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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민영 Dec 17. 2022

나의 첫 책에 쏟아진 '뻔뻔스럽다' 비난... 그럼에도

[양민영의 한 솔로]18화. 왜, 무엇을 위해 쓰는가?

▲ 광화문 광장에는 사나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12월, 광화문 광장에는 사나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두를 일이 없던 나는 천천히 목적지 없이 걸었다. 무균의, 얼어붙도록 차가운 공기가 싫지 않았다. 다만 신문사 입구에 널브러진 봉투 더미에 던지고 온 원고가 마음에 걸렸다.


그날 나는 마지막 학기의 소설 수업을 담당했던 교수님의 권유(사실은 명령)를 따르고 오는 길이었다. 졸업 작품을 심사했던 그는 전날 나를 불러서 신춘문예에 응모하라고 했다.


이듬해 1월, 새해 첫 신문을 사려고 밖으로 나왔을 땐 눈이 날렸다. '당선은 아니니까 기대하지 말라'던 교수님의 말대로 나는 낙방했다(당선 작가에게는 보통 크리스마스이브 전에 연락이 간다). 그런데도 굳이 신문을 샀던 이유는 혹시라도 내 소설에 관한 심사평이 실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련한 문학도들은, '순수한 낙방과 당선작과 경합한 끝에 결정된 낙방은 엄연히 다르다'고 믿는다. 내가 어느 쪽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유력 신문사의 새해 첫 신문을 사는 일이 그처럼 어려운지 몰랐다. 가는 곳마다 내가 찾는 신문만 동이 나서 눈발을 맞으면서 편의점을 대여섯 군데나 돌았다. 어렵게 구한 신문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상도동의 그 초라하고 쓸쓸한 방에서 펼쳤을 때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교수님의 말대로 내가 쓴 소설은 당선작이 아니었다. 당선작과 경합하다가 아깝게 떨어진, 최종심에 오른 작품도 아니었다. 그러나 심사평 맨 아래에 적힌 본선 진출작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았다. 짤막한 평가도 없이 그저 내 이름과 내가 쓴 소설 제목, 그게 다였다.


갑자기 뱃속 깊은 곳이 울렁거렸다. 가끔 자신이 외계에서 온 메시지를 받았고 해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순간에는 운명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해석하자니 너무 어렵고 천근처럼 무겁다는 생각만 들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힘, 희박하지만 존재하는 가능성, 49와 51의 대결.

'원하는 대로 작가가 될 수도,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다 아는 사실을 왜 이런 식으로 확인해야 하는 걸까? 그때는 재능이 없는 것보다 어중간한 재능이 더 최악임을 알지 못했다. 그 저주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 치게 될 줄도.


된서리부터 맞은 첫 출판


2018년 여름, 낯선 사람에게 메일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한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6개월 후 그는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하던 〈운동하는 여자〉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 주었다. 주변에서는 〈운동하는 여자〉의 담당 편집자가 당연히 여성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우리 편집자는 운동하러 가려고 5시부터 시계만 보는 운동광이자 그 무렵에 막 입사했던 남성이다.


나중에 고백하기로 '이 작가는 분명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을 텐데, 나 같은 초보 편집자를 상대해줄까?'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내가 '출간 제안은 한 건도 없었고 연재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는 말로 찬물을 끼얹어도 그의 눈을 덮은 콩깍지는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2019년 3월 8일은 〈운동하는 여자〉의 출간일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서 출간일을 여성의 날로 정했고 실제 출간은 그해 2월 초였다. 1월 내내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막바지 작업을 하던 중에 또 한 번 운명이 끼어들어서 모든 걸 흔들었다. 나는 출간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논란에 휘말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나와 계약한 출판사가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출판사는 나와 계약서를 쓰기 몇 달 전 소설가 강동수씨가 쓴 단편소설 '언더 더 씨'가 실린 소설집을 출간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로 설정된 고등학생 여성이었고 일부 묘사가 참사 희생자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이 사건은 지상파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로 꽤 심각했고 편집자의 말을 빌리면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항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했다.


페미니즘 에세이의 출간을 한 달여 앞두고 출판사가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키다니, 망상을 즐겨 하는 나로서도 생각해본 적 없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첫 책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된서리부터 맞았다. 출판사에서는 백배사죄하며 계약을 파기해도 좋다고 했고 친구들도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소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출간을 원했다. 그러자니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출판사와 책을 낸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원하는 걸 얻고 비난을 견디는 것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홍보하자 과연 '뻔뻔스럽다'는 비아냥과 '믿고 거른다'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특히 정식 출간 전에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은 펀딩액을 잔뜩 올려놓고 주문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펀딩을 망쳐놓자'는 작전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실망이다. 지금이라도 출판사를 바꾸라'는 메시지도 심심찮게 받았다.


  

▲ 연말 완벽은 없고 바라는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 게티이미지

 

특별히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경험이 쌓이면 깨달아야 한다. 완벽은 없고 바라는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음을. 그런데도 나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을 좋아하고 아직도 간절히 바라는 일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2022년 1월에 써 내려간 그 많은 목표 가운데 '두 번째 책 계약'이 있었다. 첫 책으로 응어리진 회한까지 더해서 있지도 않은 두 번째 책에 집착했다. 그러나 곧 있으면 2022년이 막 내릴 지금까지도 계약 같은 건 없다. 이 해가 나에게 준 교훈은 '결코 쉽지 않다'이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가르침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인정욕구에 가려져서 간과했던 과정의 중요함이었다. 그러니까 왜, 무엇을 위해서 쓰는가? 책을 내놓기 위해서인가? 조지 오웰이 말하길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언제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했다. 유희라기에는 무겁고 취미라기에는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글쓰기는 어떻게든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비록 실패한 글이라도 마찬가지다. 매번, 한 번만 더 살아있다는 감각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달려들었다.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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