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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May 02. 2023

두 번째 연구직입니다만 또다시 비정규직입니다

 석사학위 소지자의 일상 딜레마(2)



지난달 면접을 본 후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이미 결과가 나왔고 그에 대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후 퇴직 서류를 작성하고 남은 월차 휴가를 몰아 쓰느라 글에 대한 집중력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출근을 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그간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석사과정 졸업 이후 세 번의 지원 끝에 합격한 곳에서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던 도중에 다른 팀에서 다른 포지션으로 지원공고가 떴길래 고민도 없이 바로 지원을 하였고 4월 말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합격해도

행복



면접 결과가 나온 당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면접 결과를 클릭했다. 나의 이름 일부분과 지원번호가 적힌 표를 본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은 휘몰아치지 않았다. 왜일까. 나로서도 의문이다. 나 스스로가 나의 감정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미 비정규직으로 몇 달간 근무했던 곳이었던지라 어떤 분위기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 낸 공고이기 때문에 그간 일했던 팀과는 다른 곳이었고 되려 월등하게 더 나은 팀이라고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분은 최악으로 치닫지만 않았을 뿐, 평균에서 더욱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가는 곳이 여러모로 안정적이고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곳이라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즉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갓 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면 분명 평균에서 벗어나 기분이 좋았을 것이 분명했다. 과거에도 늘 그래왔었던 나였으니까.


그런데도 기분이 좋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명백하게 이루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지만, 분명 내 무의식 속에서는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어느 쪽으로의 거부감이었을까. 아무리 내가 불합리하고 정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들 내가 불쾌하다는 감정을 가질 정도로 나의 앞담화와 뒷담화를 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규정에 따라 월급이 소폭 줄어들었다. 소폭이지만, 거진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급을 받았던 나로서는 그 차이가 결코 소폭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미 받아온 월급에 맞추어진 소비패턴, 적금 등에 변동이 생기는 것을 의미했다.



근 지옥



가장 중요하게, 출퇴근 루틴 자체가 싫었다. 이미 아침마다, 저녁마다 매일 두 번의 지옥철 경험이 지속되어 오고 있는 상태에서 '회사에 간다'는 명제 속에서 '회사'보다 '간다'에 더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체력적으로 가장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8시간 동안 앉아있는 책상 앞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앞뒤양옆으로 거칠게 흔들어제 끼는 지하철 속에서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끼인 채로 인파의 무게가 주는 압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왕복 2시간의 스탠딩 타임이었다. 나의 만성피로는 지옥철 때문에 더욱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년 8월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원에서의 비정규직 인생을 시작한 이래,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하루가 다 지나가버린 것 같은 기분에 행복할 수 없었다. 몸은 피곤했고, 정신은 여러 가지 업무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닳아가 버렸다. 그 상황 속에서라도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당차게 해내었다면, 그 시간들이 조금은 더 의미가 있었을까?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간들일지라도 나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서도, 그간의 저녁시간 동안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가?'란 생각들을 수도 없이 했던 것을 보면 분명 나는 그 시간들을 조금 더 생산적이게 만들 수 있었다. 피로감이란 핑계를 대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버린 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밤을 아쉬워하는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업무가 나에게 주는 생산적인 가치가 크지 않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되었다. 업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니까 돈에 대한 대가임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도, 업무 자체가 내가 결국 하고자 하는 1) 연구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는다거나 2) 연구와는 관련이 있지만 여러 다양한 이유로 나 스스로가 업무를 즐기고 있지 못할 때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그럴 시간에 내 개인 연구를 했더라면, 학술지에 투고할 논문이 더 빨리 준비될 수 있지 않을까?'란 편익과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의 나는 월세와 생활비를 버는 행위 없이 수익이 나지 않는 채로 공부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또다시 다다른다.


그렇다고 오늘부터라도 밤마다 공부를 더 할 것이냐? 뭐,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아쉽고 아까운 시간들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 책상 앞에 앉을 힘 따위는 없다. 그럴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힘이 정말로 없기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내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된들 내가 퇴근 후에 책상 앞에 앉을지 의문이다. 사람은 실수와 반성을 망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실수를 인지하기는 하는데 실수를 뒤집어야 할 필요성을 잘 못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 덕분에 나의 꿈은 '9-6시에 일괄적으로 근무하는 회사원이 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프리랜서든, 자율근무를 시행하는 사업장이든 어디든지 괜찮은데 나에게 9-6시의 근무를 강요하는 곳이라면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비정규직은 유연근무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 더욱 '9-6'의 직장인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이라서

행복



'9-6'의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은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내가 바로 비정규직, 계약직이라는 사실이었다. 남들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는데 정규직을 원했던 나는 그들을 이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정규직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월급을 받으며, 나의 연구가 아닌 누군가의 연구를 지원해 주는 연구(보조)원으로 평생을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석사급 연구원은 사실상 행정원이므로 연구원 내에서 본인의 연구를 개진할 수 없다. 더더욱 현재의 내가 정규직을 원할 수 없는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석사급이 연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면, 석사급 연구원이 주도적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극소수의 연구기관(대개 민간 연구기관일 것으로 추측)을 선별해서 지원해야 한다.  


만약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정규직을 바라게 될지도 자문해 보았다. 물론 이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를 수 있기에 그다지 질문의 효용이 없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박사급 연구원으로 지낸다고 하더라도 정규직에 얽매일 것 같지 않다. 같은 직장에 오래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불확실성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만약 내가 훗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취업을 하고자 한다면, 정규직이라는 옵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연봉을 가장 중요시 여길 것 같다. 만약 정규직이 더 많은 돈을 받는다면 정규직을 원할테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는 얼마를 받든 정규직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년도 되지 않은, 겨우 몇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이렇게 다르다니. 나란 사람이 시시각각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몇 달 전의 내가 유일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지금에서는 치명적인 장점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계약만료의 시점의 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달려가고 있다. 그때쯤의 내 앞에는 무엇이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옥철 위에서 체력을 방탕하게 낭비하며 오늘 하루가 비생산적이라고 느껴왔던 퇴근 이후의 시간들이 더 이상 없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매너리즘이라던가, 번아웃이라던가, 무기력증인가 싶기도 한 나날들이 길어져만 간다. 끝이 있다는 건 정말로 위안이 된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리는 생각과 관점에 신기하기도 한 요즘이다.

 

첫 번째 계약직으로서의 마지막 퇴근 후 걸었던 잠수교와 노을


이렇게 여러모로 합격에 대한 생각들을 전개했던 지난 1-2주 간이었다. 합격이 결정되자마자, 새로운 포지션으로의 근무일자가 정해져서 일하고 있던 팀에서의 퇴직절차를 밟았다. 퇴직 시에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생각보다 여러 가지였다. 같은 팀 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부재중이시라 대면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분들께는 메일을 남겨드렸다. 그리고 첫 번째 계약직으로서의 마지막 근무를 한 날에 한강에 갔다.


오랜만에 한강에 가서 '한강라면'을 사 먹고 노을 속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평일 저녁의 맥주를 삼켰다. 평소에 마시던 5도 내외의 맥주였지만 훈더우면서도 선선한 온도 탓에 몽롱해질 정도로 술이 얼큰하게 올라왔다. 맥주 반 캔에 얼얼하게 취한 상태로 잠수교를 걸었다. 걸어도 깨지 않았던 술은 고봉민 김밥에 들러 육개장 정식과 김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집에 들어선 순간에서야 나에게서 사라졌다.


술이 센 편인 데다가 맥주 정도로 취하지도 않는 내가 취해버린 이유를 단순히 노을과 미지근한 저녁의 온도라고 말하기에는 그날이 나의 퇴사일이었다. 어차피 며칠 후에 (다른 포지션이지만) 같은 회사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을지라도 퇴사는 퇴사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틈며든다'는 표현은 내가 만들었는데 '틈틈이 스며든다'는 뜻이다. 위에서 나는 퇴근 후 한두 시간이라도 공부하기를 선택하지 않았고, 유튜브와 OTT를 택하며 잉여 같은 밤들을 보내왔다. 글을 쓰고 나니 내가 너무 피로감을 내세운 채로 시간을 보내온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꾸준히 매일 한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분명 그 시간들 또한 가치 있다고 느낄 것이 분명한데 그 시간들을 향해 나아가지 않은 나의 귀차니즘이 야속하기도 하다. 어차피 피곤한 거 한 시간 더 앉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한 시간 앉아 있다가 누우면 더 잠을 잘 자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집에서 틈틈이 공부를 스며들게 하지 못한다면, 회사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써볼까 한다. 계약직인 나는 특정 사업에서 중대한 업무를 맡지 않는다. 그 말은 즉슨, 업무 강도가 높을지라도 한시적이고 업무가 지속적일지라도 강도는 낮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대가 또한 크지 않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이점들이 적지 않으므로 그것들을 잘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업무가 없을 때에 틈틈이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적어둔다거나, 전공과 관련한 지식들을 습득한다든가, 연구에 필요한 단순작업들을 해왔다. 이제는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개인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엄연히 회사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업무가 주어지지 않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선에서 자기 계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업무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끝이 있는 나는,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끝을 향해 온 시간들이 헛되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여러 고민과 실천들을 하며 지내볼 생각이다. 두 번째 계약직의 삶은 그저 무탈하고 평탄하기만을, 그리고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고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시간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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