭심을 정확하게 차기 위해서 무릎을 높게 들어야 한다는 것도.
연습용 미트를 발로 차는 훈련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열기가 뜨거웠던 현장은 며칠 뒤 한 일간지에 '여성 전용 운동 클래스'로 소개되고 사진도 실렸다. 물론 '토요일 낮에 무에타이 체육관에 모인 20여 명의 여성이 낭심 차기를 훈련하고 있다'는 해설은 빠졌지만.
▲ 대결 웃으면서 장난처럼 시작한 대결은 그가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심각해졌다. ⓒ 양민영
다행히 남자의 눈이 이성을 찾았고 촬영도 마무리됐다. 운이 좋았는지 부상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영상은 공개되자마자 악플 세례를 받았고 지금도 악플이 대추나무의 대추마냥 주렁주렁 달린 채로 인터넷 세상 어딘가에서 남자들의 화를 유발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남성의 내면에는 남성의 신체가 여성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완전하다는 믿음,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여자에게 지는 걸 상상하기도 싫은 불안이 공존한다. 가부장제는 남성 신체의 우월성에 관한 신화를 널리 퍼뜨렸고 이를 뒷받침할 생물학적인 근거도 넘쳐난다. 여성들조차 자진해서 '남자의 힘은 당해낼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이 신화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고 심각한 도전으로 인해서 훼손된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만에 하나라도 여자에게 지고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질까 봐 두려워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성이 진정으로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역사에 남을 기록을 갈아치우는 이들이 대부분 남자인데도 말이다. 그들의 자아는 가까이서 볼수록 플라스틱 모조품 같이 마감이 조악하고 나이를 불문, 누군가(주로 여성이)가 항상 돌봐줘야 할 정도로 유약하다는 인상만 받았다.
남성 존재의 허약함은 그들이 걸핏하면 자기 존재를 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따위 대결이 뭐라고. 나라면 분별없는 남자를 이김으로써 우월감을 채우진 않을 텐데. 부디 존재의 이유도, 우월감도 다른 곳에서 꼭 찾을 수 있길.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