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승급의 이면
스포츠는 본래 고독한 싸움이다. 그런데 가끔은 고독하려야 고독할 수 없는 날도 있다. 승급식이 있는 날이 그렇다. 이날은 주짓수 도장의 모든 수련자가 저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한자리에 모인다.
박수와 촬영이 끊이지 않는 의식이 다 그렇듯 주짓수 승급식의 내용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우선 ‘관장님’이라고 불리는 스승이 승급할 제자들을 차례대로 호명한다. 그런 다음 스승은 제자의 벨트에 ‘그랄’(grau, 등급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그라우의 잘못된 발음)을 감아주며 등급을 올린다. 총 4개의 그랄을 다 채운 사람의 경우 다음 단계의, 새로운 벨트를 받는다.
화이트 벨트였던 ㄱ은 지난달 블루 벨트를 받았다. 그는 “주짓수가 삶을 바꿨다”며 부흥회에서 간증하는 신도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엠제트세대답게 자신에게 벨트를 하사했다. 고급 벨트에 이름을 새겨서 직접 선물한 거다. ㄱ의 진심 어린 간증이나 벨트 선물은 ‘지금 주짓수에 푹 빠졌다’는 뜻이리라. 블루 벨트를 받고 환하게 웃던, 2019년의 나처럼.
주짓수는 알려진 대로 화이트, 블루, 퍼플, 브라운 차례로 승급하고 기술의 완성 단계에서 블랙 벨트를 받는다. 그러나 벨트의 색이 곧 실력을 의미하진 않는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원조 할머니 해장국이 반드시 맛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주짓수 수련자들은 모두 블랙 벨트를 꿈꾼다.
그러면 블랙 벨트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인 승급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보통 수련 기간, 성실성, 실력, 성장 정도를 근거로 승급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제자들은 승급을 원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스승의 재량에 달렸고 재량이란 건 일정 부분 모호할 수밖에 없다. 주짓수 벨트에 얽힌, 울고 웃는 드라마와 뒷이야기는 전부 이 모호함과 욕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승급을 향한 욕망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는지는 영화 〈호신술의 모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가라데 도장이지만, 영화를 만든 라일리 스턴스 감독은 주짓수 마니아로 유명하다. 원래는 주짓수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더 대중적인 종목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가라데로 설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주짓수 도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영화에서 주짓수 문화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영화 속 악당인 관장은 이름마저도 ‘센세’(일본어로 스승, 선생님이라는 뜻)다. 그는 이제 막 입문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벨트는 신성한 것이고 분실하면 15달러입니다.”
정신을 강조하는 상품(마음공부, 힐링, 상담)이 대개 그렇듯 주짓수에도 비용(절대 싸지 않은)이 필요하다. 또 센세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는 정신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오히려 정신보다 물질에 훨씬 밝은 편인데 이때 벨트는 정신과 물질을 잇는 매개로써 기능한다.
그는 벨트를 교묘한 편애와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한다. 제자들에게 벨트를 매주면서 ‘벨트는 내가 하사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한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벨트를 받지 못하는 건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 네 탓’이고 이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화법을 연상케 한다.
센세가 보통의 벨트를 하사할 땐 비교적 관대하다가 블랙 벨트 승급에서 치졸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현실적이다. 사실 블랙 벨트 수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블랙 벨트를 찬 스승이 제자에게 블랙 벨트를 주면 결과적으로 둘의 권위가 동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가라데 창시자는 블랙 벨트보다 높은 무지개 벨트를 창안해서 자신에게 직접 하사했다. 이는 잠시 지나가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주짓수에서도 레전드로 불리는 원로에게 레드 벨트를 수여하는 관례가 있다. 블랙 벨트조차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이자 권위 위의 권위, ‘절대반지’인 셈이다.
이 반지는 사방에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한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반지의 주변에는 그것을 훔치려는 골룸(〈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반지를 탐하는 악당)이 기웃거리기 마련이니까. 설마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주짓수계에는 다양한 골룸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수련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가짜 벨트 소동’으로 불리는 일화의 주인공들이다.
놀랍게도 골룸은 누구에게도 받은 적 없는 블랙 벨트를 매고 남의 도장에 가서 결투를 신청한다. 격투기 전문기자인 ㄴ은, 주짓수가 처음 보급되던 초창기에는 가짜 벨트를 매고 대회에 출전하는 골룸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실력이 형편없어서 주최 쪽의 추궁이 이어졌고 어설픈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던 골룸은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한다.
물론 벨트를 둘러싼 뒷이야기 가운데 우스꽝스러운 소동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 종합격투기 대회인 유에프시(UFC)에서도 활약한 일본인 파이터 이노우에 엔센은 자진해서 블랙 벨트를 반납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단계 아래인 퍼플 벨트로 내려갔는데, ‘벨트에 걸맞은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블랙 벨트도 훈련을 멈추면 안 된다’고 말함으로써 ‘중요한 건 벨트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원론을 몸소 실천했다.
그렇다면 주짓수 수련자들에게 벨트란 과연 무엇인가? 내내 고민한 바로는, 벨트는 권위자의 인정이고 남성성을 물화한 토템이다. 〈호신술의 모든 것〉의 주인공 남성 케이시는 남성성, 정확히는 폭력이 필요할 때마다 청바지 위에 가라데 벨트를 맨다. 자신보다 강한 남성에게 받은 인정의 증표가, 없던 힘과 용기를 북돋는다. 또 센세가 어떤 이유를 대며 여성 제자에게 블랙 벨트를 주지 않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벨트의 상징성을 유추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짓수 벨트는 남성성 그 자체다. 그게 아니라면 그처럼 어리석고 맹목적이면서 실제 이상으로 가치가 부풀리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