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영의 한 솔로] 25화. 새해에 온 불청객
▲ 불운한 탓인지 새해부터 부상을 입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정확히는 운동한 몸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른바 바디프로필 사진 찍는 일이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어디에도 몸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에게 바디프로필 열풍은 꼭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같다. 3~6개월의 준비 기간, 만만찮은 비용, 강도 높은 다이어트라는 허들이 없다 해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부터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소개하기 위한 촬영이라면 기꺼이 부담을 짊어졌다. 작년에도 지면과 온라인에 기고하는 주짓수에 관한 글이 한 명에게라도 더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짓수를 대표하는 기술을 재현해 사진을 찍었다. 비록 주짓수 실력이 부족해서 자랑할 수준은 못 되고 또 사진과 제목만 보고 악플러가 달려드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바로 그 주짓수 촬영을 한 번 더 해보는 게 해가 바뀌고 계획한 중요한 이벤트였다. 특히 이번 촬영의 책임자인 P는 국내외 격투기 대회에서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는 실력자다. 그가 신묘한 노하우를 발휘해 내 비루한 주짓수 실력을 모두 메워줄 거라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렸다.
내가 한 준비라고는 일주일에 두 번 가던 주짓수 도장에 네 번 출석하는 성의를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다고 실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허둥거리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실한 척한 게 화근이었는지, 단순히 불운했던 탓인지 촬영을 닷새 앞두고 부상을 입었다.
스파링 도중에 상대 어깨와 내 왼쪽 눈이 부딪힌 거다. 충돌 직후 어느 정도 충격을 느꼈지만 통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심지어 멈칫하는 상대를 괜찮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스파링을 계속했을 정도니까.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드러났다. 세면대 거울에 비춰본 얼굴은 매일 보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이게 뭐야?'
마치 너무 두껍게 그려 넣은 아이라인이 번진 것처럼 눈의 경계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채로 멍이 점점 크게 번지더니 다음 날에는 눈두덩이 청보라색으로 뒤덮였다.
다가올 촬영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화장하지 않기, 머리카락을 인위적으로 고정하지 않기, 다이어트하지 않기 등이었다. 모두 잡지 촬영 이후에 생긴 원칙으로 나부터라도 운동하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그렇지만 내가 원한 건 '보이는 모습과 상관없이 운동하는 여성'이지, 재기에 실패한 퇴물 파이터가 아닌데.
난감한 일이었다. 그나마 피멍의 존재를 혼자 아는 동안에는 의연할 수라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극렬했다. 만나기 전에 단단히 준비시켜도 막상 내 얼굴과 마주하면 경악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곧장 약국으로 향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침울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였다(그러나 '저 사람 맞았구나' 하는 듯한 시선이 이미 나를 침울하게 했다). 짐짓 밝은 척 웃으면서 멍든 부위를 보여주고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묻지도 않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그 짧은 순간에, '풋살 클럽에 다니는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바로 내 조카가 여덟 살이고 풋살 클럽에 다닌다) 주말에 경기를 구경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맞았다'는 거짓 알리바이를 완성한 거다.
▲ 불청객과 함께 유난스러운 새해가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미 연방수사국(FBI) 특별수사관이 쓴 범죄심리학 책에 '거짓은 반드시 수다를 동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거짓말쟁이는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정보값을 쓸데없이 자세하게, 많이 늘어놓는다는 거다. 내가 바로 그 꼴이었다.
왜 사실대로 스파링 중에 다쳤다고 하지 못했을까? 약사에게 거짓말한 바로 그 순간,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이 심각한 사회 실험으로 변했다. 사실 눈두덩 피멍은 성별에 상관없이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역시 여자의 얼굴이라는 게 문제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남자에게 얻어맞은 여자로 보일까봐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은 열 살 무렵에도 눈두덩이(그때는 오른쪽이었다) 찢어져 꿰매는 사고가 있었다. 그때도 놀라긴 했으나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나에게는 몹시 예민한 동시에 둔감한 면이 있는데 아무래도 타고난 성향인 듯하다.
문제는 부모님, 특히 엄마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여자애, 얼굴, 흉터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만약에 흉터가 남으면 어른이 돼서 성형하자"고도 했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암시 같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흉터가 여자의 최고 자산인 얼굴에 생긴 흠집이라면 지금의 멍은 폭력에 노출된 취약한 여성이라는 표식 같은 것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은데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외모를 조롱하는 악플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고 호언장담했던 게 무색하게 느껴졌다.
만약에 남자였어도 이렇게까지 이 일에 몰두했을까? "양 작가, 술 먹고 드디어 한 판 붙은 거야?" 이런 농담이나 주고받으면서 낄낄거렸을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도 다가오는 촬영을 준비해야 했고 부상의 원흉인 주짓수 도장을 오갔다. 모든 불운이 시작된 그곳에서는 부상 입은 동료를 웃게 해주려는 농담이 따라다녔다. 농담을 건넨 이들은 모두 남성이고 마치 하나의 뇌를 공유하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말했다. 내용인즉 '오른쪽 눈에 섀도를 칠해서 스모키 화장한 것처럼 위장하라'였다.
그래, 다쳤다고 해서 심각해질 건 뭔가. 처음에는 속없는 사람처럼 그냥 웃었다. 똑같은 농담을 반복해서 듣기 전까지는. 마침내 화장 농담이 세 번을 채웠을 때 그동안 누적된 분노가 일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선택해야 할 때였다.
농담의 주인공을 도사견처럼 물어뜯고 꼴통 페미니스트로서의 악명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인내심을 발휘해 지금 건넨 농담이 여성혐오적임을 알려줄 것인가. 그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에 '한 번 더 웃고 넘어간다'는 선택지는 일찌감치 버렸다. 다행히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 후자를 선택했고 사과받음으로써 그 일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하루 이틀 내로 얼굴이 멀쩡해질 거라는 희박한 희망을 버렸다. P에게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는 골절상인 줄 알았다면서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유난스러운 계묘년 새해가 시작됐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